김연아, 어머니가 대표인 ‘김연아 주식회사’ 설립

<사진=강영국기자>

그동안 추측으로 무성했던 ‘김연아 주식회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26일 김연아 법률상 대리인 법무법인 지안은 “김연아 본인이 주주로 참여한 신설법인 (주)올댓스포츠(AT Sports)를 지난 20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인 박미희씨가 맡고 있다.

김연아의 어머니이자 올댓스포츠의 대표이사 박미희씨는 “IB스포츠는 여러 사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어 김연아의 요구를 반영한 선수관리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김연아를 직접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회사 설립 배경을 밝혔다.

김연아와 어머니 박미희씨, 아버지 김현석씨(자료사진)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활동과 관련한 매니지먼트는 물론 아이스쇼 개최, 스포츠꿈나무 육성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김연아 주식회사’ 설립설은 김연아와 IB스포츠의 계약만료기간이 다가오면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김연아를 담당했던 IB스포츠의 임원이 ‘김연아 주식회사’ 설립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는 후문까지 전해지며 힘을 실었다.

한편 올댓스포츠는 IB스포츠와 김연아의 계약이 종료되는 30일 이후인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김애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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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10:34:59 입력, 최종수정 2010.04.26 14:47:55

삼성생명 공모주 많이 받으려면
증권사별 청약 우대조건 꼼꼼히 살펴봐야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 일정이 5월 3~4일로 바짝 다가왔다. 시가총액 20조원 규모 국내 최대 상장(IPO)인 만큼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공모주 청약을 할 수 있는 통로도 국내 6개 증권사로 넓어졌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구하듯 우대 조건을 충족시켜 놓으면 공모주 청약에서 물량을 늘릴 수 있다. 청약 욕심이 있다면 증권사마다 청약 우대 조건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일반 개인 청약자에게 주간사인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의 일반 1인당 청약 한도가 최고 10만주로 가장 많고 배정물량도 각각 309만주와 223만주에 달한다. 두 회사는 또 기존 고객에 대한 우대조건도 달지 않아 누구라도 이 증권사 계좌가 있으면 10만주까지 청약신청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공모주 경쟁률을 높이는 요인도 된다.

신한금융투자는 신한은행과 17개 제휴은행을 통해 증권연계계좌를 개설하면 온라인과 ARS(1588-3335)를 통해 청약이 가능하도록 저변을 넓혀 눈길을 끈다. 신한은행에서 개설된 금융네트워크계좌(FNA계좌)로 청약이 가능하고 청약 첫날은 오후 10시까지 야간청약을 접수한다.

인수회사인 삼성증권(1인당 청약한도 5만주, 우대 10만주)과 동양종합금융증권(8만주), 우리투자증권(1만5000주, 3만주), KB투자증권(3만주)에서도 청약할 수 있다.

동양종금증권은 기존 우수 고객들을 위해 일반 청약자 배정 물량의 20%를 우선 배정했다. 고객 등급은 기여수익과 예탁자산, 거래기간 등을 고려해 매년 1월과 7월 매기기 때문에 단기간 우대 고객으로 올라가기는 어렵다.

삼성증권은 청약 전월까지 3개월(2~4월)간 평균 잔액 2000만원 이상 유지하면 최대 5만주까지 청약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청약 전월 평잔이 1억원 이상이거나 △CMA를 통해 3개월 이상 급여이체 △CMA를 통해 월 100만원 이상 6개월 이상 적립식투자 이체 △신규계좌 개설 후 1억원 이상 입금한 고객은 10만주까지 청약할 수 있다.

우리투자증권도 3개월 평균 자산 잔액이 3억원 이상이거나 우리금융그룹 통합 등급이 플래티넘이면 청약한도가 200%까지 가능하다.

한 주관업무 담당자는 "증권사마다 배정 물량이 다르기 때문에 노련한 공모주 투자자들은 청약일 동안 각 증권사 경쟁률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여러 곳에 나눠서 청약한다"고 말했다. 일반인 청약증거금은 신청 규모의 50%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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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SB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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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한 꽃다운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그녀는 새롭게 나래짓하며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는데 흰새가 되어 저승으로 파닥이며 날아갔다. 한 아이의 순수하고 순결한 영혼 그녀의 영혼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도드린다.

