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올해 입시도 결국 죽음의 트라이앵글"
출처: 중앙일보 2007.06.26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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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2007.02.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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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 21세기와 지도자

역사 속에는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인(仁)의 정치를 실현한 군주가 있었는가 하면, 폭군으로 격하된 왕도 있었고, 복잡한 당대 현실 속에서 우유부단한 정치적 행보를 보인 통치자도 있었다. 또 인류사에서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 준 지배자도 존재했다. 21세기에도 그러한 지도자는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했지만, 어떤 영웅은 역사의 냉철한 심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도자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고 있을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악하다고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들이 지닌 선악의 유무와 관계없이 역사 속에서 뭇사람들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그 통치 행위가 21세기의 잣대로만 평가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前)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칭기스칸도 우리 입장에서는 침략자이지만, 몽골 사람들에겐 영웅이다. 호치민은 베트남 민중들에겐 ‘호’아저씨로 통하는 정치가이자 지도자이지만, 미국에게는 다시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의 화신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도자의 절대적인 모델은 없는 것일까? 또한 과거의 지도자를 무조건 추앙하거나 매도하는 건 정당한 것인지, 또 우리가 추구하는 지도자의 전범(典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옛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낸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처럼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현대에서도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다. 한 사람은 그의 법가(法家)사상에서 동양의 군주론을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정치 사상을 ‘군주론’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찾아보도록 하자.

2. 한비의 『한비자』

 (1) 한비는 누구인가?

한비는 법가 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그가 태어난 해는 명확하지 않으며 기원전 233년 진나라의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사마천의 『사기』중『노자한비열전』의 기록에 그를 언급한 내용이 나오는데, 한비는 한나라의 귀족 공자 출신이며 형명(刑名) 및 법술(法術)의학, 다시 말하면 법가 사상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학문을 익혀 봉건 전제 정치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법가 이론을 집대성 했다.

한비는 일찍이 순자의 문하생이 되었는데, 귀족 출신이긴 했지만 다른 제자 백가의 사상가들과는 달라 언변이 서툴고 말을 더듬는 눌변가였다고 한다.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로서 저물어가는 한나라를 되살리려고 끊임없이 부국강병을 주장했으나, 당시 한나라 왕인 안(安)은 그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비는 조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분노, 섭섭함 등을 글로 써 홀로 한탄한다는 내용의『고분(孤憤)』, 나라를 좀먹는 다섯 마리의 해충이라는 『오두(五?)』, 『설난』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탁월함을 알아 본 것은 진시황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비의 글을 보고 “과인이 이 글을 지은 자와 만나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하면서, 진나라의 재상이였던 이사(李斯 : 한비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가 세운 계략으로 한나라를 공격하게 되었다. 한 나라의 왕은 한비를 사신으로 보내 전쟁 중단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사의 질투와 음모에 걸린 한비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보았으나 진시황은 그들을 투옥하였고, 한비에게 약을보내 자살하게 였다. 그가 죽은 지 3년 후 한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한비는 진시황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그의 사상은 결국 진시황에 의해 실현되었다. 진시황이 취한 태도와 방법은 단 한 가지도 한비의 법술에 따르지 않았던 일이 없었다는 후대의 전언이 그것을 말해 준다. 결국, 한비의 이론은 춘추 전국 시대를 마감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고, 그는 새로운 사회 조직을 만들어 내는 선도자의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2)『한비자』는 어떤 책인가?

지금 우리에게 저해지고 있는 『한비자』는 총 20권 5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법가의 대표자인 한비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법치술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비자』에는 역대의 수많은 인물, 역사적 사건, 우화 등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고대 사회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경도된 것으로 보고, 설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힘이 없는 것이기에 정치를 논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세상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정책이 반드시 현실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주장은 공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현실에 대응하는 법을 펴고 측근, 신하, 학자, 백성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한비는 범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데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3) 한비의『한비자』와 법치 만능주의

