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엄마" 재택 수입보니…'입이 쩍~'

2012-11-19 10:35

 

정리 못하는 사람 인생도 안 풀리는 이유 '충격'

 

대기업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는 K팀장(38세)은 마케팅 총괄 이사에게 혼쭐이 났다.


이사를 모시고 중요한 고객 미팅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출발 전 이사가 갑작스레 요구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매일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일해 온 K팀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단 한 번에 그 동안 열심히 일했던 이미지가 무너져버린 것.


자영업을 하는 J사장(48세)도 최근 정리를 안 하는 습관 때문에 큰 낭패를 겪었다.


책상 서랍에 수북이 영수증이 쌓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경찰서에서 온 우편물을 발견한 것. 열어보니 바로 자동차 압류통지서였다. 작년 연말에 속도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막연히 납부했다고 생각만 하다가 시기를 놓쳐 그만 자동차를 압류당하는 처지에까지 이른 것.



이처럼 K팀장과 J사장처럼 정리를 못하는 사람은 인생마저도 안 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를 하지 못하면 인생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정작 중요한 것들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후회해보지만, 이미 기회는 저 멀리 사라지고 난 뒤이다.


외모의 매력도가 높고 매사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승진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독일 뤼네부르크 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도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정리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 국내 1호 정리컨설턴트인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의 책 『하루 15분 정리의 힘』(위즈덤하우스)은 이처럼 정리의 힘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는 정리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의 여유와 행복을 도둑맞고 있는 직장인, 주부, 학생들에게 말한다. “정리를 못하면 언젠가 직장이나 일상의 행복에서 정리당할 지도 모른다!”


윤 대표는 정리란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 못지않게 시간, 인맥도 정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정리해야 할 자원이 바로 시간, 인맥, 공간이다.


삶에 있어서 핵심적인 일과 물건이라는 요소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자원을 꼭 정리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정리는 모든 자기계발의 출발점이 된다.


‘하루 15분’은 하루의 단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끊임없이 인풋 되는 일과 물건들에 제대로 된 흐름을 부여하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관건은 ‘날마다 조금씩’이다. 책에는 자신의 현 상황을 점검해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 지갑이든 책상이든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5단계 정리법,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골라서 시도해볼 수 있는 액션플랜도 마련해놓았다.


정보가 넘쳐 스팸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 이제 정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 당장이라도 책에서 보여주듯 일단 책상이나 컴퓨터 바탕화면부터 정리해보자. 당신의 인생도 얼마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상세보기: 하루15분 정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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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촉감,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책에서 나는 냄새…

얼마 전 이사하면서 제일 신경 쓴 게 서재인데요. 방 하나와 거실을 서재로 했어요. 서재를 갖고 싶어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도 물론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순간에의 촉감 같은 것,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라든지, 책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리고 서기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남의 집에 가면 항상 책장을 보거든요. 어느 집이든 책장이 뿜어내는 기운이 있어요. 그걸로 주인의 성향을 짐작해봐요. 책의 기운이 저를 압도해오는 집도 있고요, 책은 많은데 거의 안보는 사람이구나, 라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 서재도 아마 누군가에게 어떤 느낌을 주겠지요.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따로 꽂아둡니다

중학교 때 한국문학 쪽 책들 워낙 좋아해서 단편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평론집을 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모으게 됐고요. 삼중당 문고도 사실상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모았어요. 이사를 하느라 많이 분실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삼중당 문고를 일반 문구점에서까지 팔았는데, 전용 회전 책꽂이에 빽빽이 꽂혀있는 책을 300원 주고 사는 재미가 너무 큰 거에요.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는, 저희 집은 넉넉하지 않았는데, 저는 넉넉한 편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그 돈으로 책이나 음반을 샀죠. 제가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쩨쩨하고 아껴요. 예를 들면 주차비는 너무 아깝거든요. 그런데 반면에 책값이나 음반 값, DVD 값은 하나도 안 아까워요.
책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도서관 분류법을 배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저랑은 안 맞는 거에요. 결국 저한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책을 배열하기 시작했는데…… 일단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분야별로 분류해서 정리해놓지만, 특정한 시기에 관심 있는 분야들의 책은 따로 모아 꽂아놓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테마 중의 하나가 <시간>이에요. 그래서 시간에 관한 책 - 물리학 책도 있고, 시간에 관한 잠언을 모은 책도 있고 – 을 모두 모아 두죠. <몸> <신화> <죽음> 같은 테마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책들도 관심사에 따라 따로따로 모아 꽂아놓았다가, 어느 정도 읽은 것 같으면, 그걸 다 해산시켜 원래대로 꽂아놓죠. 그렇게 또 다른 관심 테마가 생기면 그에 따라 다시금 책들을 모아다 놓아요.

목차와 서문을 보면 대충 감이 옵니다.