 한 아이가 자라서 살인자가 되기까지  그의 자아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현대인의 가장 큰 병은 정신병이라는 말이 있듯 이 시대에 이런 싸이코 패스와 같은 이들이 많은 것이 가슴 아프다. 오히려 고아원에 갔더라면 그는 더 바르게 자랄 수 있었을까? 그 많은 시간 감옥에서 있으면서 그는 왜 제대로 교화되지 못한 것일까? 우리시대 감옥은 과연 어때야 하는가? 양부모나 편부모에 의해 자라나는 아이들, 혹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김길태라는 한 인물을 비난하며 돌을 던지기에 앞서 우리들이 결손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차가운 시선에 대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 이 시점에서 경찰은 심리치료사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죄수들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는 전과자가 되지 않도록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외톨이를 함께 보듬어 그들이 절대로 외톨이가 아님을 알려 주어야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싸이코 패스가 없는 나라,,,진정한 민주주의 자유시민들이 세상에서 행복을 꿈꾸는 사회가 되었으면,,,희생당하는 어린양들이 없는,,, 아이들이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한별

 

 

김길태 돕고 싶다" 변호 요청

   


한 시민이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33)를 변호해 달라고 익명으로 변호사 선임비를 대신 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김씨의 변호를 맡은 윤모 변호사는 15일 오후 사상경찰서를 찾아 김길태와 면담을 갖고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다.
윤 변호사는 "지난 12일 오후 5시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이 전화를 걸어와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고, 김씨도 불쌍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서 돕고 싶다. 수임료를 대신 내겠다"고 변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임료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 시민은 수백만원 상당의 변호사 수임료를 통장에 입금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윤 변호사는 "김길태를 직접 만나 변호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김씨가 이에 동의해,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현장검증이 끝나는 대로 다시 경찰서를 찾아 김 씨와 면담을 통해 변호에 나설 예정이다.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는…

 

김길태의 중학교 때 생활기록부 사진(왼쪽)과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증명 사진(오른쪽). 중학교 생활기록부(아 래)에는 활달하고 명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박국희 기자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 툭하면 거짓말하던 외톨이
11년 교도소 생활도 난폭… 7차례 징계

부산 여중생 이모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작은 잘못에도 엉뚱한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옆 동네에서 호프집을 하는 친구는 "작년 10월 처음 만났는데 자기를 김길태가 아닌 '김상태'라고 소개해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지냈다"며 "나중에 알고 놀랐고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11일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이틀째 조사를 받은 김길태는 이양과 관련된 혐의는 여전히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했다.

김길태의 중학교 생활기록부 1학년 치는 "남성적이고 활달하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고 돼 있었지만 2학년 때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면이 보인다"고 바뀌었다. 3학년 담임교사는 김길태의 성격에 대해 "신중한 가치판단이 요구된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처럼 활달하고 운동 잘하던 김길태는 중학교 때는 겉으로는 쾌활했지만 말수가 적어지고 어두운 구석이 늘었다. 어머니 윤모(66)씨는 "길태가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난 어디서 왔어?'라고 가끔 묻곤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떨어진 너를 내가 받았다"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김길태가 '출생의 비밀'을 안 것 같았다고 가족들은 생각했다.

딸만 있던 종손(宗孫)인 아버지 김모(69)씨는 33년 전 교회 앞에 버려진 2살 김길태를 데려다 키웠다. 외삼촌(55)은 "'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길태라 이름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양부모는 길태를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나 김길태는 양부모가 끝까지 숨기려 했던 비밀을 누구에게 전해들었는지 알아내고 말았다.

1993년 부산의 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김길태는 그해 10월 스스로 자퇴서를 낼 때까지 40여일을 결석했다. 담임교사는 '태만으로 인한 결석'이라고 자퇴서류에 썼다. 김길태는 자퇴서에 "공부를 하기 싫어서입니다"라고 적었다. 지능검사 결과는 중학교 시절 85, 고등학교 때는 86였다. 하지만 워낙 성의없이 검사받은 수치였다. 자퇴하던 1학년 때 성적은 49명 중 49등이었다. 반면 운동엔 탁월했다. 중2 때 이후 체력검사 등급은 1급 아니면 특급이었다. 몸이 민첩하고 빨랐다고 교사들은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길태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덕포동 옥탑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모습만 가끔 눈에 띄였을 뿐이었다.

김길태는 1996년 폭행 혐의로 소년심사분류원에 갔다. 그 뒤부터 김길태는 33년 인생 가운데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교도소 안에서도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가끔씩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을 보여 7차례나 규율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정신질환자로 분류돼 특별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 교도소로 2년여 이감되기도 했다.

출감했다가 1997년 9세 여아 성폭행 미수 혐의로 다시 징역 3년을 살고 나온 뒤부터 김길태는 더욱 숨어지냈다. 몇날 며칠을 옥탑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외삼촌은 "친구는 물론 친지들과도 교류가 거의 없었다"며 "누나들과도 연락이 끊겨 조카 얼굴도 한번 못봤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혼자 은둔 생활을 하면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 전형적인 '프레데터(predator·포식자)형 범죄자"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먹잇감이 있으면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격해 가장 위험한 유형의 하나"라고 했다. 김길태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인간관계를 쌓지 못했고, 학교도 중간에 그만 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을 잃어버린 외톨이가 되면서 이런 성향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출소한 뒤 또 2달간 은둔을 한 김길태는 슬슬 '먹잇감'을 찾아 익숙한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꽃다운 소녀를 아무렇게나 희생시키고 말았다.