한비가 주장하는 법가 사상의 핵심은 법(法), 술(術), 세(勢)이다. ‘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며, ‘술’은 인간을 다루고 조종하는 방책이고, ‘세’는 ‘법’과 ‘술’을 발휘하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권한을 뜻한다. 이 권한은 하늘이 부여한 것도 아니고 왕이기 때문에 부여받은 것도 아니며, 오로지 왕이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법’을 근거로 통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법은 성인이나 옛날의 제도에 따라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한비는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법은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고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법이 신분이나 직책에 구애되지 않고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비는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다양한 이익이 상충하는 인간 사회에서 군주가 신하와 백성의 충성심만 기대한 채 정치를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에게 유가의 성선설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순자의 성악설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래서 한비는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법’을 제시한다. 법을 바로 세워 잘 운용하면 질서가 자연히 확립될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철저한 준법을 위해 형벌을 부과하여 두려움을 주고, 법을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하여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떠한 관용이나 정도 섞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을 빈틈없이 정비했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것은 인간이다. 군주 혼자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신하로 하여금 법을 운용하게 한다. 하지만 군주와 신하의 이익을 상충하게 마련이므로, 군주는 신하를 자기 마음대로 따라오게 잘 다스려야 한다. 여기서 ‘술’이 필요하다. 신하의 심리를 잘 조종하면 천하는 군주에 의해 잘 다스려진다. 군주는 신하의 모든 것을 알지만 신하는 임금의 정체를 전혀 모르게 하여 신하의 적나란한 모습을 살피고, 신하의 뜻대로 일을 맡기되 철저히 성과에 따라 상벌을 단행하는 것이 ‘술’의 주요 내용이다.

한비의 정치 이론은 도덕과인의를 기반으로 한 유가 사상과 배치된다. 그래서 한비의 입장에서 왕은 법에 의해 다스려지기 때문에 성인이나 구자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가가 강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왕권이 강해야 한다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법도 강한 왕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도, 적용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비의 법치는 군주를 위한 것이지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비자』에서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왕권이 주창된다. 그래서 이 책이 까다로운 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진시황에 의해 악용된 측면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한비는 노자의 ‘무위자연설’, 순자의 ‘성악설’,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조화하여 법치 사상을 『한비자』에 집대성한 것이다. 그것은 공명 정대한 법치를 바탕으로 한 법률 만능주의였고, 궁극적으로 군주 통치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정치 사상서였으며, 결국 유가 사상을 넘보는 중국 역대 군주의 통치 지침서가 되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현실적이면서 실천적인 정치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당대에 유가를 뛰어넘는 진보적 사상을 구현한 것이었으나, 인간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과 통치자의 경도된 사상 등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지니는 부조리나 권모술수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주의와 비교하면서 다시금 그의 사상의 명암을 재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4) 21세기에 바라본 『한비자』의 의의

21세기의 시각에서 보면 한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의 마음을 믿지 말라. 인간이 행한 공과만 따져라.”라고 주장한 한비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통치자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 구결되며, 그의 사상은 한 쪽으로 치우친다. 즉, 현비의 법치는 전적으로 군주를 위한 것이지 백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비의 법은 절대 왕권에 대한 복종이고 백성에 대한 폭정이었다.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그릇된다. 군주가 자신의 아들이나 부인을 지나치게 신뢰한다면 간식들을 태자나 그 분인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무릇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과 자식도 신뢰할 수 없거 늘 그 밖의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중략) 의사가 환자의 고름을 빨아 내기 위해 상처를 빨아서 나쁜 피를 입 안에 머금는 것은 그 환자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사회나 국가도 철저한 ‘권력 추구’, ‘이익 추구’의 장인데, 이것은 군신 관계나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된 내용은 21세기에 그릇되게 벌어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지적하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런 현실이 과거나 현재에도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인의의 정치’, 혹은 ‘예의 정치’로 논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인식 태도 이면에 깔린 의식 태도의 볼온함이 가져다주는 불편함을 극복할 필요성도 있다. 세상은 위와 같은 양상과 현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한비의 한계를 우리는 좀더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법은 냉정하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3. 마키아벨리와『군주론』

 (1)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

1469년에 출생하여 1527년에 사망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역사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였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498년부터 피렌체의 내정과 군사를 담당했다. 1512년 메디치 가(家)가 피렌체로 복귀하게 되자, 한때 음모죄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이 때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주요 저서로는 『군주론』과 『로마사론』이 있다.

그는 서양에서 현실주의적인 정치 사상가였고, 한비와 마찬가지로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학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으며, ‘권력의 화신’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근대 정치 사상의 기원이 된 책이다. 이 책은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을 주장했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가 강력한 군주 밑에서 프랑스 및 에스파냐 등 강대국과 대항하여 통일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2) 마키아벨리의『군주론』과 마키아벨리즘