저는 책을 살 때 목차를 꼼꼼하게 보고 서문을 읽어봐요. 그러면 대충 감이 오거든요. 그리고 관심 있는 작가들은 그 사람의 책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사요. 소설가 이승우씨는 제가 20년 넘게 계속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분의 신작 혹은 김영하씨의 신작이 나왔다 하면 무조건 사죠. 남의 말에는 잘 휘둘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책 고르는 것을 오랜 세월 했고, 그 선택이 옳기도 틀리기도 했지만 만 권을 샀다면 그동안 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책을 사야 만족도가 높은지 제 스스로 거의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거죠.

나에게 맞는, 나의 이상한 독서법

저는 워낙 산만해서, 이 책 저 책을 집적거린다고 해야 하나요, 지금도 읽고 있는 책이 십여 권 되거든요. 오늘 낮엔 이 책 열 페이지 읽고, 저녁엔 저 책 스무 페이지 읽고…… 이러다 보니 어떤 책은 한 권을 다 읽는데 6개월이 걸리기도 해요. 요즘 화장실에서 읽는 책은 <쓸쓸해서 머나먼> 이라는 최승자씨의 새 시집이에요. 최승자 시인이나 이성복 시인의 시를 매우 좋아하거든요. 회사 소파에서는 편견의 위험성을 다룬 <생각의 오류>를 읽고 있고, 집 욕조에서는 <싱글맨>을 다 읽었어요. 회사 책상에서는 시간 날 때마다 <서사 철학>이라는 책을 펼쳐들어요. 어제 전철에서는 <풀밭 위의 식사>를, 침대에서는 한류에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영화 시사회에서는 읽는 한편 받치고 메모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 주로 하드 커버 책을 들고 가요. 요즘은 <트래픽>이란 책을 들고 다니죠.
세상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고 제가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아서 한 권만 붙들고 있지 못하겠더군요. 그러다 보니 아마 이런 이상한 독서법이 생긴 것 같은데,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독서법도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영감이 영화 책에서 오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거기 쓰여있는 것들은 어느 정도 저도 아는 것이고, 그리고 익숙한 것에서는 자극이 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대중과학서, 인문서적, 소설이나 시가 더 도움이 돼요. 완전히 다른 영역을 다룬 책들을 동시에 십여 가지를 같이 읽으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는 장점도 있어요. 한 책만을 읽는다면, 어쨌건 생각이나 영감이 주로 그 책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맴을 돌게 되지요.

즐거움과 영감을 주는 책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책을 시험 공부하듯 읽지 않는 이상, 책을 덮고 한 달만 지나면 읽은 내용의 80%는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한때는 분명히 책을 열심히 완독했는데 나중에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책도 사람의 인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매일 만나는데도 내 인생에서 덜 중요한 사람도 있고, 10년간 지나가면서 두 번쯤 만났는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거든요. 책과도 이런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과 영감 때문에 봅니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오락이에요.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욕조에요. 욕조에 물을 완전히 채우고 누워 머리와 팔만 내놓고 책을 보거든요. 이 자세로 세 시간도 봐요. 저 나름의 오락이에요.
영감이 왜 필요한가 하면, 제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책을 쓸 때는 제가 느낀 것, 생각한 것, 경험한 것을 다 종합해 전인적으로, 총체적으로 쓰게 되는데, 그 연원이 어딘지 모를 경우가 많지만 상당 부분은 제가 읽는 데서 왔다고 생각해요.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를 보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렇다고 막 경험했다고 시를 쓸 수는 없는 거래요. 경험이 숙성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가 올라오게 되는 거에요. 몸 깊은 곳에서.
마찬가지일 텐데, 어떤 글이든 영감이란 게 필요하거든요. 영감은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니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독서일 거에요. 그런데 독서를 해도 나중에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하지만 그 독서가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비유하자면, 그렇게 읽어낸 텍스트가 파편처럼이라도 몸 속을 떠다닐 거에요. 세월이 지나게 되면 어떤 것은 가라앉아서 영영 기억 못하게 되더라도, 또 어떤 독서 체험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과 만나 스파크가 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거든요. 제가 볼 때, 그런 게 영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한테 책이 무척 중요한 것이지요.
이번에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라는 여행 에세이 책을 쓰면서 독서 체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내가 무심코 읽었던 글, 혹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기억에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던 구절들이, 여행지의 어떤 것을 만나고 그것이 내가 두고 온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할 때, 연상되고 모여들어 영감을 만들어내고 여행기를 이루게 했거든요. 이번 책이 특히 그랬어요.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말 중에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있어요. 가끔 어린 학생들이 저한테 메일로, ‘내 인생에서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평론가가 될 수 있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의지가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안쓰럽기도 하거든요. 중학생부터 평생 지속 가능한 꿈을 품을 수 있느냐에 대해 저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꿈이 이뤄지든 아니든, 시간은 인간을 결국 지치게 하니까요. 지금 시대는 뭔가 전문적인 것을 가져야만 한다고 사회구성원들을 심리적으로 강제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자격증도 따고 전문가가 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깊게 파려면 일단 땅을 넓게 파야 되요. 처음부터 깊게 파면, 깊이 파는 데 한계가 있어요. 저는 독서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좋은 영화평론가가 되려면 영화 책만 100권을 읽을게 아니라, 영화 책 10권, 소설책 20권, 시집 10권, 자연과학서 10권…이런 식으로 100권을 봐야 된다고 봐요. 하나만 알면 아무 것도 모르는 거니까요. 심지어 자기의 꿈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때조차 일단 넓게 파기 시작하면 어느 지점에서 깊게 파야 되는지 스스로 알게 돼요. 그런데 처음부터 깊게 파면, 한참 파다가, 여기가 아니라면 그때가서 어떻게 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책은 최대한 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분일수록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골고루 읽어둘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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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를 관람한 뒤 뒤샹은 친구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말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 뒤샹이 ‘이제 회화가 망했다.’고 말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미술의 탄생은 예감되었다.