지난 10일 14일만에 경찰 붙잡혀 조사를 받는 김길태는 그럼에도 느긋하면서 태연했다.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만 쳐다봤다. 조사실은 낯설지 않았다. 김길태는 수사관에게 담배만 자꾸 달라고 했다. 경찰이 진술을 듣기 위해 담배를 주면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피워물었다.

저녁이 되자 김길태는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보름동안 라면만 먹었다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다. 꾸역꾸역 자장면을 입에 넣다가 반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달라고 했다.

경찰은 김길태에게 목욕을 먼저 하고 잠을 잔 뒤 다음날 조사를 하자고 권했다. 장기간 도피로 지친 몸 상태를 고려해서다. 그러나 그는 호기를 부렸다. "그럴 것 없어요. 조사부터 받죠"라고 했다.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할 말은 다 했다. 이양 살해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살인과 관련없는 빈집에 들어간 대목에선 "빈집에서 라면을 해먹고 용변도 해결했다"고 술술 얘기했다.

김길태는 오전 1시까지 조사받은 뒤 유치장 목욕탕에서 샤워를 했다. 때절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경찰이 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전 2시쯤 자리에 누운 김길태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했다. 1시간이 지난 새벽 3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경찰은 독방이 아닌 3명이 함께 지내는 방에 넣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1일 세끼 메뉴는 백반과 짬뽕, 된장찌개였다. 그는 모두 깨끗하게 비웠다. 경찰 관계자는 "김길태가 하루가 지나고 기운을 차린 듯 조사 도중 수사관을 째려보며 반항하고 있다"며 "담배를 피우며 진술은 하지 않아 담배를 주지 않으니까 이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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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검증은 이 양의 집에서 시작돼 성폭행 및 살해현장으로 지목된 무속인이 살던 폐가, 이 양의 시신을 옮겼던 빈 집, 시신을 유기한 물탱크 주변, 범죄의 근거지가 됐던 김의 옥탑방, 검거장소 등 6곳에서 실시됐다.

김 씨는 이날 “현장 검증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경찰이 이 양 집을 알고 있는지 묻자 “모른다”고 답했고 이 양 집 다락방 창문을 통해 들어갔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하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양의 살해 장소로 알려진 무당집에 도착해서 김 씨는 성폭행, 살해 과정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4일 진술한 것과는 상반된 태도였다.

하지만 이양의 시신을 유기한 사실은 시인했다. 김 씨는 “자고 일어나 보니 이 양의 옷이 시신 옆에 있었다. 끈으로 발목을 묶어 가방에 넣었는데 다 들어가지 않았다. 비닐봉지에 이 양의 옷을 넣었다”고 말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장면은 김 씨의 거부로 대역이 동원됐다.

특히 시신을 물탱크에 유기한 이유에 대해 김 씨는 “추울까 봐 미안해서 우선 물탱크 안에 시신이 든 가방을 던져 넣고 나와서 대야에 석회가루를 탔다. 이후 물탱크에 석회가루, 옷이 담긴 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고 말했다.

참관 중인 검사가 당시 시각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검사님, 당시 시계를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있었겠느냐”고 오히려 검사에게 반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수사본부는 이날 이 양의 시신을 유기한 물탱크 안에 있던 이 양의 옷가지 등이 담긴 비닐봉지에서 수거한 휴지와 석회가루 인근에서 확보한 후드티 등에서 김 씨의 DNA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체와 함께 물탱크 안에서 수거한 이 양의 옷과 신발이 들어있던 검정색 비닐봉지에서 휴지 2점을 수거했는데 여기서 김과 이 양의 DNA가 나왔으며 또 물탱크 옆 석회가루를 섞었던 장소 옆에서 발견한 검정색 후드티에서도 김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부산여중생 납치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

2주 새 14만 회원 모은 '커피당'의 정체

커피숍에서 열린 커피파티 발대식

지난 13일 토요일 낮 12시(현지시각) 미국 전역의 커피숍 390여곳에서 커피파티가 열렸다. 1월말에 시작한 넷뿌리와 풀뿌리를 연계한 진보 커피파티운동의 오프라인 발대식이 전국 동시다발로 이루어진 것이다.

커피파티 모임은 한인 2세 애너벨 박(41, 박수현)씨의 페이스북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을 양분시키는 티파티운동이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애너벨 박씨는 지난 1월 자신의 인터넷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커피파티를 시작하자고 제안했고, 친구들이 화답해오면서 "커피파티 운동에 동참하자"라는 웹사이트를 열게 되었다.

* 커피파티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는 애너벨 박의 유튜브 동영상. 지난 6주간 커피파티 웹사이트는 17만3천 방문수와 60만 페이지 뷰를 기록했다.

커피파티
웹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구성원들을 모으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설립하면서 < 워싱턴 포스트 > , < 뉴욕타임즈 > 등 주요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자 참여자수는 급격히 늘어 지난 2주일새 13만 9천여명이 되었다. 이는 규모면에서 10만여명을 회원으로 둔 보수 티파티운동을 압도한다.