『군주론』은 마키아벨 리가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 통치에 관한 지침서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쓰면서 외양상의 수사나 인위적인 기교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으며, 권력의 획득, 유치, 팽창에 대해 모든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한 채 책을 서술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 비난이 거세지자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군주론』에서 강조하는 가장 근본적인 주장은 ‘군주는 만약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 악행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 사회 불안의 해결책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단지 자기의 권력과 세력을 팽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도덕성·종교심·논리성을 저버리며,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사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는 해석 방식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군주론』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하고 있으며 분명 통치자의 정치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군주가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란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현재까지 고전의 지위를 잃지 않고 논쟁거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 이전까지의 정치는 윤리와 동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소크라테스 때부터 절대적으로 선하고 윤리 적인 정치가 추구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가 현실적으로 그렇게 순수하고 정의로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혼란한 당대 이탈리아의 분열을 보면 그의 주장이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실적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지는 않을까?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마키아벨 리가 악덕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덕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공인의 덕과 사인의 덕은 서로 다른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위한 쪽을 선택할 것을 권했을 뿐이다. 더구나 같은 악덕이라도 덜 악한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 내실보다 외양을 중시한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 때문이다. 그도 군주가 군주로서 갖춰야 할 덕을 모두 갖추는 것은 ‘좋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덕을 갖춘 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군주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지지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가 오늘날 우리와 같은 공화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부분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도입해야 할 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충고했다.

“새로운 형태의 정부 수립을 주도하는 행위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 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게 반대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은 기껏 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고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는 데에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며 행동하는 데에 그친다. 따라서 혁신자와 그 지지자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 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여우와 같은 간사한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신의가 두텁고 종교심도 많으며 인격이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고대 로마인이 가진 역량과 생각을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인들의 마음 속에서 다시금 불러일으켜야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탈리아에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도덕 이나 종교를 타파하고 그에 구속되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정치는 일체의 도덕이나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과 종교에 반하더라도 목적 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反)도덕성, 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는 정치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이말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의 참뜻이 이해되지 않고, 도덕과 종교의 부정이라는 일면만이 강조되어 그의 사상 전체가 비난을 받게 된 셈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이 사악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한관련이 있다. 당신에는 종교적·도덕적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며 상대방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즘은 정치 선전을 위한 좋은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군주 측은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내심 환영했으나, 그들과 다른 이익 관계를 가진 교황과 귀족 층은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을 내세워 군주를 비난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 방식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을 모두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가 반드시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즘을 사악한 것으로 비난하는 최초의 글을 남기 인물은 영국의 추기경 폴(Pole)이었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인류의 적으로 비난하고, 『군주론』은 진정한 신앙심을 말살하고 사회 생활을 파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사악한 마키아벨리상이 최초로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 목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모두 마키아 벨리즘의 실천이라고 간주되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을 빗대어서 ‘마키아벨리의 이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3) 국가의 통합 및 부국강병을 위한선택과 『군주론』

사악한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는 점점 확대되어 갔으나 군주와 정치가들은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도덕적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그 유용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은 다른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게 된다. 16세기 말에서부터 약 1세기 간 정치 저술들은 ‘국가 이성’ 과 ‘국가 기밀’의 개념을 통해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정치적 이점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이 두 가지 개념도 이미 고전 ·고대 시대부터 전해 왔던 것들이지만, 이 시기에 등장한 이것들은 마키아벨리즘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다른 개념을 내포한 것이었다.

‘국가 이성’ 이란 넓은 의미에서 국가를 보존하고 그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치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통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가 무엇보다도 국가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그의 국가 이성은 마키아벨리즘과 동일시 된다. 그러나 도덕적 명분이 중시되던 종교 전쟁 시대에 나타난 국가 이성론은 그리스도교적 국가 이성과 사악하고 허위적인 국가 이성, 즉 마키아벨리적 국가 이성으로 양분하였다. 이로써 국가 이성론은 종교적 대의를 옹호하는 도덕적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국가 이성의 현실적 유용성을 확보하려한 점에서 마키아벨리즘과는 구별된다. 이는 세속 정치의 논리적 근거로 작용한 국가 이성을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였다.
국가 이성에 대한 이론적인 정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마키아벨리의 정치 격언들은 군주들 사이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사악한 그의 주장을 선한 군주의 정치 속에 어떻게 용해시킬까 하는 것이었다. 국가 기밀론 역시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획득하여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중점을 둠으로써 본질적으로는 국가 이성론인 마키아벨리즘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상의 두 가지 논의는 절대 군주정으로 대별되는 근대 국가의 정치 체제가 요구하는 마키아벨리즘과 종교와 도덕을 내세워 그런 경향을 비난하던 반(反)마키아벨리즘 사이에서 야기되는 상호 모순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은 30년 전쟁을 고비로 서서히 쇠퇴하였는데, 그것은 종교 전쟁의 마감으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논의의 첨예성이 무뎌졌기 때문이지 마키아벨리즘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상실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키아벨리즘은 개인보다 국가를 위하고 국가 지도자의 통치의 효율성 등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더불어 한 공동체의 발전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되고 그것이 곧 절대적인 선으로 기능한다고 판단할 때 등장할 수 있는 ‘필요악’ 이라는 시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 국가의 동력을 진작시키는 힘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마키아베리즘은 사회가 혼란하거나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공동체에서 종종 유행처럼 회자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한편, 이 사상은 지도자의 리더십을 지나치게 계급적 우위로 판단할 때 등장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4. 통치자를 위한 이데올로기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며, 군주 한 사람으로 인해 그 나라의 우명이 좌우된다. 따라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주는 인간의 악함이라는 본성을 잘 보여 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믿음보다는 의심으로 사람을 쓰고 관대함보다는 잔인함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는 군주와 신하 또는 백성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는 너무나 사사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신하는 군주를 위해서 일하기보다 는 군주를 돕는 일이 결국엔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충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고, 백성은 군주가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 힘쓰기 때문에 충성한다. 이런 점에서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의식의 동일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자신들의 사상을 확립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한비나 마키아벨리는 그들의 저서에서 어떻게 함으로써 구주가 강해지고, 위기 상황에서도 그 권력을 통해 절대적인 국가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법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통치 체계를 주름잡은 사람으로서, 인간을 조종하거나 비도덕적인 면이 지도자가 갖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었다는 것은 당대의 정치 현실을 고려한다면 통치자로서의 적합한 성격이 악함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유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절대적인 선이 아니다.