 

이제 뒤샹을 필두로 하는 현대 미술이 그 문을 열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회화 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우리 주위에 아주 익숙한 ‘물건’들이 아주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전 세대의 화가들과 완전히 다른 화가로 살았다. 고흐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화가가 손으로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세상을 바꾸어버렸다. 그의 오브제들은 낯선 것이었다. 시장에서 구해온 남성용 소변기를 세워놓고 샘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비난과 폭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게 뭐야, 미쳤나? 이제 예술은 망했군’. 이런 반응과 더불어 전통적인 방법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는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열정적인 반응이 터진다.


그는 화가의 손을 해방시켰다. 그의 오브제 작품들과 소변기, 유리, 나무 상자와 같은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산업화 시대로 도래한 물질주의 시대 대량생산 시대에 예술가로서 탄생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을 만든 것은 현대 자본주의, 대량 생산 시대이기도 하다.  

 

 

화가와 친분을 나누었던 시인 아폴리네르는 피카비아, 뒤샹과 함께 한 자동차 여행 끝에 이렇게 쓴다. 예술가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시인의 직관이다. “치마부에의 그림이 거리에 도열해 있는 것처럼, 우리 시대에는 루이 블레리오의 비행기를 보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인류는 지난 천 년 동안 영광스러운 인문 과학의 호위를 받으며 고민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마르셀 뒤샹처럼 미학적 편견에서 자유롭고 열성적인 예술가에게는 예술과 사람을 융화시키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


뒤샹은 회화를 20세기 사회상의 산물로 변화시켰다. 예술이 ‘독창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뒤샹의 이러한 작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행기의 프로펠러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전환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뒤샹, 저 멋진 것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세상에서 고흐처럼 자신의 귀를 잘라내며 그림 한 점을 완성시키는 예술가의 초상은 이제 뒤샹이라는 이름 앞에 전 시대이며, 고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잭슨 폴록과 같은 현대화가들, 팝 아트, 시네티즘, 미니멀 아트, 개념 예술, 보디 아트 등등 우리들에게 난해하게 보이지만 중요한 현대 미술이 폭죽이 터지듯이 이 시대의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한다. 뒤샹은 현대 미술의 처음을 열었고, 그들에게 자유로운 ‘화가의 손’을 선물하고 정작 자신은 침묵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23년에 <큰 유리>라는 그림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뒤샹은 표면적으로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체스에 몰두하면서 1968년 “하기야 죽는 것은 언제나 타인들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훗날 <위대한 침묵>의 기간이라는 삶을 살았다. 미국에서는 예술가로서 영광을 누렸지만, 정작 조국 프랑스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하지 않고, 체스를 두고 파리와 뉴욕 등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거의 한 평생을 독신으로 (젊어 3개월 동안 잠깐 결혼 생활을 했고, 만년에 결혼을 한번 더 하긴 하지만) 살면서 불가에서 말하는 ‘무욕의 삶’을 살았다.

 


예술가로서 이러한 행동 때문이었는지 뒤샹은 말년에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고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빚을 지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유파나 이즘도 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 속에서 작업한 <큰 유리>역시 사후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작업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도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이 침묵의 세월에 대해 만년의 뒤샹은 카반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단절은 여러 가지 일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예술가들과 매일같이 만나는 일, 예술가들과 살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하는 일이 나는 마음에 안 들었다. 1912년에 나를 좀 ‘화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독립전시회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를 출품했을 때였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전시회 개막식 전에 철거하라고 내게 요구했다. 그 당시 가장 앞선 사람들은 극히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나체> 그림은 그들이 이미 그어 놓은 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2,3년간 입체주의가 계속되었으며, 앞으로 닥쳐올 것을 예견하고 절대로 분명하고 정확한 노선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순진하고 어리석은 일로 보였다. 그 당시 그 일은, 내가 자유롭다고 믿었던 예술가들로부터 나왔고, 나를 낙담시켰다. 나는 직장을 구하고자 했고,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고 혼자서 <큰 유리> 작업을 할 때의 심경을 토로하고, 사각형 속에 갇혀 있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대신 그는 유리의 투명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작품에 대한 열정을 상실했고, 충격도 갑작스러운 결정도 없이 그렇게 살았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종하는 그룹은 그의 작품에서 열정과 충격을 받는다. 새로움에 대한 이른바 전위적인 예술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거절과 퇴짜였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뒤샹은 화가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체스에 몰입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