"깨어 일어나자."
"정부가 우리를 제대로 대표하도록 만들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애너벨 박이 커피파티 운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주창한 모토다. 박씨는 9살에 부모를 따라 휴스톤으로 이민온 한인 2세로, 현재 워싱턴 근교에 살고 있다. 박씨는 2007년 미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도록 활동을 했고, 2006년 버지니아 주 짐 웹 상원의원의 선거캠프와 2008년 오바마대통령 선거캠페인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적이 있는 사회활동가다.

커피파티 웹사이트 대문에 실린 그들의 운동 목표는 "커피파티 운동은 정부 내에 협력을 보고 싶어하는 미국민에게 목소리를 주자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적이 아니며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민이 직면한 도전을 이야기하기 위해 민주주의적인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투표권자나 자원봉사자로서 우리는 긍정적인 해법을 내오는 지도자를 지지하며, 방해하는 사람들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티파티에 대항한 진보진영의 대안이라고?

커피파티는 그냥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다.
현재는 보수진영이 악의적인 선동을 일삼는 운동으로 전락한 티파티운동은 지난해 정부가 구제금융과 경제촉진정책을 펼치자 일단의 그룹이 보수적인 재정운용과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현재는 공화당이 보수가치를 전파하는 운동으로 변질되었는데, 원래 '티파티'라는 이름은 "영국국회에 대표없는 티세금은 거부한다"는 '보스톤 차사건'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영국이 티(tea)에 세금을 매기자 식민지였던 미국이 자신들의 대표 없는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의미로 티를 보스톤 앞바다에 빠뜨렸고, 이를 시작으로 1775년 미국 혁명 전쟁이 일어났다, 그 당시 운동을 주도했던 그룹은 티를 대신해서 커피를 나라음료로 정하자고 선언하기도 했단다.

티파티와 유사하게 정부재정의 책임과 의회의 책임을 묻지만, "정부는 적이 아니며 집단의지의 장"임을 선언하는 커피파티는 "의회가 국민 무서운 줄을 모르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고, 국민들이 보스이니 일꾼인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일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로스 스트리트 카페에서 커피파티 회원들이 토론하고 있다.


ⓒ 전희경


애너벨 박씨는 지난 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진영은 우리가 티파티에 대항해서만 만들어졌다고 한다. 단지 두 진영이 있어서 한쪽이 이기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지는 제로섬 정치게임을 하는 것은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건강한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의료개혁 논쟁에서 미국이 양분되어 있고, 서로 발목을 잡는 정치적 과정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밝혔다.





은퇴한 리차드 마이크 크로슨씨


ⓒ 전희경


웹사이트에 다양한 그룹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참여자 모두에 글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조직화 아이디어와 기술적인 지원을 하면서, 커피파티운동은 넷뿌리와 풀뿌리 연계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13일 현재 운동에 참여할 것을 밝힌 구성원들이 사는 주는 이미 44개에 이르며, 350개 이상의 지역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슈에 대해 토론한 후 '커피 & 이슈' 사인판을 만들어 그 곁에 선 후 사진을 찍어 모으는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고, 이를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이는 작년 미주한인주부들이 동영상 제작에 썼던 방식이기도 하다.

"고장난 민주주의를 고치고 싶다"

13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시 커피파티 출범모임은 임포리움 다운타운카페, 사이드윈더 커피와 차, 로스거리카페 세 군데에서 열렸다. 커피파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커피파티 웹사이트로 들어가 지역의 우편번호를 클릭하면 모임이 열리는 곳의 정보를 얻게되며, 그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이메일 등록을 하면 모임에 대한 안내 이메일을 받을 수 있고 참석할 수 있다.

주부, 대학생, 의사, 과학자, 은퇴경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기 소개와 함께 왜 모임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 모임은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는 모임의 규칙과 그날의 의제를 공유한 후 작은 소그룹으로 쪼개져서 이슈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신시내티 대학생 돈 트라이코프씨


ⓒ 전희경


무엇이 이들을 커피파티에 오게 했는지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모임에 참석한 50대 주부 수잔씨는 "거짓말쟁이들에게 빼앗긴 의료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했고, 은퇴 금속노동자 마이크 크로슨씨는 "여러 곳에 살아봤는데 오하이오주만큼 보수색이 짙은 곳이 없었다. 나도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 공화당원이었지만 부시대통령은 최악이었기 때문에 지난 대선때 오바마대통령을 찍었다. 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30대 보건계에 종사하는 프랭크 캠피사노씨는 "민주주의 절차의 변화를 보고 싶다"고 했으며, 20대 신시내티 대학생 돈 트라이코프씨는 "고장난 민주주의 체계를 바로잡고 정직한 토론을 하고 싶다"며 "기업이익에만 얽매어 있는 의회로 하여금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고 싶어서 왔다"고 모임에 온 목적을 밝혔다.

