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부분과 전체』의 핵심 내용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살았던 최근 50년간에 발전해 온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자 역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등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이 책에서 원자 물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화된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배움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성찰의 자세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복잡한 수학적 관계에 대한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다루는 일화들을 인용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대 원자 물리학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의 생성 과정-그 중에서도 원자 물리학 분야의 탄생과 그 발전의 역사에 수반되었던 사고 활동에 관한 인상-을 분명하게 기술함으로써 다양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는 것이 결국에는 학문적 의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자연 과학과 종교의 가치 기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통하여, 자연 과학이란 실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겸손하게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20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 중에 가진 원자 세계에 대한 첫 대화로부터 시작된 원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뮌헨 대학에서의 이론 물리학 분야로의 입문, 이후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토론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차 모인 폴 디랙, 볼프강 등과의 모임에서는 자연 과학(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종교(가치의 세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한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는 플랑크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 자신이 지식과 신앙이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는 인간 공동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젊은 실험 물리학자인 버튼과의 토론에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기술자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버튼의 주장과는 달리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술자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 과학(양자 역학)과 철학(인과론)의 관계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그레테 헤르만은,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근대 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체이며, 모든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하므로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고,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하는 한도에서 자연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인과율을 다음의 예를 통해 부정한다.

우리는 조만간 라듐B 원자는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붕괴를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B 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방향 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은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헤르만의 주장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결국에는 칸트주의자뿐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칸트 철학과 현대의 자연 과학에 대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라는 개념에 대한 파울리 볼프강과의 폭넓은 철학적, 역사적, 물리적 지식에 입각한 대화와 그의 나이 20세밖에 되지 않은 해에, 4학기 째로 접어든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 닐스 보어를 상대로 원자론에서의 보어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과감하게 제기했던 일은 그의 학문적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봄, 물리학의 아성인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토론회에서 양자 역학에 관하여 보고하도록 초청을 받게 된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인슈타인과 가진 자연 법칙과 이론의 철학적 기초들에 대한 토론과 1926년 뮌헨의 세미나에서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한 물리학 해석에 대한 토론, 그 밖에도 다양한 일화를 통하여 여러 모로 서로 다른 분야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당시로서는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다양한 난점과 내부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자 물리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단순히 학자로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로서 그는 청년 운동이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새롭고 올바른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건축 연구소, 민중 학교, 고전 음악의 장려 등과 같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3. 부분과 전체

글의 머리말에서처럼 토론과 대화에서 원자 물리학이 항상 주연만을 맡아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비단 원자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 자체가 이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고 강연에 참석한 그는, ‘상대성 이론이란, 독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대인 신문들의 과대 선전에 의해서 부당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아주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사변(思辨)을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인물의 주동자가 실험상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되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문적인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전문화되고 더욱 구체화된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이로부터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에서의 각각의 부문들과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성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급격한 과학 기술 및 정보량의 유출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각 분야를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개의 부분적인 질서와 함께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와의 관련성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의 예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나치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류라는 전체성을 잊어버린 채 그릇된 부분적 질서에만 집착함으로써 유발되는 폭력성과 같은 사상적 편견의 위험성을,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한 청년과의 대화를 통하여 기술함으로써 비단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과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사상적 편견에 대하여 경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질서에 대해 충실했을 때 유발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 물리학 이외에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이민, 파괴의 혼란과 개개인의 고립화와 상호간의 이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협소한 유럽, 강압적인 나치 정권하에서 탈피하여 자연 과학의 커다란 비약과 준비된 조건 속에서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후 독일의 과학을 재건하고자 그의 주위에 모인 뜻 있는 젊은이들과 자신의 조국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치즘의 강압에 의해 위험한 과학적 발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라는 전체성을 염두에 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력 무기로서 개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원자 물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이 책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진리 추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했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의 흔적이 진리의 상아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토론의 장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소개

『베르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당대 최고의 석학인 조모펠트,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았으며, 원자 또는 분자의 미시적 구조는 물론 화합물들 사이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는 입자―파동 이중성을 바탕으로 한 양자 역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 구조 이론에 협력하고 현대 양자 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에 의한 양자 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생각해 볼 문제