신하나 부하,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활용할 때, 통치자의 입장에서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그들은 법의 논리로 혹은 국가의 논리로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한비와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인간에 대한 선함을 기대하기보다 사악함에 초점을 맞춘 두 사상가의 입장에서 백성과 도덕은 사치스러운 존재이자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한 사상의 바탕은 그것이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를 위한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비와 마키아벨리 역시 21세기의 시각에서는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21세기 민주 국가에서도 한비의 사상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일방적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그러나 21세기의 지도자론, 통치론, 리더십이 무엇인가라는 반문했을 때,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두 고전이 지니는 가치는 결코 폄하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존재하는데, 그 이기심을 제어하고 공통의 선을 추구하는 길로 가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를 고전에서 찾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현실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열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훌륭한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화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형성된 지금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더욱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이 가져다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와 실망이 때로는 과거의 정치 사상의 흔적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승화되길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박한 바람인지 아니면 고전에 대한 애착인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한비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2. 두 고전의 내용 속에서 21세기의 지도자가 취할 가능성이 있는 요건을 찾아보고, 그 내용이 지니는 위험성을 민주공화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해 보자.
3. 인간의 이기심이 낳을 수 있는 해악이 곧 국가의 해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와 그렇지 않은 예를 열거해 보고, 바람직한 21세기 지도자라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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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의 『인간 현상』

『인간 현상』의 핵심 내용

샤르댕은 폭넓은 지질학, 고생물학적 지식과 신학 사상에 바탕을 둔 진화 사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정신세계에 관한 저서가 『인간 현상(Le Phenomene huimain)』이다. 『인간 현상』은 그의 저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1938에서 1940년 사이에 쓴 것인데 이 책에서 그는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류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밝히고 있으며 과학은 물론, 신학과 철학,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의 논지는 한 시대를 이끌어 나간 사상가로서의 명성이 조금 부족함이 없다.

『인간 현상』은 『이른 생명』, 『생명』, 『생각』, 『다음 생명』의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진화의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는데, 1장과 2장 즉, 『이른 생명』과 『생명』의 부분에서는 과학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진화의 진행 과정을 보여 주며, 나머지 두 장에서는 진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물리, 화학 등 과학에 근거하여 진화를 서술하는 1, 2장에도 역시 진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시각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가 말하는 진화는 완성되지 않은 하나의 과정이며, 사람과 기타의 모든 존재는 진화의 과정상에 있는 현상이다. 그는 글 전체를 통해 이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완성되지 않음과 마지막 정신적 통일체(오메가 포인트)로의 논력을 역설하고 있다.


1. 이른 생명

먼저 『이른 생명』의 장에서는 우주의 바탕,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물질, 기리고 지구의 탄생까지가 언급되어 있다. 우주는 『수없이 많은 여럿』이 하나의 『조직』을 이룬 것이다. 모든 물질을 수없이 쪼개다 보면, 계속 작은 알갱이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쪼개고 나눌수록 물질은 『원래 하나』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원래 하나』인 수많은 개체가 상호 작용에 의해 연결되어 조직화된 것이 우주이다. 결국,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기초는 『여럿』, 『하나』 그리고 그것들을 조직화시켜 주는 『에너지』, 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2. 생 명