한 60대 남성은 "지금 정치권은 정치적 견해를 바탕으로 해서 데이터를 끼워맞춘 후 정책을 집행한다.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정책집행이 되어야 한다. 올해 선거가 있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기회가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고 싶다"고 했으며, 다른 60대 마크씨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모른다. 민주주의가 기업에 강탈당했다"고 했다. 의사인 쉐리 배런씨는 "친구들과 함께 세 군데 커피파티에 나눠 참석하고 있다. 이런 모임이 어떻게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신시내티의 조직책임자는 레오 피어슨씨로 이날 기자가 찾은 모임의 책임자인 은진 크랜츠양과 윌 피어스씨와 이메일로 모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다음은 모임의 진행을 맡은 은진 크랜츠양과 윌 피어스씨와의 인터뷰다.
- 무엇이 오늘 모임의 목적인가.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은진: "시민들이 원하는 이슈를 토론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사회에서 살고 있다. 시민들은 각기 다른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윌: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룰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우선은 당파성에 관계없이 모여서 토론할 자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토론하고 싶은 이슈가 있는지. "커피 & 이슈"라는 사인판을 최종적으로 만들어 사진을 찍을 때, 이슈란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

은진: "나는 오늘 사회를 보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원하는 이슈를 밝히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무엇이 상식적인 것인지,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고 싶다."

윌: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그 이슈란에 쓰고 싶다."
- 자신에 대해 말해달라. 커피파티를 만든 애너벨 박씨와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은진: "2살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 노쓰사이드에 살며 비정부기구에서 일한다. 애너벨 박과는 페이스북에서 친구사이다."

윌: "신시내티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에 있다. 정치에 관심이 있고, 어제 오하이오 커피파티 조직책인 리오 피어슨씨로부터 오늘 모임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 오늘 사회를 보게 되었다. 애너벨 박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녀가 커피파티를 처음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신시내티 커피파티 조직책 은진 크랜츠씨와 윌리엄 피어스씨.


ⓒ 전희경


커피파티로부터 이메일로 알려온 진행자를 위한 10가지 팁을 보면, 모임 참가자들에 대한 세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1. 즐겨라
2. 체크리스트와 의제샘플을 이용해라.
3. 커뮤니티를 만들자.
4.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5. 커피파티의 중심은 대화다.
6. 대화가 겉돌지 않도록 하자
7. 말하도록 용기를 주자
8. 첫 모임이니 너무 많이 기대하지는 말자
9. 사람이 많다면 나누자
10. 권력은 국민에 있음을 주지시키자."
커피파티 스태프들이 밝힌 첫모임의 6가지 목적은 "함께 하기, 우리의 목소리를 듣도록 만들기, 팀 만들기, 커뮤니티를 구성하기, 해법에 협력하도록 국가적인 담론을 변화시키기, 다음 계획 짜기 등"이다.

또, 커피파티의 향후 계절별 계획에 따르면, 봄에는 '듣고 조직화하기, 국민의 목소리를 듣도록 만들기', 여름에 '워싱턴에서 행진을 통해 국민의 힘을 보여주기', 가을에는 '선출된 공직자들의 책임을 묻기', 겨울에는 '1년의 결과를 보고하고 다음 계획 짜기'로 되어있다.

비가 오는 토요일, 작은 커피숍에 모인 스무명의 사람들은 성숙한 시민의 자세로 민주주의를 논하고 이슈를 토론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풀뿌리들의 모습에서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미국을 본다.

[☞ 오마이 블로그]

뒷모습도 아름다운 스님 법정스님

그분의 무소유개념은 우리 현대 사회에 무한한 깨우침과 감동을 준다. 우리도 그분처럼 살 수 있을까? 단호한 느낌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주신 분... 그분의 모습을 블로그에 담게 되어 영광스럽다.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것