1.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기반을 각기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부분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같은 구분의 타당성 여부를 생각해 보자,

2.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과론적 세계관(인과율)을 부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젠베르크는 인과율을 부정하는 설명으로,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라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논지의 예로 ‘라듐B 원자’의 이행을 들고 있는데, 우리의 주변 생활에서 이러한 예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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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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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메모 :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글쓴이 : 교육길라잡이 원글보기
메모 :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프린키피아』의 핵심 내용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알리기를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것을 홀로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위대한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핼리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린키피아』는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1권에 대해서만 다룰 예정이다. 제1권은 앞의 뜻매김 부분과 공리(운동법칙), 그리고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의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뜻매김 부분에서는 질량, 운동량, 관성, 구심력 및 이와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리 부분에서는 뉴턴의 운동 법칙인 제1법칙 관성의 법칙,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및 그에 딸린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기술되고 있다.


제1장 어떤 양들에 대해서 맨 처음과 맨 마지막의 비율을 이용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어떤 양이나 비율로 이루어진 수열의 수렴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적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곡선의 아래 부분의 면적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의 구간을 n개로 나누어, 곡선 안쪽에 내접하는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이나 외접하는 직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n을 매우 크게 할 때 같아짐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닮은꼴 도형들의 길이 비를 알면 그 도형들의 면적의 비는 길이의 비의 제곱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임의의 원에서 두 점을 임의로 잡았을 때 한 점이 다른 한 점으로 무한히 가까이 간다고 하면, 그 두 점에 의해 생겨나는 호와 현의 길이 및 고정된 점에 이은 접선과 원의 중심이 만나서 생기는 선분의 길이는 같아진다. 그러므로 그 길이들 간의 비율이 결국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구할 때, 현, 호, 접선에 의한 선분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상관없게 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합과 비율의 극한을 증명하고, 앞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하여, 다음의 기본 원리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제2장 구심력을 구함

이 장에서는 구심력을 기하학적으로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에 실을 매달아 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때, 추가 회전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주고 있는 힘이 바로 구심력이며, 우리가 일정한 힘으로 추를 돌리고 있다면 추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할 것이다. 따라서, 실이 그리는 호의 면적은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실이 그리는 면적이 일정하다면, 추의 속력은 실의 길이에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체가 시간에 비례하는 넓이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는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추의 속력의 제곱에서 실의 길이를 나눈 것에 비례하고, 이 때 추의 회전 주기는 실의 길이를 속력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회전 주기와 반지름의 관걔를 구심력을 중심으로 고려했을 때, 케플러의 법칙에서 밝혀졌듯이 주기의 제곱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게 되면 구심력은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가 원이 아닌 원뿔 곡선일 때 중심으로부터의 구심력을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제3장 원뿔 곡선들을 따라 움직임

이 장에서는 물체가 초점으로부터 구심력을 받으며 타원, 쌍곡선, 포물선의 궤도를 움직일 때 구심력의 크기는 초점에서 그 물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역으로 힘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고, 구심력은 그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또한 그 힘의 크기를 안다고 할 때, 이 물체가 그리게 될 궤도는 속도의 크기에 따라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궤도를 그리게 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초점을 주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우리가 초점을 이미 알고 있을 때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연필과 연습장만 있다면, 지금 당장 계산해 낼 수 있다. 뉴턴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계산해 보기를……

제5장 초점을 주지 않았을 때 궤도를 구하는 방법

이 장에서는 초점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물체가 움직이는 궤도를 구해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궤도를 구해 내는 것 역시 스스로가 적당히 가정을 하고 있고 일반적인 2차 곡선의 자취의 방정식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2차 곡선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6개의 미지수를 구해 내야 한다. 그렇지만 적당히 축을 잡고 회전 이동시키면, 3개의 미지수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지?