『여럿이 하나 됨』이라는 것은 샤르댕의 진화 사상을 구성하는 큰 줄기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무기물 덩어리였던 지구에 수분이 생성되고 점차로 유기체들 즉, 『생명』이 탄생된다. 『생명』은 인간 존재의 전제가 된다. 생명이라는 것에는 굳이 다른 변화의 의미가 포함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진화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샤르댕은 이러한 진화적 생명을 『본다는 것』으로 함축하고 있다. 진화라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더욱 진보된 하나 됨』인데, 『하나 됨』은 의식의 증가를 통하여 증가되고 의식의 증가는 곧 『본다는 것』의 증가를 의미하게 된다. 더 많이 더 확실히 보고자 하는 노력이 인간의 발달을 이룬 원동력이자 진화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3. 생각과 다음 생명

본다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은 『생각』이다. 바라보는 것이 의식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이라 할 때는 『생각』과 구별되지 않는 듯이 보이나, 생각하는 것은 반성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것이고 『생각』이 등장한 이후에 비로소 생명이 생명을 비판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이 세상에 가져다주었다. 반성하는 이성이 출현한 이후 인류는 그 존재로서 새로운 대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성과 지각이 더욱 충실한 하나 됨을 가져다주는 세계인 『얼누리』가 펼쳐진 것이다. 현대 세계의 본질은 얼누리에 있다. 사실 진화를 인식한 것도 얼누리가 펼쳐진 이후요,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도 이러한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샤르댕은 얼 에너지의 물질 에너지에 대한 우위를 인정했다. 인류 속에 들어 있는 물질적 기계적인 힘을 점차 얼로 다스려 참된 문명을 이룩하는 길, 그것은 사람됨의 과정이며 거기에 오메가 포인트가 있다. 오메가 포인트란, 흩어진 여럿이 하나로 되는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모든 원소, 개체, 개인이 모인다. 그러나 이 하나 됨은 개체가 전체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체성이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오메가 포인트는 인류가 가야 할 미래이다. 결국, 진화의 마지막은 『얼의 힘』을 통해 찾을 것이고, 반성하는 이성의 힘, 얼의 힘만이 인류를 진화의 종착점인 오메가 포인트로 안내할 것이다.

4. 정신과 물질의 양면성

샤르댕은 『인간 현상』 전체를 통해 사물의 의식의 결합, 조화를 시도한다. 그는 과학에서의 물질주의와 정신주의, 결정론자와 목적론자 사이의 대립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대립의 원인으로 조화를 이루려 하지 않는 학자들의 태도를 지적하면서, 각각의 과점이 현상학이나 일반 물리학을 통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고 하여 보편적 사고와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 합치적, 일원적 사고방식은 그의 저서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우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해서 적는 단순하면서도 진실 된 그의 과학관이며 방법론이다.

『인간 현상』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이 책에 대해 혼란을 갖게 될 것이다. 과학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형이상학이나 신학에 가까운 내용들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염려하며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과학책이다. 존재에 관한 물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실을 관찰하고 늘어놓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사실들의 상호 관계와 뜻을 찾으려 노력하여 자신만의 세계관을 그려 나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모든 사물이 물질과 정신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 생명, 우주 등으로 귀착되는,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 역시 이를 반영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사물의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다루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저자가 말한 얼누리의 단적인 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물질과학의 범주를 넘어 내면과 의식을 바라보며 정신세계를 자연 과학과 별개로 하지 않고 과학을 통해 정신세계를 마련하려 한 샤르댕의 사상은 그 가치가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프랑스가 자랑하는 금세기의 저명한 지질학자요, 고생물학자이고 또한 예수회 신부이기도 하였던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hard de chardin ; 1881~1955)』은 1881년 오베르뉴 지방의 오르니크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지질학에 관심이 있는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샤르댕은 11세가 되면서 부모의 가정교육을 벗어나 예수회가 운영하는 노트르담 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 시절부터 그는 자연과 만물의 존재에 신비를 느끼고 지질학에 몰두하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진화 신학의 바탕을 쌓아 가게 된다. 18세가 되면서 예수회에 입단, 수련 수사가 된 샤르댕은 1904년 예수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자 샤넬 섬에서 신학, 철학 등을 계속 공부하였고, 이듬해인 1905년에는 24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카이로의 예수회 대학에서 철학 등을 가르치게 된다.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로한 그는, 1912년에 귀국하여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서 저명한 고생물학자인 마르셀렝 블러에게 수학하면서 학문적인 영역을 넓혀 나갔고 1919년부터는, 파리의 가톨릭 대학에서 지질학 교수로서 생활하였다. 그 뒤 1923년,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연구하기 위해 몽골로 첫 번째 파견을 나간 이후 그는 극동 지방과 만주, 시베리아 등의 아시아에서 고고학을 연구해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고생물학자로서 샤르댕은 아시아 포유류 화석을 연구하여 화석의 연대 측정, 퇴적물과 단층 사이의 상호 관계 등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그가 참여한 북경 원인의 발굴은 20세기의 고생물학에 가장 큰 성과로 인정될 만큼 위대한 업적이 있었다.