법정 스님 다비식 

<리포트> 

보통의 경우 24시간 정도 다비를 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내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정도면 타다 남은 뼈를 수습하는 습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사리도 찾지 말아달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사리 수습은 생략될 것으로 보입니다.
습골한 뼈는 바로 빻는 절차인 쇄골 작업을 거치게됩니다.
보통의 경우는 부도탑에 안치하게 되지만 스님의 유언에 따라 상좌 스님들이 이를 뿌리는 산골을 하게됩니다.
산골 장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법정 스님이 정진했던 강원도의 산골 오두막 부근과 송광사 등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앞서 법정스님의 법구는 어제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떠나 출가 본사인 순천 송광사로 이동해 문수전에 모셔져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앞서 보셨듯이 오전 10시에 송광사 입구 주차장에서 800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있는 다비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질문> 추모 분위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 이시각은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미 다비식이 시작돼야 하는 상황이거던요.
좀전에 말씀드렸지만 다비장이 송광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서 법구를 옮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추모 인파가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어제 밤 부터 송광사에는 법정 스님의 입적을 안타까워하는 일반 신도와 스님들 해서 만5천여명 정도 운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스님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일반 대중이 많다는 것인데요.
일체의 장례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서 자발적인 분향소가 차려지고 이곳을 수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런 다비식이나 분향소에 가시지 못하는 분들은 서점으로 가서 그가 남긴 책들을 찾는 경우가 많아 서점에는 스님이 남긴 책들이 많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어떤 분이었는지 간략하게 정리해주시죠?
<답변>
네, 법정스님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한마디로 '스타' 스님입니다.
지난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스님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법정 스님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하다 1954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한 뒤 당대의 선승인 효봉스님 만난 뒤 머리를 깎습니다.
그리고 통영 미래사에서 행자 생활을 했고 그 뒤 양산 통도사, 해인사 등을 거쳐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왔습니다.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지만 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96년에 고급 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조건없이 기부 받아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답변>
스님의 산문집 '무소유'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울림이 가장 큰 것일 것입니다.
스님은 그의 법정 스님의 일생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의 실천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스님으로 55년을 살았지만 그 흔한 사찰 주지 한번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손수 짓고 , 홀로 17년간 수행한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에서는 잔솔깨비로 군불을 때고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였습니다.
이를 스님은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산문집 무소유로 유명세에 시달리자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의 오두막으로 홀연히 떠난 것도 바로 무소유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에도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하라고 유언을 남긴 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법정 입적> 법정스님, 불길 속에서 먼길 떠나



(순천=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몸을 맡긴 채 먼 길을 떠났다.


지난 11일 오후 1시51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한 법정스님의 법구는 13일 오전 스님의 출가 본사인 전남 순천 송광사 전통다비장에서 다비됐다.

법정스님의 이번 생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고 이날 송광사에는 아침 일찍부터 전국 각지의 불교신자와 스님 등 추모객 3만여 명이 몰렸고,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자리 잡은 다비장에도 1만5천여명이 운집했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 가시던 날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무소유와 청빈으로 평생을 살아온 법정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 단아하면서 맑은 문체로 사랑을 받아 온 시대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법정 스님은 떠날때도 무소유 그 자체였다. 13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는 영결식 등 일체의 행사 없이 조촐하게 다비식이 열렸다. 2010.3.13 minu21@yna.co.kr

전날 길상사를 떠나 송광사 문수전에서 밤을 지낸 법정스님의 법구가 이운되기 시작한 것은 이날 10시, 범종 소리와 함께였다.

법구는 길상사를 떠나던 모습 그대로 대나무 평상에 모셔진 채 가사를 덮은 상태였고,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3배를 한 후 다비장으로 향했다.

하늘 가는 길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무소유와 청빈으로 평생을 살아온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순천 송광사에서 열려 스님의 법구가 거화의식을 위해 옮겨지고 있다. 2010.3.13 minu21@yna.co.kr

추모객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등을 염불하면서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고, 다비장으로 향하는 거대한 행렬에 동참했다. 또 상당수 추모객은 일찍부터 다비장으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기도 했다.

학인 스님 8명이 조를 짜 교대해 이운한 법구는 송광사 주차장 입구에서 약 800m 산길을 올라 오전 11시께 다비장에 도착했다.

하늘 가는 길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무소유와 청빈으로 평생을 살아온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순천 송광사에서 열려 스님의 법구가 거화의식을 위해 옮겨지고 있다. 2010.3.13 minu21@yna.co.kr

법구는 장작더미가 쌓인 인화대 위에 모셔진 후 다시 참나무로 덮였고, 이어 11시41분 스님 9명이 장작에 불을 붙이는 거화(炬火) 의식을 거행하면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맡겼다.

이날 법정스님의 법구를 이운하는 행사에는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법흥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전국선원수좌회 전 대표 혜국스님 등 불교계의 큰스님과 중진스님이 대거 참석했다.

'법정 스님의 마지막 길' (순천=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무소유'의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된 13일 오전 전남 순천시 송광사에서 법정 스님의 영정을 앞세운 법구가 문수전을 나와 대웅전을 향하고 있다. 2010.3.13 jieunlee@yna.co.kr

또 이계진,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 이강래, 서갑원 민주당 의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정계인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법정스님의 법구는 14일 오전 10시까지 계속 다비된 후 타다 남은 뼈를 모으는 습골 의식을 거쳐 문도들에게 전달된다. 유골은 법정스님이 오래 머무르던 강원도 오두막, 송광사 불일암, 길상사 등지에 산골될 것으로 전해졌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지만…”

"스님께서 극락전 앞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세 번 인사를 올리고 떠나실 때는 제 마음이…"

법정스님께 받았다는 법명 '지광(智光)거사'로 자신을 소개한 변택주(58)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맑고향기롭게) 이사는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며 마음이 애통한지 말을 잇지 못하고 안경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았다.

그는 "스님께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셨지만, 제자된 저로서는 왜 (마음속에) 울림이 없었겠느냐"며 스승을 잃은 제자의 슬픈 심정을 내비쳤다.

13일 성북동 길상사에 있는 '맑고향기롭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변 이사는 2000년 법정스님에게 계를 받은 제자다.