 

 

뒤샹은 1887년 7월 28일에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인 블랭빌에서 태어났다. 공증인인 뒤샹의 아버지는 모두 7남매를 두었는데, 생존한 6남매 중에서 뒤샹은 셋째 아들이었다. 여유 있는 집안이었고, 밤이면 체스를 두고 음악소리가 항상 흘러나왔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복한 가정 환경이었다. 큰 형은 화가, 작은 형은 조각가였다. 뒤샹의 초기 작품들은 그에게 친밀한 블랭빌의 전원 풍경이나 가족을 그린 스케치와 유화였다. 1902년에 그린 블랭빌의 풍경은 모네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아주 편안하다. 그리고 여자 마차꾼, 칼 가는 사람, 가스공과 같은 스케치는 이야기가 있다. 칼을 가는 사람, 마차를 세워놓고 호텔에 들어가 돈벌이를 하는 여자 마차꾼, 이것은 여태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이고 예술이었다. 이 세계에서 벗어난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가 바로 레몽 루셀의 소설 <아프리카의 인상>을 각색한 연극을 보고 나서였다.

 

뒤샹은 말한다. “초기에 나는 루셀에게 열광했다. 그 이유는 나로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이름이나 영향에 관계없이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점이 나의 깊은 내면에서 찬탄을 끌어낸 유일한 이유이다. 아폴리네르가 루셀의 작품을 처음 보여 주었다. (중략)나의 정신 도서관에는 루셀의 모든 작품을 소장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 말라르메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동물적인 표현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으로 말하고 싶다. 이것이 예술이 가야 할 방향이다. 나는 ‘화가처럼 바보스럽다’는 표현에 신물이 난다.” 그리고 뒤샹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카레라고 재니스 밍크는 이야기한다. “푸앵카레는 물질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법칙이 단지 그것을 이해하는 정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일반 원리도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과학은 사물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단지 사물간의 관계에만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뒤샹 자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푸앵카레의 이런 생각들은 이후 뒤샹 작품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그가 제작한 모든 작품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마치 루셀의 동음이자(同音異字)처럼 서로를 반영한다. 미술사가들은 최종 결론에 다다를 수 없어 애를 먹는다. 왜냐하면 뒤샹이 만든 것과 말한 것 사이에는 어떤 궁극적인 주장도 없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이 두 형이 머물고 있는 파리로 가 같이 살게 된 것은 1904년 10월 이었다. 그 후 만화와 회화 사이를 오가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1912년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가 살롱 데 앙데팡당에서 거절당하자 그룹을 탈퇴한다. 다음해 뒤샹은 뉴욕의 아모리 쇼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를 출품했다. 뉴욕의 화단은 놀랬고, 이후 그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전위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 해에 그의 첫 오브제를 제작한다. 그리고 1915년에 그의 오브제들을 ‘레디메이드’라고 불렀다.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튜브 물감들은 제조된 생산물이자 이미 완성된 물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그림들은 ‘도움을 받은 레디메이드’이자 아상블라주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뒤샹은 알렌스버그, 월터 팩 등과 함께 독립미술가협회를 설립한다. 이 미술전은 심사위원도 없고, 상도 없는 미술전이었다. 1917년에는 자신의 작품인 <샘>을 ‘R Mutt’란 가명으로 출품했다. 이 작품 역시 자신이 속한 독립미술가협회에서 거부된다(가명을 써서 그의 작품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이 작품은 전시회 전시관의 후미진 곳에 내내 방치되어 있었다. 1920년에는 만 레이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정밀한 광학적 오브제들과 영화 실험 작업을 했다. 1923년부터 그는 완전히 예술가로서 활동을 접었다. 그는 예술가연하면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세월 동안 체스만 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생의 대부분을  주위와 단절한 채 고독한 작업을 했다. 사후에 공개된 <1. 폭포수 2. 점등용 가스 : 가 주어졌다고 할 때>라는 작품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뒤샹은 다다이즘의 앙드레 브르통과 교류하였고, 초현실주의자들의 회화와 관계를 가졌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낙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세상을 향해 불평불만을 터트리지도 않는다. 그는 묵묵히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하여 나간다. 마음을 다치게 하는 ‘반응’들이 귀찮아서였을 것이다. 뒤샹의 작품은 지금 보아도, 전통적인 그림에 익숙한 우리들의 눈에는 낯설다. 이러한 오브제, 레디메이드는 자칫 예술에 대한 경박한 행동을 낳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혀 미술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 문외한이 뒤샹에 대한 자료만 보고 물건을 대충 전시해 놓고 자신도 모르는 제목하나 턱 달곤,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곳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회화 과정을 다 거친다.