제6장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임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를 알아 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어떻게 시간과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 방법이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등 수학의 내용을 알아야 하므로, 대학에 들어가서, 고등 수학을 배운 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7장 직선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감

이 장에서는 힘의 중심으로부터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구심력이 작용한다고 했을 때, 물체가 직선을 따라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수직으로 상승할 때, 주어진 시간 동안에 이 물체가 지나가는 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만큼 움직였다고 할 때, 걸리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점은, 앞장에서 설명한 시간과 면적의 관계 및 직선 운동을 원상에서의 운동으로 대체해서 생각한 후 극한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제8장 어떤 종류의 구심력이 작용하였을 때, 물체가 그릴 궤도를 구함

이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구심력인지를 알고 있을 때,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체가 진자 운동을 할 때, 이 물체는 항상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같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다른 물체가 직선으로 운동한다면, 이 물체 역시 진자 운동을 하는 물체와 같은 높이에서는 같은 속력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배웠던 사실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자유 낙하하는 물체가 지상에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과 같은 높이에서 그 물체를 앞으로 던졌을 때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이 같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제9장 움직이는 궤도를 따른 운동, 원일점, 근일점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달과 같이 움직이는 궤도를 가진 물체들의 운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어진 면에서 물체의 움직임, 그리고 물체의 진자 운동

이 장에서는 구심력의 종류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물체가 운동하는 평면에서 궤도를 고려하고, 또한 운동하는 평면과 수직인 면에서 그 운동을 관찰했을 때 (수직인 평면에 정사영), 그 물체의 운동이 단순히 직선을 왕복 운동하는 것 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물체가 곡면을 운동하고 있다면, 평면에 정사영한 후 다시 직선에 정사영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제11장 구심력에 의해서 서로 끌려가는 물체들의 움직임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적용하여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자연계에는 한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가 일방적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을 두 물체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서 작용하므로, 그 힘들을 모두 고려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힘들은 모든 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게 중심을 힘의 중심으로 하여 작용한 후 물체들의 궤도 운동을 이끈다.

제 12장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둥근 물체들의 경우, 공 내부의 점들은 공 표면의 점들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도 당겨지지 않으며, 표면의 점들은 공의 중심을 향해서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당겨지고, 곧 외부의 물체와의 인력은 마치 공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3장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의 당기는 힘

이 장에서는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공처럼 생기지 않은 물체들 간의 인력은 그 물체의 질량이 무게 중심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공 모양의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과 같은 방법으로 고려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4장 아주 작은 물체들이 매우 큰 물체의 여러 부분의 구심력을 받아서 움직임

이 장에서는, 빛이 매질이 다른 물질을 지날 때 일어나는 굴절, 반사와 각진 물체를 지날 때에 일어나는 회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의 명저인 『프린키피아』는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었으며, 이 저서에서 증명된 모든 과학적 사실로 인하여 새로운 과학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뉴턴의 이런 과학적 사실의 발견보다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은, 그 전까지는 신비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졌던 과학적 사고를 실험과 관찰에 의해서 얻은 현상들을 바탕으로 얻어 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련된 간단한 규칙을 구한 후, 이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혀 내는 분석적 사고와 종합적 사고를 과학에 도입하여, 이로 인해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로의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저자 소개

『뉴턴(Isaac Newton ; 1643~1727)』은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스소프에서 태어나, 1669년에는 스승인 베로의 석좌 교수직을 이어받아 수학을 강의했다. 그는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으며, 1687년 핼리의 권유로 『프린키피아』를 출판하였다. 한때 조폐국 감사, 조폐 국장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 선출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703년 왕립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죽을 때 까지 그 지위에 있었다. 1705년 작위를 받고, 1710년 그리니치 천문대 감찰 위원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1727년 런던 교외의 켄징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 naturalis prin-cipia mathemetica)』는 흔히 『프린키피아』라고 불리 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세계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 졌는데, 제1권과 제2권은 운동 현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권은 이 법칙들을 적용하여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의 업적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중력의 인력과 프리즘을 통한 빛의 투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이 지닌 더 중요한 의의는, 관측 사실들과 과학의 문제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점과 낡은 접근 방법과 낡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적인 과학적 사고 방법으로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문제

뉴턴적 세계관과 양자 역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차이점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 기해 보자. 또, 그러한 인식의 틀이 보여 주는 차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도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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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 생태학적 윤리』의 핵심 내용