"사실은 26년 전에 이미 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꼭 스님께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특별히 다시 부탁했던 거죠. 어떻게 보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처음 법정스님을 만난 것은 길상사가 창건되던 1998년 법회에서였다. 평소 스님의 글을 읽고 흠모하던 그가 스님을 뵙고 싶어 이날 길상사를 찾았다. 이후 그는 그해 가을부터 10여 년 동안 꾸준히 법정스님 법회의 진행을 도맡아 했다.

그는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스님이 늘 하셨던 말씀은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였다"며 "부처와 보살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처와 보살이 돼 가는 것이라고 설파하셨다"고 회고했다.

그가 지금 '맑고향기롭게' 이사직을 맡아 일하는 것도 '착하게 살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원래 '맑고향기롭게'는 1993년 법정스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어 만든 사회봉사 단체다. 이들은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돕고,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하는 등 몸으로 하는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고(故) 정채봉 동화작가를 비롯해 이계진 의원, 윤청강 불교작가 등이 법정스님의 뜻에 공감해 발기인격으로 모임에 참여했고, 이후 각지에서 종교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지금은 지역모임만도 부산과 대전, 대구, 광주와 경남 등 5곳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2003년 길상사 회주 직을 비롯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강원도 오두막으로 들어간 법정스님이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직이라는 것만 봐도 이 모임의 상징적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변 이사는 "모임을 운영하면서도 스님은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구청에서 자금지원 제의를 해왔는데도 "그 자금은 다른 기관에서도 필요한 곳이 많을 것"이라며 "약소해도 내 주머니에서, 힘들어도 내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님은 당시 많이 썼던 '베품'이라는 말 대신 '나눔'이라는 말을 좋아하셨다"며 "아마 나눔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수평적인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법정스님은 도움을 주고도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無相布施)의 원칙을 일평생 철저히 지켰다. 이 때문에 기부 활동을 비롯한 스님의 선행은 '맑고향기롭게' 쪽에서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변 이사는 "옛날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불교를 위해 했던 일을 자랑하며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달마대사가 무공덕(無功德)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며 "스님께서도 '내가 무얼 했노라고 얼굴을 내밀면 보시가 아니라 거래'라고 늘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몇 겹의 종이로 향(香)을 싸도 향기가 배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듯이 법정스님이 쌓은 덕도 차차 알려지리라 생각한다"며 "'맑고향기롭게'를 통해서 하신 부분은 지극히 적은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맑고향기롭게'는 1994년부터 매년 4000~5000만원을 '맑고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으로 책정하고, 형편이 어려운 중ㆍ고교 학생 30여명을 선발해 돕고 있지만, 누가 얼마나 기부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법정스님의 기부액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맑고향기롭게'를 통하지 않은 기부 활동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소유'를 비롯한 법정스님의 인세 수입은 1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각 출판사에서는 이들 인세가 장학금 등에 쓰였을 것을 추측한다.

변 이사는 "스님께 장학금을 받아서 석사와 박사 공부를 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고, 출판사 마음의숲의 고세규 대표도 "스님께서 일본 유학생에게 많은 돈을 학비로 대줬다는 소식을 한 문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말을 보탰다.

하지만 변 이사와 '맑고향기롭게' 사무국 측은 "스님의 뜻에 어긋난다"며 법정스님이 한 기부와 선행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질주본능' 인피니티 뉴 G37 직접 타보니…

한국일보 | 입력 2010.03.08 16:57 | 누가 봤을까? 30대 남성, 대구

 

뉴 G37은 인피니티가 지난해 12월 외부 디자인과 인테리어 등의 페이스 리프트(부분 변경)를 통해 새롭게 내놓은 프리미엄 스포츠세단이다.

전면부는 새 디자인의 더블 아치형 그릴과 일체감을 주는 하단 그릴, 볼륨감을 높인 범퍼가 눈에 띈다. 특히 헤드 램프와 안개등에 크롬 장식을 추가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안개등의 위치를 헤드램프 밑으로 내려 돋보이게 했다.

뒷부분은 L자형 LED 후미등으로 대표되는 G 시리즈의 인피니티 패밀리 룩을 유지하면서, 트렁크와 일체형으로 디자인 된 스포일러와 듀얼 머플러로 스포츠 세단의 날렵함을 강조했다. 내부는 새로운 센터 콘솔과 계기판 디자인을 채택했고, 인테리어 재질도 고급스럽게 개선했다. 또 LCD 계기판 조명은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꿔 세련미를 더했다.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업그레이드하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낮췄다. 프리미엄 트림은 100만원을 인하한 4,890만원, 스포츠 트림은 30만원을 낮춰 5,260만원에 내놓았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18인치 휠과 패들 시프트를 장착, 주행의 재미를 배가시킨 스포츠 모델이다.