 

즉 1902년부터 1910년까지 ‘8년간의 수영연습’라고 한 기간, 즉 물위에 떠 있기 위해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는 시간,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다. 1902년부터는 인상주의, 상징주의,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를 거쳐서 입체주의를 습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1915년부터 뉴욕으로 건너가 자기 양식을 수립한 기간을 1910년에서 1915년까지로 본다. 그리고 <큰 유리>의 제작기간인 1917년에서 1923년의 기간 동안에 뒤샹은 독창적인 레디메이드를 탄생시켰다. 그의 독창성은 위대한 선배 화가들의 정신을 배우고 익히고 나서 즉 절차탁마의 기간을 거치고 나서 탄생한 ‘독창성’이고 자유로움이다. 

 

 

뒤샹은 산업화 시대에 가져온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왜 재채기를 하지 않지?>라는 것이 있다. 새장 안에 각설탕처럼 생긴 대리석 육면체와 온도계와 오징어뼈를 쌓아 놓은 것이다. 이 작품에 서명된 뒤샹의 새로운 예명은 로즈 셀라비이다. 이 작품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사이의 과도기적 오브제로 평가된다. 훗날 이 작품은 파리의 초현실주의 미술 전시회에 출품된다. 뒤샹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작은 새장은 각설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각설탕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걸 들어보면 생각지 못한 무게에 다소 놀랄 것이다. 온도계는 그저 대리석의 온도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작품처럼 설명도 난해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작품에 대한 쉽고 전통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감상자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불편하게 한다.

 

뒤샹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까 고민하면, 차라리 재채기를 한번 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건 어쩌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들의 영혼을 깨기 위한 도끼자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 재니스 밍크는 이러한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짐작하고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뒤샹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여러 언어로 된 수백 번의 인터뷰와, 잡지 기사를 낳았고,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뒤샹의 삶과 작품은 해석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힌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그것이 억설일지라도 침착하고 너그럽게 대했다. 사람들에 의해 체계화되어 새로운 창조물이 된 자신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진실한 것은 아닐지라도.” 뒤샹은 솔직히 어렵다 라고 말하는 것이 속 편하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라고 한다면 되겠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을 그려 넣은 뒤샹. 다빈치의 걸작인 모나리자의 그림에 콧수염만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왜 여인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남성화시키는 걸까? 그는 가부장의 화신인가? 뒤샹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선입견을 우선 버려야 하는 건 아닌가? 우리는 이미 대량 생산되는 물질의 세상에서 아무런 이해도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 물건들이 만들어졌을까? 그것들은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그리고 각종 장비들 속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 그리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것들은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뒤샹이 레디메이드, 즉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물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정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일까?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느끼는 그런 감정, 뒤샹에게 그런 감동을 느낀다면 좋은 것이고, 만약 아니라면 그냥 그 마음을 내버려 두자. 뒤샹의 그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닐테니까…. 하지만 뒤샹은 예술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 주위에서 가장 가깝게 존재하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바로 삶이고 생명이라고 침묵하면서 표현한다. 뒤샹은 그걸 자신의 방식으로 창조하고 레디메이드라고 불렀다. 마치 신이 우리들을 창조했듯,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뒤샹이라는 영혼과 일치시켰다. 그래서 뒤샹의 이 말은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예술 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뒤샹의 어려운(?) 작품에 대해 쉬운 해답을 바라서는 안될 것 같다. 어려운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대담집처럼 좋은 책도 없다. 정병관씨가 번역한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을 우선 권하고 싶다. 만년의 거장이 젋은이와 만나 비교적 자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세기의 가장 '특별한' 예술가인 뒤샹은 항상 유희하듯 예술을 대했지만 예술에 대한 기존의 의식을 가장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 이 대담은 1966년 4월에서 6월에 걸쳐 파리 근교의 뇌이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뒤샹 자신에 의한 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어쩌면 유일한 증언일 것이다.

마르셀 뒤샹-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마르셀 뒤샹

 

그리고 화보 중심으로 된 책 재니스 밍크의 <마르셀 뒤샹 (정진아 옮김)>은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컬러 도판들과 함께 소개한다. 뒤샹의 대담집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대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뒤샹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뒤샹은 미술사의 수수께끼 같다.

 

 

 

 

 

1.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정확한 발음,적절한 속도,모든 사람들에게 잘 들리도록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발표해야 한다.입 안에서 웅얼거리거나  너무 빠른 속도로 이야기 하거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다면 토론 자체에 참여하기 힘들다.

2,핵심은 되도록 먼저 말해야 된다.-------토론할 때 가능한 한 핵심을 앞에 애기한다. 또 자신의 의견을 20자 내외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한 문장에 접속사가 두번 이상 나오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말하는 사람도  조리 있게 이야기 할 수 있고 ,듣는 사람 역시 잘 들린다.