생각해 볼 문제

1. 샤르댕의 진화 사상과 다윈의 진화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2. 샤르댕은 인류 진화의 종착점(오메가 포인트)을 얼 에너지가 물질 에너지보다 우위를 점령하고, 참된 문명 을 이룩하여 사람됨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을 유물론의 시각에서 비판해 보고,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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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부분과 전체』의 핵심 내용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살았던 최근 50년간에 발전해 온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자 역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이 책에서 원자 물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화된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배움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성찰의 자세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복잡한 수학적 관계에 대한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는 일화들을 인용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대 원자 물리학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의 생성 과정-그 중에서도 원자 물리학 분야의 탄생과 그 발전의 역사에 수반되었던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을 분명하게 기술함으로써 다양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 결국에는 학문적 의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자연 과학과 종교의 가치 기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통하여, 자연 과학이란 실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겸손하게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20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 중에 가진 원자 세계에 대한 첫 대화로부터 시작된 원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뮌헨 대학에서의 이론 물리학 분야로의 입문, 이후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토론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차 모인 폴 디랙, 볼프강 등과의 모임에서는 자연 과학(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종교(가치의 세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한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는 플랑크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 자신이 지식과 신앙이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는 인간 공동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젊은 실험 물리학자인 버튼과의 토론에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기술자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버튼의 주장과는 달리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술자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 과학(양자 역학)과 철학(인과론)의 관계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그레테 헤르만은,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근대 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체이며, 모든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하므로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고,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하는 한도에서 자연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인과율을 다음의 예를 통해 부정한다.

우리는 조만간 라듐B 원자는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붕괴를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B 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방향 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은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헤르만의 주장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결국에는 칸트주의자뿐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칸트 철학과 현대의 자연 과학에 대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라는 개념에 대한 파울리 볼프강과의 폭넓은 철학적, 역사적, 물리적 지식에 입각한 대화와 그의 나이 20세밖에 되지 않은 해에, 4학기 째로 접어든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 닐스 보어를 상대로 원자론에서의 보어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과감하게 제기했던 일은 그의 학문적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봄, 물리학의 아성인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토론회에서 양자 역학에 관하여 보고하도록 초청을 받게 된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인슈타인과 가진 자연 법칙과 이론의 철학적 기초들에 대한 토론과 1926년 뮌헨의 세미나에서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한 물리학 해석에 대한 토론, 그 밖에도 다양한 일화를 통하여 여러 모로 서로 다른 분야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당시로서는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다양한 난점과 내부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자 물리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단순히 학자로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로서 그는 청년 운동이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새롭고 올바른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건축 연구소, 민중 학교, 고전 음악의 장려 등과 같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3. 부분과 전체

글의 머리말에서처럼 토론과 대화에서 원자 물리학이 항상 주연만을 맡아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비단 원자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 자체가 이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고 강연에 참석한 그는, ‘상대성 이론이란, 독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대인 신문들의 과대 선전에 의해서 부당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아주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사변(思辨)을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인물의 주동자가 실험상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되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문적인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전문화되고 더욱 구체화된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이로부터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에서의 각각의 부문들과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성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급격한 과학 기술 및 정보량의 유출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각 분야를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개의 부분적인 질서와 함께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와의 관련성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의 예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나치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류라는 전체성을 잊어버린 채 그릇된 부분적 질서에만 집착함으로써 유발되는 폭력성과 같은 사상적 편견의 위험성을,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한 청년과의 대화를 통하여 기술함으로써 비단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과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사상적 편견에 대하여 경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질서에 대해 충실했을 때 유발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 물리학 이외에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이민, 파괴의 혼란과 개개인의 고립화와 상호간의 이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협소한 유럽, 강압적인 나치 정권하에서 탈피하여 자연 과학의 커다란 비약과 준비된 조건 속에서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후 독일의 과학을 재건하고자 그의 주위에 모인 뜻 있는 젊은이들과 자신의 조국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치즘의 강압에 의해 위험한 과학적 발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라는 전체성을 염두에 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력 무기로서 개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원자 물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이 책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진리 추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했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의 흔적이 진리의 상아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토론의 장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소개