뉴 G37의 가장 큰 매력은 폭발적인 성능에 있다. 이 차는 세계 10대 엔진 최다연속(14년) 수상에 빛나는 3.7리터 4세대 VQ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330마력(@7,000rpm)에 최대토크 36.8kg.m(@5,200rpm)의 강력한 파워를 자랑한다. 닛산이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스포츠카 370Z에 장착한 엔진과 같다. G37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속도로에 나서니 어떤 차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절로 생겼다. 액셀을 꾹 한번 밟자 시속 150km까지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갔다. 마음만 먹으면 200km까지 가속이 가능할 듯 했다. 경사가 제법 되는 오르막길에서 시속 130~140km를 유지해도 rpm은 2,000대에 머물렀다. 또 수동모드가 탑재된 7단 자동변속기는 거의 충격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변속 성능을 자랑했다.

운전자의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세단인 만큼 다양한 첨단 안전사양을 갖췄다. 특히 고속주행에서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차체자세제어장치(VDC)와 4륜 ABS, 전자제어 제동력배분 시스템(EBD)을 장착했다. 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차내 곳곳에 설치된 첨단 어드밴스드 에어백 시스템과 앞좌석 탑승객의 경추 보호를 위한 액티브 헤드레스트를 탑재했다.

뉴 G37의 또 다른 장점은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주행성능에도 불구하고 공인연비가 9.5km/l에 달한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내세우는 공인연비는 실제 주행을 하면 크게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차는 기대 이상이었다. 급가속과 고속 주행을 반복해도 연료계 바늘이 생각만큼 빨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승택기자 lst@sportshankook.co.kr

설마했는데 신기록, 런던 보험사 김연아에 1백만불 지급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승한 김연아가 보험금 66만 파운드(미화 100만 달러)를 받게 됐다고 27일 보도했다.

보험금 지급회사는 런던의 로이드.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면 100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기로 하고 이를 로이드에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다.

로이드 측은 김연아의 금메달은 확실시 되지만 신기록 우승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믿고 한국 금융기관들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골프의 '홀인원'이나 다름없어 보험을 들어줬는데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신문은 로이드 보험사가 결국 손해를 보게 됐지만 김연아의 기념비적인 연기에 감탄을 금치못하고 있다며 곧 보험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은행들이 내건 조건은 김연아가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작성한 207점을 깨고 우승하는 것. 이 점수는 당시 세계 신기록이었다. 올림픽에서 이 점수를 돌파해 금메달을 목에 걸면 1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밴쿠버에서 228.56점이란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해 보험금 지급엔 논란의 여지가 없게 됐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 해 김연아의 소득은 거의 900만 달러. 이번 보험금을 합산하면 지금까지 1,0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천만장자의 대열에 서게 됐다.


[김연아 퍼펙트 금메달] 연기·외모·승부근성… 그리고 따뜻한 심성

김연아(고려대)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김연아는 진정한 ‘피겨 여제’에 등극했다. 여제답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카리스마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완벽한 외모에 맞먹는 흠 잡을데 없는 연기. 여기에 항상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는 승부사 근성까지 갖췄다. 김연아의 4대 매력 포인트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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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김연아 <IB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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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김연아 <IB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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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김연아 <IB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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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 <IB스포츠 제공>
▲ 김연아 <IB스포츠 제공>
▲ 김연아<IB스포츠 제공>

김연아는 청순미와 섹시미를 함께 갖췄다. 얼굴은 지극히 동양적인 마스크로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다. 체력 훈련으로 다져진 몸매는 가히 ‘명품’ 수준이다. 빙판 위에 올라서 연기를 시작할 때 관중들은 김연아의 조각같은 자태에 숨을 죽인다. 김연아의 동양적이고 신비스러운 매력은 한국을 넘어서 전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이번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김연아는 성숙한 표현력과 기술의 완성도를 위해 쇼트프로그램은 영화 007 시리즈의 주제곡인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를 택했다. 프리스케이팅은 미국인 음악가 조지 거슈윈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내세웠다. 김연아의 연기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점프의 교과서’라는 별명답게 탁월한 기술력과 예술적인 표현력을 맘껏 표출했다. 김연아는 결국 2009~10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 ‘트로페 에릭 봉파르’에서 210.03점을 획득, 당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이후 밴쿠버에서 김연아는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 “금 땄어요”
김연아가 26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밴쿠버 AP 특약

김연아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뛰어난 승부근성이다. ‘강심장’으로 경기에 대한 부담을 잘 소화해낸다. 이번에도 김연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국민이 보내는 성원과 기대였다. 하지만 김연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담감을 훌륭히 극복해냈다. 승부사 기질이 뛰어난 김연아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 탓에 2007·2008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김연아는 다시 일어섰다. 2009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2009 ISU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 ISU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3차례 우승(2006·2007·2009년) 등 세계 정상의 선수로 자리매김해왔다.

게다가 김연아는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지녔다. 자선 아이스쇼를 벌여 올린 수익금을 전액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고,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교복과 장학금을 선뜻 쾌척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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