인간의 기술적 착취에 의해 고통 받고 신음하던 지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드디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존층 파괴, 멸종 위기에 처한 각종 생물들, 지구 온난화 현상, 이상 기후에 따른 자연 재해 등,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은 역설적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인간이 기술을 통해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히면 넓힐수록, 진정한 삶의 터전은 이로 인해 더욱더 잠식당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 사용하고 있는 평화적 기술 역시 가공할 만한 불행의 잠재력을 함축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런 불행의 치명성이 수많은 기술 문명의 성공들에 가려진 채 내부적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가면서 환경 위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둔감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생태학적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철학에서는 '환경 윤리학'이라는 새로운 계보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사유의 혁명을 통해 기술에 의한 환경 오염을 극복하고자 하는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은, 바로 자연에 대해 인간이 자신의 권력을 방종하게 남용하는 것을 고발하는 자연의 대변자 역할을 자청하게 된다. 즉 인간의 자유가 기술을 통해 실현되고 따라서, 기술에 의한 환경오염이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지구의 병은 치유할 길이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

요나스는 무엇이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인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생태학적 문제에 세 단계로 접근하고 있다. 즉, 그는 이 책에서 '왜 위기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잇는가?', 이는 각각 전통 윤리학 비판과 마르크스적 유토피아론의 한계 분석, 책임의 원칙 수립이라는 절차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1. 전통 윤리학 비판

올바른 행동에 관한 전통적 지혜는 모두가 인간 중심적이었으며, 과거의 경험을 의중에 두고 있었다. 다라서 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작았고, 예견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계산할 수 있는 시간적 간격은 짧았으며, 상황에 대한 통제는 제한되어 있었다. 즉, 전통적 윤리는 인간의 삶의 전(全) 지구적 조건과 종(種)의 먼 미래와 실존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 존재에 대하 자연의 도전은 그 종류와 규모면에서 아주 새로운 것이며, 이제까지의 그 어떤 것과도 유사하지 않다. 따라서 행위의 직접적 영역에만 제한되어 있던 전통 윤리학의 모든 도덕적 명령과 격률은 완전히 새로운 양태의 권력과 이를 예속시킬 수 있는 규범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못한다.

2. 마르크스적 유토피아주의 비판

요나스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맑시즘)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인간학, 즉 인간의 본질에 관한 그릇된 관점에 있다. 나비가 되는 애벌레의 현재와는 달리 인간의 현재는 불확실한 지금 그대로 항상 충분한 가치가 있다. 즉, 인류는 그 때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개체가 그러하듯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임시적인 것에서 궁극적인 것으로 진행되는 미리 계획된 전체 형성 과정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적 유토피아의 열정은 그것을 열망하는 현상태를 단순히 개선하겠다는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를 통하여 인간을 더욱 고상하게 변신시킨다는 약속에 있었다. 따라서 맑시즘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환경은 좋은 적이 없었고 인간도 역시 그랬는데, 무계급의 사회가 비로소 선한 인간을 산출할 것이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맑시즘의 본질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이다.

이렇듯 처음부터 맑시즘은 기술의 권력을 찬양하였으며, 그것이 사회와의 합동으로 구원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맑시즘은 기술의 권력을 제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자본주의적 소유자의사슬에서 해방시켜 인간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요나스가 보기에 마르크스적 유토피아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점은 첫째, 오늘날의 조건하에서인간은 유토피아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이며, 둘째 그런 기대 자체가 하나의 허구적 이상이라는 것이다. 즉, 전 지구상의 부와 부를 이룩하였던 생산력을 무차별적으로 재분배하더라도, 현재 인간의 조건은 가장 가난한 지역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에도 넉넉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3. 책임의 원칙 수립

요나스는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행사해 온 권력을 근거로 하여 책임의 원칙을 행위의 새로운 명법(明法)으로 수립한다. 그가 보기에 책임의 전제 조건은 인과적 권력이다. 즉, 권력에 위탁된 것에 대해 권력은 객관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권력은 책임감이 가담함으로써 감정적으로는 참여하게 된다. 오늘날 필요한 환경에 대한 미래 사회의 책임의 윤리는 이런 종류의 책임과 책임감을 뜻한다.