『베르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당대 최고의 석학인 조모펠트,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았으며, 원자 또는 분자의 미시적 구조는 물론 화합물들 사이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는 입자―파동 이중성을 바탕으로 한 양자 역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 구조 이론에 협력하고 현대 양자 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에 의한 양자 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생각해 볼 문제

1.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기반을 각기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부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같은 구분의 타당성 여부를 생각해 보자,

2.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과론적 세계관(인과율)을 부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젠베르크는 인과율을 부정하는 설명으로,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라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논지의 예로 ‘라듐B 원자’의 이행을 들고 있는데,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이러한 예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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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부분과 전체』의 핵심 내용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살았던 최근 50년간에 발전해 온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자 역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이 책에서 원자 물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화된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배움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성찰의 자세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복잡한 수학적 관계에 대한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는 일화들을 인용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대 원자 물리학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의 생성 과정-그 중에서도 원자 물리학 분야의 탄생과 그 발전의 역사에 수반되었던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을 분명하게 기술함으로써 다양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 결국에는 학문적 의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자연 과학과 종교의 가치 기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통하여, 자연 과학이란 실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겸손하게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20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 중에 가진 원자 세계에 대한 첫 대화로부터 시작된 원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뮌헨 대학에서의 이론 물리학 분야로의 입문, 이후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토론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차 모인 폴 디랙, 볼프강 등과의 모임에서는 자연 과학(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종교(가치의 세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한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는 플랑크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 자신이 지식과 신앙이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는 인간 공동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젊은 실험 물리학자인 버튼과의 토론에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기술자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버튼의 주장과는 달리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술자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 과학(양자 역학)과 철학(인과론)의 관계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그레테 헤르만은,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근대 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체이며, 모든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하므로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고,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하는 한도에서 자연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인과율을 다음의 예를 통해 부정한다.

우리는 조만간 라듐B 원자는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붕괴를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B 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방향 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은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헤르만의 주장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결국에는 칸트주의자뿐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칸트 철학과 현대의 자연 과학에 대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라는 개념에 대한 파울리 볼프강과의 폭넓은 철학적, 역사적, 물리적 지식에 입각한 대화와 그의 나이 20세밖에 되지 않은 해에, 4학기 째로 접어든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 닐스 보어를 상대로 원자론에서의 보어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과감하게 제기했던 일은 그의 학문적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봄, 물리학의 아성인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토론회에서 양자 역학에 관하여 보고하도록 초청을 받게 된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인슈타인과 가진 자연 법칙과 이론의 철학적 기초들에 대한 토론과 1926년 뮌헨의 세미나에서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한 물리학 해석에 대한 토론, 그 밖에도 다양한 일화를 통하여 여러 모로 서로 다른 분야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당시로서는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다양한 난점과 내부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자 물리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단순히 학자로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로서 그는 청년 운동이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새롭고 올바른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건축 연구소, 민중 학교, 고전 음악의 장려 등과 같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3. 부분과 전체

글의 머리말에서처럼 토론과 대화에서 원자 물리학이 항상 주연만을 맡아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비단 원자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 자체가 이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고 강연에 참석한 그는, ‘상대성 이론이란, 독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대인 신문들의 과대 선전에 의해서 부당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아주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사변(思辨)을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인물의 주동자가 실험상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되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문적인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전문화되고 더욱 구체화된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이로부터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에서의 각각의 부문들과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성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급격한 과학 기술 및 정보량의 유출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각 분야를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개의 부분적인 질서와 함께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와의 관련성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의 예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나치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류라는 전체성을 잊어버린 채 그릇된 부분적 질서에만 집착함으로써 유발되는 폭력성과 같은 사상적 편견의 위험성을,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한 청년과의 대화를 통하여 기술함으로써 비단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과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사상적 편견에 대하여 경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질서에 대해 충실했을 때 유발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 물리학 이외에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이민, 파괴의 혼란과 개개인의 고립화와 상호간의 이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협소한 유럽, 강압적인 나치 정권하에서 탈피하여 자연 과학의 커다란 비약과 준비된 조건 속에서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후 독일의 과학을 재건하고자 그의 주위에 모인 뜻 있는 젊은이들과 자신의 조국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치즘의 강압에 의해 위험한 과학적 발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라는 전체성을 염두에 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력 무기로서 개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원자 물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이 책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진리 추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했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의 흔적이 진리의 상아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토론의 장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소개

『베르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당대 최고의 석학인 조모펠트,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았으며, 원자 또는 분자의 미시적 구조는 물론 화합물들 사이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는 입자―파동 이중성을 바탕으로 한 양자 역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 구조 이론에 협력하고 현대 양자 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에 의한 양자 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생각해 볼 문제

1.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기반을 각기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부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같은 구분의 타당성 여부를 생각해 보자,

