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 21세기와 지도자

역사 속에는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인(仁)의 정치를 실현한 군주가 있었는가 하면, 폭군으로 격하된 왕도 있었고, 복잡한 당대 현실 속에서 우유부단한 정치적 행보를 보인 통치자도 있었다. 또 인류사에서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 준 지배자도 존재했다. 21세기에도 그러한 지도자는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했지만, 어떤 영웅은 역사의 냉철한 심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도자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고 있을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고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악하다고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들이 지닌 선악의 유무와 관계없이 역사 속에서 뭇사람들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그 통치 행위가 21세기의 잣대로만 평가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前)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칭기스칸도 우리 입장에서는 침략자이지만, 몽골 사람들에겐 영웅이다. 호치민은 베트남 민중들에겐 ‘호’아저씨로 통하는 정치가이자 지도자이지만, 미국에게는 다시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의 화신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도자의 절대적인 모델은 없는 것일까? 또한 과거의 지도자를 무조건 추앙하거나 매도하는 건 정당한 것인지, 또 우리가 추구하는 지도자의 전범(典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옛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낸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처럼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현대에서도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다. 한 사람은 그의 법가(法家)사상에서 동양의 군주론을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정치 사상을 ‘군주론’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찾아보도록 하자.

2. 한비의 『한비자』

 (1) 한비는 누구인가?

한비는 법가 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그가 태어난 해는 명확하지 않으며 기원전 233년 진나라의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사마천의 『사기』중『노자한비열전』의 기록에 그를 언급한 내용이 나오는데, 한비는 한나라의 귀족 공자 출신이며 형명(刑名) 및 법술(法術)의학, 다시 말하면 법가 사상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학문을 익혀 봉건 전제 정치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법가 이론을 집대성 했다.

한비는 일찍이 순자의 문하생이 되었는데, 귀족 출신이긴 했지만 다른 제자 백가의 사상가들과는 달라 언변이 서툴고 말을 더듬는 눌변가였다고 한다.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로서 저물어가는 한나라를 되살리려고 끊임없이 부국강병을 주장했으나, 당시 한나라 왕인 안(安)은 그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비는 조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분노, 섭섭함 등을 글로 써 홀로 한탄한다는 내용의『고분(孤憤)』, 나라를 좀먹는 다섯 마리의 해충이라는 『오두(五?)』, 『설난』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탁월함을 알아 본 것은 진시황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비의 글을 보고 “과인이 이 글을 지은 자와 만나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하면서, 진나라의 재상이였던 이사(李斯 : 한비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가 세운 계략으로 한나라를 공격하게 되었다. 한 나라의 왕은 한비를 사신으로 보내 전쟁 중단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사의 질투와 음모에 걸린 한비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보았으나 진시황은 그들을 투옥하였고, 한비에게 약을보내 자살하게 였다. 그가 죽은 지 3년 후 한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한비는 진시황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그의 사상은 결국 진시황에 의해 실현되었다. 진시황이 취한 태도와 방법은 단 한 가지도 한비의 법술에 따르지 않았던 일이 없었다는 후대의 전언이 그것을 말해 준다. 결국, 한비의 이론은 춘추 전국 시대를 마감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고, 그는 새로운 사회 조직을 만들어 내는 선도자의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2)『한비자』는 어떤 책인가?

지금 우리에게 저해지고 있는 『한비자』는 총 20권 5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법가의 대표자인 한비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법치술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비자』에는 역대의 수많은 인물, 역사적 사건, 우화 등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고대 사회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경도된 것으로 보고, 설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힘이 없는 것이기에 정치를 논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세상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정책이 반드시 현실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주장은 공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현실에 대응하는 법을 펴고 측근, 신하, 학자, 백성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한비는 범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데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3) 한비의『한비자』와 법치 만능주의