3.적극적 경청은 필수이다.-------커뮤니케이션은 너와 나의 쌍방향 의사소통 과정, 토론참가자 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핵심사항을 요약.메모하며 듣는것도 효과적이다.

4.중간에 말을 끊는 건 금물 이다.-----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간에 자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거나 ,혼자만 너무 오래 이야기해 전체 토론 시간을 흘려 보낸다면 성공적인 토론이 될 수 없다.토론 참가자들에게 발언할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혼자 발언을 독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5헛된 자존심과 아집은 버려야 한다-----본인의 의견을 굽히고 상대의 의견을 너그러이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토론에서는 헛된 자존심과 아집은 버리자.자존심 있는사람은 상대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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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책읽기]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기사입력 2009-02-14 오전 7:27:07


  •  지난 200년 동안의 경제 성장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유례가 없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풍요를 가져왔다. 이런 놀라운 산업문명은 그러나 딱 한 번뿐이다. 앞으로 이런 산업문명은 두 번 다시 생겨날 수 없을뿐더러 지금의 석유문명도 더 이상 지속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산업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땅도 고갈되고(Peak Soil), 금(Peak Gold), 리튬(Peak Lithium), 물(Peak Water) 등등 모든 자원이 정점(Peak Everything)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구 자원을 단 200년 동안 남김없이 몽땅 퍼다 쓴 흡혈귀 경제였다. 자원이 고갈되면 물론 산업문명은 붕괴되고 자본주의도 종말을 고하고 만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놀라운 풍요도 끝장나고 만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채취 경제로 살아왔다. 그리고 대략 1만 년 동안은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경제를 영위해 왔다. 수렵채취와 농업 사회를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이 늘 굶주림에 시달렸고 늘 억압과 착취를 당한 노예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조들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허구의 과거 역사상은 자본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나 이데올로그들이 히틀러의 선전술처럼 허위로 날조한 것들이다.

    오히려 원시부족 사회는 하루에 두서너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양하고도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기던 '최초의 풍요사회'였다. 동양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소농의 농업사회는 때때로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피폐되고 힘든 고난의 시대를 되풀이 해 왔지만 그런 시기를 제외하면 오히려 여유 있고도 최소한 굶주림은 없는, 검소한 자립 정신과 높은 문화를 누리던 건강한 사회였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그런 문화를 즐기고 삶을 누리는 자립사회, '풍요사회'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에 고삐가 매인, 단 한 시간의 여유도 없는 노동 노예들이다. 경제 성장에 중독된 도시의 기계인간들이다. 가족도 공동체도 파괴되어 없는, 철저한 사막사회의 모래알같은 소모품들이다.

    우선 당장 식량 자급률 25%, 쌀을 제외하면 5%인 사회는 그야말로 파국 일보 직전의 위험사회이다. 국제 곡물 시장이 공급 부족으로 돌아서는 순간 한국 사회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태가 바로 코 앞에 가까이 와 있다.

    그 많던 혁명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한국 경제는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리고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급속히 대체된다. 극단의 개발 토건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향해 일로 매진하는 한국 경제의 갖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입이 아프도록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기에 생략하자.

    그런데 이른바 진보 세력은 이런 한국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했던가.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부가 참여한 이른바 개혁세력이야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까지 만들어내면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야말로 살길이라고 외친 자본주의 경제성장론자들이므로 그렇다 치자. 한나라당과 똑같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던 용산 참사의 공범 정당이니 그렇다 치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도대체 무슨 대안을 제시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철지난 사회주의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을 들먹이며 사회적 일자리가 무수히 생겨난다고 얘기하면 그만일까. 그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일반 시민들이 여기에 동참해서 희망찬 새로운 진보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에너지와 농업에 대한 진보 세력의 대안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진보 세력 또한 늘 경제 성장과 개발을 주장해 왔다. 사회주의가 더 좋은 경제 성장이라고 강변하면서 말이다.

    이런 경제 성장과 개발 주장은 때문에 늘 박정희 경제 개발 신화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는 단기간에 한국 경제를 자급자족의 농업경제에서 천지가 바뀐 것처럼 압축해서 자본주의 산업경제로 바꾸었다. 사회주의가 박정희보다 더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른바 진보 세력 내에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그러므로 근본에서부터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나갈 능력도 대안도 없는 진보 세력의 답답함과 무능 그 자체의 결과이다. 이른바 진보 세력이 지금과 같은 대안 부재의 상태로 있다면 용산과 같은 참사가 이어지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또 꺼지지 않는 정열을 안고 한국 사회의 정의로운 변화와 근본 혁명을 주장하던 그 많던 혁명가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버리고 만 것일까.