2.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과론적 세계관(인과율)을 부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젠베르크는 인과율을 부정하는 설명으로,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라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논지의 예로 ‘라듐B 원자’의 이행을 들고 있는데,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이러한 예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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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부분과 전체』의 핵심 내용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살았던 최근 50년간에 발전해 온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자 역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이 책에서 원자 물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화된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배움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성찰의 자세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복잡한 수학적 관계에 대한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는 일화들을 인용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대 원자 물리학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의 생성 과정-그 중에서도 원자 물리학 분야의 탄생과 그 발전의 역사에 수반되었던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을 분명하게 기술함으로써 다양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 결국에는 학문적 의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자연 과학과 종교의 가치 기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통하여, 자연 과학이란 실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겸손하게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20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 중에 가진 원자 세계에 대한 첫 대화로부터 시작된 원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뮌헨 대학에서의 이론 물리학 분야로의 입문, 이후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토론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차 모인 폴 디랙, 볼프강 등과의 모임에서는 자연 과학(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종교(가치의 세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한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는 플랑크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 자신이 지식과 신앙이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는 인간 공동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젊은 실험 물리학자인 버튼과의 토론에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기술자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버튼의 주장과는 달리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술자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 과학(양자 역학)과 철학(인과론)의 관계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그레테 헤르만은,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근대 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체이며, 모든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하므로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고,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하는 한도에서 자연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인과율을 다음의 예를 통해 부정한다.

우리는 조만간 라듐B 원자는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붕괴를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B 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방향 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은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헤르만의 주장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결국에는 칸트주의자뿐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칸트 철학과 현대의 자연 과학에 대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라는 개념에 대한 파울리 볼프강과의 폭넓은 철학적, 역사적, 물리적 지식에 입각한 대화와 그의 나이 20세밖에 되지 않은 해에, 4학기 째로 접어든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 닐스 보어를 상대로 원자론에서의 보어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과감하게 제기했던 일은 그의 학문적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봄, 물리학의 아성인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토론회에서 양자 역학에 관하여 보고하도록 초청을 받게 된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인슈타인과 가진 자연 법칙과 이론의 철학적 기초들에 대한 토론과 1926년 뮌헨의 세미나에서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한 물리학 해석에 대한 토론, 그 밖에도 다양한 일화를 통하여 여러 모로 서로 다른 분야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당시로서는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다양한 난점과 내부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자 물리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단순히 학자로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로서 그는 청년 운동이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새롭고 올바른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건축 연구소, 민중 학교, 고전 음악의 장려 등과 같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3. 부분과 전체

글의 머리말에서처럼 토론과 대화에서 원자 물리학이 항상 주연만을 맡아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비단 원자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 자체가 이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고 강연에 참석한 그는, ‘상대성 이론이란, 독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대인 신문들의 과대 선전에 의해서 부당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아주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사변(思辨)을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인물의 주동자가 실험상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되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문적인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전문화되고 더욱 구체화된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이로부터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에서의 각각의 부문들과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성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급격한 과학 기술 및 정보량의 유출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각 분야를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개의 부분적인 질서와 함께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와의 관련성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의 예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나치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류라는 전체성을 잊어버린 채 그릇된 부분적 질서에만 집착함으로써 유발되는 폭력성과 같은 사상적 편견의 위험성을,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한 청년과의 대화를 통하여 기술함으로써 비단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과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사상적 편견에 대하여 경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질서에 대해 충실했을 때 유발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 물리학 이외에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이민, 파괴의 혼란과 개개인의 고립화와 상호간의 이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협소한 유럽, 강압적인 나치 정권하에서 탈피하여 자연 과학의 커다란 비약과 준비된 조건 속에서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후 독일의 과학을 재건하고자 그의 주위에 모인 뜻 있는 젊은이들과 자신의 조국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치즘의 강압에 의해 위험한 과학적 발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라는 전체성을 염두에 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력 무기로서 개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원자 물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이 책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진리 추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했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의 흔적이 진리의 상아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토론의 장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소개

『베르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당대 최고의 석학인 조모펠트,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았으며, 원자 또는 분자의 미시적 구조는 물론 화합물들 사이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는 입자―파동 이중성을 바탕으로 한 양자 역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 구조 이론에 협력하고 현대 양자 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에 의한 양자 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생각해 볼 문제

1.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기반을 각기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부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같은 구분의 타당성 여부를 생각해 보자,

2.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과론적 세계관(인과율)을 부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젠베르크는 인과율을 부정하는 설명으로,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라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논지의 예로 ‘라듐B 원자’의 이행을 들고 있는데,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이러한 예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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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메모 :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메모 :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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