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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촉감,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책에서 나는 냄새…

얼마 전 이사하면서 제일 신경 쓴 게 서재인데요. 방 하나와 거실을 서재로 했어요. 서재를 갖고 싶어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도 물론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순간에의 촉감 같은 것,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라든지, 책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리고 서기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남의 집에 가면 항상 책장을 보거든요. 어느 집이든 책장이 뿜어내는 기운이 있어요. 그걸로 주인의 성향을 짐작해봐요. 책의 기운이 저를 압도해오는 집도 있고요, 책은 많은데 거의 안보는 사람이구나, 라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해요. 제 서재도 아마 누군가에게 어떤 느낌을 주겠지요.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은 따로 꽂아둡니다

중학교 때 한국문학 쪽 책들 워낙 좋아해서 단편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평론집을 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모으게 됐고요. 삼중당 문고도 사실상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모았어요. 이사를 하느라 많이 분실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삼중당 문고를 일반 문구점에서까지 팔았는데, 전용 회전 책꽂이에 빽빽이 꽂혀있는 책을 300원 주고 사는 재미가 너무 큰 거에요.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는, 저희 집은 넉넉하지 않았는데, 저는 넉넉한 편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그 돈으로 책이나 음반을 샀죠. 제가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쩨쩨하고 아껴요. 예를 들면 주차비는 너무 아깝거든요. 그런데 반면에 책값이나 음반 값, DVD 값은 하나도 안 아까워요.
책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도서관 분류법을 배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저랑은 안 맞는 거에요. 결국 저한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책을 배열하기 시작했는데…… 일단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분야별로 분류해서 정리해놓지만, 특정한 시기에 관심 있는 분야들의 책은 따로 모아 꽂아놓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테마 중의 하나가 <시간>이에요. 그래서 시간에 관한 책 - 물리학 책도 있고, 시간에 관한 잠언을 모은 책도 있고 – 을 모두 모아 두죠. <몸> <신화> <죽음> 같은 테마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책들도 관심사에 따라 따로따로 모아 꽂아놓았다가, 어느 정도 읽은 것 같으면, 그걸 다 해산시켜 원래대로 꽂아놓죠. 그렇게 또 다른 관심 테마가 생기면 그에 따라 다시금 책들을 모아다 놓아요.

목차와 서문을 보면 대충 감이 옵니다.

저는 책을 살 때 목차를 꼼꼼하게 보고 서문을 읽어봐요. 그러면 대충 감이 오거든요. 그리고 관심 있는 작가들은 그 사람의 책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사요. 소설가 이승우씨는 제가 20년 넘게 계속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분의 신작 혹은 김영하씨의 신작이 나왔다 하면 무조건 사죠. 남의 말에는 잘 휘둘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책 고르는 것을 오랜 세월 했고, 그 선택이 옳기도 틀리기도 했지만 만 권을 샀다면 그동안 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책을 사야 만족도가 높은지 제 스스로 거의 본능적으로 알게 된 거죠.

나에게 맞는, 나의 이상한 독서법

저는 워낙 산만해서, 이 책 저 책을 집적거린다고 해야 하나요, 지금도 읽고 있는 책이 십여 권 되거든요. 오늘 낮엔 이 책 열 페이지 읽고, 저녁엔 저 책 스무 페이지 읽고…… 이러다 보니 어떤 책은 한 권을 다 읽는데 6개월이 걸리기도 해요. 요즘 화장실에서 읽는 책은 <쓸쓸해서 머나먼> 이라는 최승자씨의 새 시집이에요. 최승자 시인이나 이성복 시인의 시를 매우 좋아하거든요. 회사 소파에서는 편견의 위험성을 다룬 <생각의 오류>를 읽고 있고, 집 욕조에서는 <싱글맨>을 다 읽었어요. 회사 책상에서는 시간 날 때마다 <서사 철학>이라는 책을 펼쳐들어요. 어제 전철에서는 <풀밭 위의 식사>를, 침대에서는 한류에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영화 시사회에서는 읽는 한편 받치고 메모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 주로 하드 커버 책을 들고 가요. 요즘은 <트래픽>이란 책을 들고 다니죠.
세상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고 제가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아서 한 권만 붙들고 있지 못하겠더군요. 그러다 보니 아마 이런 이상한 독서법이 생긴 것 같은데,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독서법도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영감이 영화 책에서 오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거기 쓰여있는 것들은 어느 정도 저도 아는 것이고, 그리고 익숙한 것에서는 자극이 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대중과학서, 인문서적, 소설이나 시가 더 도움이 돼요. 완전히 다른 영역을 다룬 책들을 동시에 십여 가지를 같이 읽으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는 장점도 있어요. 한 책만을 읽는다면, 어쨌건 생각이나 영감이 주로 그 책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맴을 돌게 되지요.