한비가 주장하는 법가 사상의 핵심은 법(法), 술(術), 세(勢)이다. ‘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며, ‘술’은 인간을 다루고 조종하는 방책이고, ‘세’는 ‘법’과 ‘술’을 발휘하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권한을 뜻한다. 이 권한은 하늘이 부여한 것도 아니고 왕이기 때문에 부여받은 것도 아니며, 오로지 왕이 ‘군주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법’을 근거로 통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법은 성인이나 옛날의 제도에 따라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한비는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법은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고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법이 신분이나 직책에 구애되지 않고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비는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다양한 이익이 상충하는 인간 사회에서 군주가 신하와 백성의 충성심만 기대한 채 정치를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에게 유가의 성선설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순자의 성악설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였다. 그래서 한비는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법’을 제시한다. 법을 바로 세워 잘 운용하면 질서가 자연히 확립될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철저한 준법을 위해 형벌을 부과하여 두려움을 주고, 법을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하여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떠한 관용이나 정도 섞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을 빈틈없이 정비했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것은 인간이다. 군주 혼자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신하로 하여금 법을 운용하게 한다. 하지만 군주와 신하의 이익을 상충하게 마련이므로, 군주는 신하를 자기 마음대로 따라오게 잘 다스려야 한다. 여기서 ‘술’이 필요하다. 신하의 심리를 잘 조종하면 천하는 군주에 의해 잘 다스려진다. 군주는 신하의 모든 것을 알지만 신하는 임금의 정체를 전혀 모르게 하여 신하의 적나란한 모습을 살피고, 신하의 뜻대로 일을 맡기되 철저히 성과에 따라 상벌을 단행하는 것이 ‘술’의 주요 내용이다.

한비의 정치 이론은 도덕과인의를 기반으로 한 유가 사상과 배치된다. 그래서 한비의 입장에서 왕은 법에 의해 다스려지기 때문에 성인이나 구자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가가 강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왕권이 강해야 한다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법도 강한 왕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도, 적용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비의 법치는 군주를 위한 것이지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비자』에서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왕권이 주창된다. 그래서 이 책이 까다로운 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진시황에 의해 악용된 측면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한비는 노자의 ‘무위자연설’, 순자의 ‘성악설’,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조화하여 법치 사상을 『한비자』에 집대성한 것이다. 그것은 공명 정대한 법치를 바탕으로 한 법률 만능주의였고, 궁극적으로 군주 통치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정치 사상서였으며, 결국 유가 사상을 넘보는 중국 역대 군주의 통치 지침서가 되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현실적이면서 실천적인 정치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당대에 유가를 뛰어넘는 진보적 사상을 구현한 것이었으나, 인간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과 통치자의 경도된 사상 등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지니는 부조리나 권모술수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주의와 비교하면서 다시금 그의 사상의 명암을 재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4) 21세기에 바라본 『한비자』의 의의

21세기의 시각에서 보면 한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의 마음을 믿지 말라. 인간이 행한 공과만 따져라.”라고 주장한 한비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통치자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 구결되며, 그의 사상은 한 쪽으로 치우친다. 즉, 현비의 법치는 전적으로 군주를 위한 것이지 백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비의 법은 절대 왕권에 대한 복종이고 백성에 대한 폭정이었다.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그릇된다. 군주가 자신의 아들이나 부인을 지나치게 신뢰한다면 간식들을 태자나 그 분인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무릇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과 자식도 신뢰할 수 없거 늘 그 밖의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중략) 의사가 환자의 고름을 빨아 내기 위해 상처를 빨아서 나쁜 피를 입 안에 머금는 것은 그 환자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사회나 국가도 철저한 ‘권력 추구’, ‘이익 추구’의 장인데, 이것은 군신 관계나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된 내용은 21세기에 그릇되게 벌어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지적하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런 현실이 과거나 현재에도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인의의 정치’, 혹은 ‘예의 정치’로 논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인식 태도 이면에 깔린 의식 태도의 볼온함이 가져다주는 불편함을 극복할 필요성도 있다. 세상은 위와 같은 양상과 현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한비의 한계를 우리는 좀더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법은 냉정하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3. 마키아벨리와『군주론』

 (1)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

1469년에 출생하여 1527년에 사망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역사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였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498년부터 피렌체의 내정과 군사를 담당했다. 1512년 메디치 가(家)가 피렌체로 복귀하게 되자, 한때 음모죄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이 때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주요 저서로는 『군주론』과 『로마사론』이 있다.