    녹색 경제, 녹색 사회가 대안이다

    ▲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박세길 지음, 시대의창 펴냄) ⓒ프레시안
    하도 녹색이란 말이 많이 쓰이다보니 에코플레이션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이산화탄소 저감 비용이 결국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주류경제학의 시각이다.

    그러나 '녹색 경제'는 그런 자본주의 산업주의 성장 정책과는 정반대의 경제이다. 녹색 경제의 핵심은 녹색 농업과 녹색 공동체이다.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지금보다 더 혁명의 수준에서 절약하고 육류 소비도 줄이는 경제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끔찍하고도 비정상의 자본주의 범죄 경제학이 아니라 절약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정상의 경세제민으로 돌아가는 경제이다.

    이제 농업은 석유 투입의 대규모 농업에서 소농의 생태순환 농업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기초이자 안전한 먹을거리, 자급의 농업이며 다가올 식량위기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다. 지역 먹을거리 체계와 이런 소농 중심의 농업은 수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녹색 농업은 비정규직 문제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에너지 투입이 필요없는 녹색 건축, 대중교통 위주의 녹색 교통, 녹색 관광 등등 녹색 경제로의 전환은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무수히 만들어 낸다. 이른바 진보 세력이 낡은 진보 개념을 버리고 녹색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고 진보신당이고 이 땅의 진보 세력은 아직도 의연히 낡은 진보와 성장의 정치에 갇혀 있을 뿐이다. 대중이 아직도 외면한다고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그들이 예전에 그렇게 비판하던 대중추수주의가 아니라면, 이제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생존가능한 소수의 진보에 안주하는, 현실과의 타협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박세길의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시대의창 펴냄)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고뇌의 기록이다.

    사실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참으로 주제넘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오만과 치기와 편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의 삶부터 바꾸고 해체된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노력할 뿐이며 그것이 혁명일 수 있다.

    그러나 박세길의 분석과 대안은 적어도 이른바 이땅의 지식인들이 거의 대부분 그렇듯 서구 지식인들의 이론을 수입하고 번안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결론을 얻은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런 태도야말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첫걸음이다.

    그 자신이 이른바 민족주의의 한 주장을 대표했던 이론가로서 끊임없는 성찰과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동의할 수 없는 많은 주장이 있음에도 이런 진솔한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Q

 2월은 학교에 가는 날도 2주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학교에 가도 공부를하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이들의 행동이 들떠 있습니다. 2월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요?

A

2월이 되면 학습 진도가 완결되어 단축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고, 다양한 활동 중심의 수업을 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님이 보기에는 아이들이 놀기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12월이 일년을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기에 바쁜 것처럼 아이들도 2월은 한 학년을 정리하고 새 학년을 준비하기에 바빠야 하는 달입니다. 2월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학교생활, 더 나아가서 미래가 든든해질 수 있습니다. 2월에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자녀교육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아이가 중심이 되어 한 학년을 돌아봅니다.

󰋎�󰋎� 달력을 이용해서 2008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한 학년을 단위로 하는 학년달력을 만듭니다(아이들의 경우 날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발달하지 않아 달력을 보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 달력을 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날(★), 속상했던 날(☆), 보람 있었던 날(○), 후회되는 날(●), 기억에 남는 날(◇)을 표시합니다.
󰋎�󰋎� 표시한 날들을 따로 뽑아서 이유를 적습니다(저학년은 표시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도록 한 다음에 부모님이 옆에서 간단하게 정리해 주고 고학년의 경우에는 자신이 이유를 정리해서 적도록 합니다).
󰋎�󰋎� 정리한 내용들을 보면서 2009학년도(2009년 3월 ~ 2010년 2월)에는 즐겁고 보람 있으며, 기억에 남는 날들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고치고 싶은지, 무엇을 더 노력할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것들을 바탕으로 새 학년의 구호를 정합니다.


■ 새학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 새 학년을 꾸려갈 공책을 마련한 다음 공책의 앞에 새 학년의 구호를 적습니다. 구호는 ‘공부 짱이 되자’와 같이 아이 수준에 맞는 재미있는 구호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구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만듭니다. 이때 실천과제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 또는 ‘매일 5시간만 자고 공부하자’와 같이 막연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간 계획표를 짜고 잘 지킨다’와 같이 실천이 가능한,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 합니다.
󰋎�󰋎� 실천 과제가 직접 실천될 수 있도록 실천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을 세울 때에는 이에 필요한 책들을 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의논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시간계획표를 짜서 시간 활용을 효과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간 관리에 대한 서적을 보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 계획한 것을 직접 실천에 옮겨보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수정계획을 세웁니다.

■ 자신이 스스로 세운 계획은,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이미 실천 동기가 부여됩니다. 계획을 세우는 방법의 학습과 이를 실천하는 경험, 아이의 미래를 위해 가장 소중한 공부가 됩니다.