즐거움과 영감을 주는 책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책을 시험 공부하듯 읽지 않는 이상, 책을 덮고 한 달만 지나면 읽은 내용의 80%는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한때는 분명히 책을 열심히 완독했는데 나중에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책도 사람의 인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매일 만나는데도 내 인생에서 덜 중요한 사람도 있고, 10년간 지나가면서 두 번쯤 만났는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거든요. 책과도 이런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과 영감 때문에 봅니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오락이에요.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욕조에요. 욕조에 물을 완전히 채우고 누워 머리와 팔만 내놓고 책을 보거든요. 이 자세로 세 시간도 봐요. 저 나름의 오락이에요.
영감이 왜 필요한가 하면, 제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책을 쓸 때는 제가 느낀 것, 생각한 것, 경험한 것을 다 종합해 전인적으로, 총체적으로 쓰게 되는데, 그 연원이 어딘지 모를 경우가 많지만 상당 부분은 제가 읽는 데서 왔다고 생각해요.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를 보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렇다고 막 경험했다고 시를 쓸 수는 없는 거래요. 경험이 숙성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가 올라오게 되는 거에요. 몸 깊은 곳에서.
마찬가지일 텐데, 어떤 글이든 영감이란 게 필요하거든요. 영감은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니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독서일 거에요. 그런데 독서를 해도 나중에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하지만 그 독서가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비유하자면, 그렇게 읽어낸 텍스트가 파편처럼이라도 몸 속을 떠다닐 거에요. 세월이 지나게 되면 어떤 것은 가라앉아서 영영 기억 못하게 되더라도, 또 어떤 독서 체험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과 만나 스파크가 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거든요. 제가 볼 때, 그런 게 영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한테 책이 무척 중요한 것이지요.
이번에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라는 여행 에세이 책을 쓰면서 독서 체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내가 무심코 읽었던 글, 혹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기억에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던 구절들이, 여행지의 어떤 것을 만나고 그것이 내가 두고 온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할 때, 연상되고 모여들어 영감을 만들어내고 여행기를 이루게 했거든요. 이번 책이 특히 그랬어요.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말 중에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말이 있어요. 가끔 어린 학생들이 저한테 메일로, ‘내 인생에서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평론가가 될 수 있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의지가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안쓰럽기도 하거든요. 중학생부터 평생 지속 가능한 꿈을 품을 수 있느냐에 대해 저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꿈이 이뤄지든 아니든, 시간은 인간을 결국 지치게 하니까요. 지금 시대는 뭔가 전문적인 것을 가져야만 한다고 사회구성원들을 심리적으로 강제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자격증도 따고 전문가가 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깊게 파려면 일단 땅을 넓게 파야 되요. 처음부터 깊게 파면, 깊이 파는 데 한계가 있어요. 저는 독서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좋은 영화평론가가 되려면 영화 책만 100권을 읽을게 아니라, 영화 책 10권, 소설책 20권, 시집 10권, 자연과학서 10권…이런 식으로 100권을 봐야 된다고 봐요. 하나만 알면 아무 것도 모르는 거니까요. 심지어 자기의 꿈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때조차 일단 넓게 파기 시작하면 어느 지점에서 깊게 파야 되는지 스스로 알게 돼요. 그런데 처음부터 깊게 파면, 한참 파다가, 여기가 아니라면 그때가서 어떻게 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책은 최대한 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분일수록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골고루 읽어둘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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