그는 서양에서 현실주의적인 정치 사상가였고, 한비와 마찬가지로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학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으며, ‘권력의 화신’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근대 정치 사상의 기원이 된 책이다. 이 책은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을 주장했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가 강력한 군주 밑에서 프랑스 및 에스파냐 등 강대국과 대항하여 통일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2) 마키아벨리의『군주론』과 마키아벨리즘

『군주론』은 마키아벨 리가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 통치에 관한 지침서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쓰면서 외양상의 수사나 인위적인 기교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으며, 권력의 획득, 유치, 팽창에 대해 모든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한 채 책을 서술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 비난이 거세지자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군주론』에서 강조하는 가장 근본적인 주장은 ‘군주는 만약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 악행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 사회 불안의 해결책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단지 자기의 권력과 세력을 팽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도덕성·종교심·논리성을 저버리며,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사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는 해석 방식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군주론』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하고 있으며 분명 통치자의 정치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군주가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란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현재까지 고전의 지위를 잃지 않고 논쟁거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 이전까지의 정치는 윤리와 동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소크라테스 때부터 절대적으로 선하고 윤리 적인 정치가 추구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가 현실적으로 그렇게 순수하고 정의로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혼란한 당대 이탈리아의 분열을 보면 그의 주장이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실적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지는 않을까?

수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마키아벨 리가 악덕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덕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공인의 덕과 사인의 덕은 서로 다른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위한 쪽을 선택할 것을 권했을 뿐이다. 더구나 같은 악덕이라도 덜 악한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 내실보다 외양을 중시한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 때문이다. 그도 군주가 군주로서 갖춰야 할 덕을 모두 갖추는 것은 ‘좋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덕을 갖춘 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군주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지지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가 오늘날 우리와 같은 공화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부분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도입해야 할 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충고했다.

“새로운 형태의 정부 수립을 주도하는 행위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 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게 반대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은 기껏 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고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는 데에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며 행동하는 데에 그친다. 따라서 혁신자와 그 지지자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 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여우와 같은 간사한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신의가 두텁고 종교심도 많으며 인격이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고대 로마인이 가진 역량과 생각을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인들의 마음 속에서 다시금 불러일으켜야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탈리아에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도덕 이나 종교를 타파하고 그에 구속되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정치는 일체의 도덕이나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과 종교에 반하더라도 목적 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反)도덕성, 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는 정치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이말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의 참뜻이 이해되지 않고, 도덕과 종교의 부정이라는 일면만이 강조되어 그의 사상 전체가 비난을 받게 된 셈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이 사악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한관련이 있다. 당신에는 종교적·도덕적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며 상대방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즘은 정치 선전을 위한 좋은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군주 측은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내심 환영했으나, 그들과 다른 이익 관계를 가진 교황과 귀족 층은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을 내세워 군주를 비난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고 방식에 의하여 행동하는 사람을 모두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가 반드시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즘을 사악한 것으로 비난하는 최초의 글을 남기 인물은 영국의 추기경 폴(Pole)이었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인류의 적으로 비난하고, 『군주론』은 진정한 신앙심을 말살하고 사회 생활을 파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사악한 마키아벨리상이 최초로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 목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모두 마키아 벨리즘의 실천이라고 간주되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을 빗대어서 ‘마키아벨리의 이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3) 국가의 통합 및 부국강병을 위한선택과 『군주론』

사악한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는 점점 확대되어 갔으나 군주와 정치가들은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도덕적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그 유용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은 다른 모습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게 된다. 16세기 말에서부터 약 1세기 간 정치 저술들은 ‘국가 이성’ 과 ‘국가 기밀’의 개념을 통해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정치적 이점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이 두 가지 개념도 이미 고전 ·고대 시대부터 전해 왔던 것들이지만, 이 시기에 등장한 이것들은 마키아벨리즘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다른 개념을 내포한 것이었다.