[서울시교육청/초등교육정책과/장학사 이재관/02-3999-248] 

                                                            e서울교육소식: http://news.sen.go.kr

뉴스: ‘독서광’ 신정한 “책 속에 길이 있어요”
출처: 일간스포츠 2009.02.06 10:51
출처 :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일간스포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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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 신정한 “책 속에 길이 있어요”

일간스포츠 | 기사입력 2009.02.06 10:40


[JES 양광삼]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눈이 말똥말똥한 꼬마.어머니는 나직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줬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했어…", "하늘 나라 별은 왜 반짝일까…" 하늘 나라 별을 상상하던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렇게 자랐던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됐고, 그 책은 어린 아이의 지식을 차곡차곡 쌓이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가 지난 4일 KBS 1TV '퀴즈 대한민국'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어른 경쟁자 5명을 물리치고 역대 우승자 가운데 최연소로 '제 40대 퀴즈영웅'에 등극했다. 신군은 상금 4100만원도 거머쥐었다.

▶책은 친구다

 
경북 고령군 고령읍 고령초등학교 5학년 신정한(11) 군. 1998년 2월생 현재 만 11세. 신 군은 퀴즈왕 등극 후 "책을 많이 읽은 게 퀴즈왕이 된 것 같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삼국지'에 푹 빠져 있다. 얼마 전 '손자병법'을 읽었다.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술술 흘러 나왔다. 신군이 이번 겨울 방학에만 읽은 책이 120권이다.

신군의 방에는 출입문을 제외한 3면의 벽이 책으로 둘러 쌓여 있다. 어림잡아 100여권이 넘는다. 책상 위에는 책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거실에 놓인 책까지 더하면 족히 1300여권이 될 듯 싶다. 신 군은 "책을 선택할 때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방에 못 들어오게 한다" 고 했다. 방 문에 '아무도 못 들어옴, 비밀번호를 누르세요'란 문구가 적혀 있다.

독서 후에는 엄마, 아빠에게도 절대 보여 주지 않는 '비밀노트'를 작성한다. '보물1호'다. 신군은 5일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책을 읽느랴고 여념이 없었다.

신군이 퀴즈왕에 오른 것은 어린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엄마 서정희(40) 씨의 영향이 컸다. 서씨는 "정한이는 서너 살 때부터 유달리 책 읽는 데 관심이 많아 도서관에 자주 데려 가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줬다"고 말했다.

타고난 재능에 엄마의 노력이 더해져 신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본 상식 책과 한자와, 억 단위 숫자까지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어머니 서씨는 신군의 궁금증에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알아봐서 나에게도 설명해달라"고 말해 신군이 자율적으로 답을 찾게 유도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검색도 한몫했다. 모르는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답을 찾도록 했다. 아버지 신상진(42·고령군청)씨는 "책과 인터넷이 없었다면 정한이는 퀴즈왕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원은 다니지 않는다

사교육은 일부러 피했다. 3학년까지는 바둑 학원을 다녔다. 4학년부터는 다니질 않는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아이들과 토론을 하는 학원을 다닐 뿐이다.

서씨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식이 책에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서씨는 "처음에는 학원을 안다녀 또래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신군은 하교 후 집에 와서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과의 씨름이다. 틈틈히 영어와 한자공부를 병행한다. 거실 탁자에 깨알처럼 쓴 영어와 한자 단어장이 놓여 있다. 한자는 3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남는 시간은 블록(레고)과 로봇 장난감을 조립한다. 이것이 유일한 취미다.

그리고 책 장 옆에는 천체 망원경이 있다. 과학세계를 좋아해 우주를 꿈꿨는데 천체 망원경 작동법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오후 7시쯤 매일 200회가 넘는 줄넘기를 한다. 문 밖의 자전거는 오랫동안 타지 않아 먼지가 쌓였다.

담임 정지혜 교사는 "정한이는 책을 많이 읽어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 수업 중 질문도 많다"고 말했다. 같은 반 신인철(11)군도 "정한이는 책을 끼고 산다.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신군은 "상금으로 반 친구들과 선생님께 이번주 토요일에 피자를 사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서씨는 "남은 금액은 정한이가 생각하고 있는 일에 쓰기로 했다"고 했다.

▶TV는 시사프로와 뉴스만 본다

신군의 생활은 빡빡하지 않다. 잠은 10시30분 자고, 아침 7시30분쯤 일어난다. TV는 드라마나 오락프로 같은 건 재미가 없어 보지 않는다. 어머니 서씨는 "시사프로와 뉴스만 본다"고 말했다.

신군의 꿈은 과학자다. 그러나 최근 바뀌었다.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 범죄가 많아 법학자나 범죄 연구가가 돼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군은 아직 아직 꿈꿀 시간이 많다. 어머니 서씨는 "사회의 유익한 구성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만약 신군이 6~7개의 학원을 바삐 오가는 여느 학생들이었다면 퀴즈왕에 오를 수 있었을까. 고령초등학교 이상현 교감은 "정한이가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고령=글·사진=양광삼 기자 [yks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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