‘국가 이성’ 이란 넓은 의미에서 국가를 보존하고 그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치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통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가 무엇보다도 국가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할 때, 그의 국가 이성은 마키아벨리즘과 동일시 된다. 그러나 도덕적 명분이 중시되던 종교 전쟁 시대에 나타난 국가 이성론은 그리스도교적 국가 이성과 사악하고 허위적인 국가 이성, 즉 마키아벨리적 국가 이성으로 양분하였다. 이로써 국가 이성론은 종교적 대의를 옹호하는 도덕적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국가 이성의 현실적 유용성을 확보하려한 점에서 마키아벨리즘과는 구별된다. 이는 세속 정치의 논리적 근거로 작용한 국가 이성을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였다.
국가 이성에 대한 이론적인 정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마키아벨리의 정치 격언들은 군주들 사이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사악한 그의 주장을 선한 군주의 정치 속에 어떻게 용해시킬까 하는 것이었다. 국가 기밀론 역시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획득하여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중점을 둠으로써 본질적으로는 국가 이성론인 마키아벨리즘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상의 두 가지 논의는 절대 군주정으로 대별되는 근대 국가의 정치 체제가 요구하는 마키아벨리즘과 종교와 도덕을 내세워 그런 경향을 비난하던 반(反)마키아벨리즘 사이에서 야기되는 상호 모순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은 30년 전쟁을 고비로 서서히 쇠퇴하였는데, 그것은 종교 전쟁의 마감으로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논의의 첨예성이 무뎌졌기 때문이지 마키아벨리즘의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상실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키아벨리즘은 개인보다 국가를 위하고 국가 지도자의 통치의 효율성 등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더불어 한 공동체의 발전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되고 그것이 곧 절대적인 선으로 기능한다고 판단할 때 등장할 수 있는 ‘필요악’ 이라는 시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 국가의 동력을 진작시키는 힘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마키아베리즘은 사회가 혼란하거나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공동체에서 종종 유행처럼 회자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한편, 이 사상은 지도자의 리더십을 지나치게 계급적 우위로 판단할 때 등장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4. 통치자를 위한 이데올로기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며, 군주 한 사람으로 인해 그 나라의 우명이 좌우된다. 따라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주는 인간의 악함이라는 본성을 잘 보여 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믿음보다는 의심으로 사람을 쓰고 관대함보다는 잔인함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는 군주와 신하 또는 백성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는 너무나 사사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신하는 군주를 위해서 일하기보다 는 군주를 돕는 일이 결국엔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충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고, 백성은 군주가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 힘쓰기 때문에 충성한다. 이런 점에서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의식의 동일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자신들의 사상을 확립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한비나 마키아벨리는 그들의 저서에서 어떻게 함으로써 구주가 강해지고, 위기 상황에서도 그 권력을 통해 절대적인 국가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법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통치 체계를 주름잡은 사람으로서, 인간을 조종하거나 비도덕적인 면이 지도자가 갖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었다는 것은 당대의 정치 현실을 고려한다면 통치자로서의 적합한 성격이 악함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유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절대적인 선이 아니다.

신하나 부하,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활용할 때, 통치자의 입장에서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그들은 법의 논리로 혹은 국가의 논리로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한비와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인간에 대한 선함을 기대하기보다 사악함에 초점을 맞춘 두 사상가의 입장에서 백성과 도덕은 사치스러운 존재이자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한 사상의 바탕은 그것이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를 위한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비와 마키아벨리 역시 21세기의 시각에서는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21세기 민주 국가에서도 한비의 사상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일방적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그러나 21세기의 지도자론, 통치론, 리더십이 무엇인가라는 반문했을 때, 한비와 마키아벨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두 고전이 지니는 가치는 결코 폄하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존재하는데, 그 이기심을 제어하고 공통의 선을 추구하는 길로 가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를 고전에서 찾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현실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열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훌륭한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공화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형성된 지금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더욱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이 가져다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와 실망이 때로는 과거의 정치 사상의 흔적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승화되길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박한 바람인지 아니면 고전에 대한 애착인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한비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2. 두 고전의 내용 속에서 21세기의 지도자가 취할 가능성이 있는 요건을 찾아보고, 그 내용이 지니는 위험성을 민주공화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해 보자.
3. 인간의 이기심이 낳을 수 있는 해악이 곧 국가의 해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와 그렇지 않은 예를 열거해 보고, 바람직한 21세기 지도자라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