오랜 자연의 창조 기간을 거쳐 생성되어 현재 인간의 손에 넘어온 지구의 왕성한 생활력은 그것 자체로서도 인간의 보호를 요청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해 지속적인 권력을 행사해 온 인간은 자연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요나스는 생존 경쟁 속에서 경우에 따라 발생하곤 하는 인간과 자연의 양자 택일에서는 어쨌든 인간이 항상 유리하며, 자연의 존엄성이 인정되더라도, 자연은 인간과 인간의 지고한 존엄성에 굴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의 『책임의 원칙』은 한편으로는 기술을 죄악시하는 생태학적 자연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 문제를 기술적으로만 파악하는 개량주의에도 빠지지 않으며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자연에 대한 지나친 승리는 승자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철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책임의 영역을 인간에서 자연으로 확장해 갈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

『한스 요나스(Hans Jonas : 1903~1993)』는 프라이브르크, 베를린, 하이델베르크와 마르부르크에서 철학, 신학, 예술사를 공부하고 1928년 하이데거와 불트만에게서 '그노시스(Gnosis)'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독일계 철학자이다. 1933년에 영국을 거쳐 1935년에 팔레스티나로 망명한 그는, 1955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오랫동안 프린스턴 대학, 콜롬비아 대학 등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하였다. 1987년 책임의 원칙으로 독일 서적 판매 조합에서 주는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주요 저서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바울적 자유의 문제』, 『그노시스적 종교』, 『무(無)와 영원의 사이』, 『기술, 의료, 그리고 윤리』 등이 있다.

요나스는 특히 1979년에 『책임의 원칙』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 윤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는 전통 윤리학의 근저에 있는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약한 생태 중심주의(weak ecocentrism)의 입장을 취하면서 미래 세대에 대한 현재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즉, 개별 생명체의 안위는 어디까지나 전체 생태계의 안정과 균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생태계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태 중심주의의 입장을 표방함과 동시에, 과학적인 접근 방식 특히 생태학과 진화론에 입각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요나스는 『책임의 원칙』의 머리말에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생각만 하고 있기에는 지구의 위기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막연한 구원의 예언보다는 불행의 예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장기 예측(미래에 대한 청사진)의 불확실성 자체를 하나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환경에 대한 인간의 결정이 최고의 선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닌 최고의 악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조차 해가 되는 기술의 '부작용'이 자연을 침해함으로써 득을 흐리게 하거나 득보다 더 커지려고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연의 허용 한계를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다. 또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리하게 자연을 착취하여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자연 전체의 체계를 파멸로 몰아칠 때, 돌이킬 수 없이 인간은 자연의 허용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러므로 요나스가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중심 질문은 무엇이 '한계'이며 어디에 놓여 있는가, 거기까지 얼마나 남았으며 또는 얼마만큼 가까이 있는가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은 ‘전통 윤리학’, ‘마르크스적 유토피아’를 각각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는 반대로 ‘전통 윤리학’과 ‘마르크스적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책임의 원칙’을 비판해 보자.
2. 우리가 자연을 개발할 때, ‘한계’가 되는 기준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요나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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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

『성과 속』의 핵심 내용

『성과 속』은 이 세계에서 성이 드러나는 여러 양태와 종교적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우리를 종교학의 심오한 문으로 안내한다. 엘리아데는 이 세계가 태초부터 성스러운 것이라는 입장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성현의 개념과 종교적 인간

인간이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것은 그 성스러움이 속된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서 스스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종교의 역사는 가장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고도로 발달한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성현이란 어떤 성스러운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성스러움이 드러남으로써 사물은 어떤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하지만 그 후에도 그 사물의 물질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스러운 돌도 여전히 한 개의 돌이다. 즉, 겉으로 볼 때는 그 돌을 다른 일반적인 돌과 구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돌이 성스러운 것으로서 제시되는 사람들에게는 눈앞의 돌이 초자연적인 실재로 변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경험을 가진 인간에게는 모든 자연이 신성성으로 제시된다. 그 때 우주는 전체가 성현이 된다.

고대 사회의 인간은 성스러운 것 가운데에, 혹은 성화(聖火)된 사물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살려고 노력했다. 왜냐 하면 원시인 및 모든 전근대적인 인간에게 성스러운 것은 힘이며 궁극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실재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것은 존재로 가득 차 있다. 성스러운 힘은 실재와 동시에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 실재에 참여하고자 하는 갈망, 힘으로 충만하고자 하는 갈망을 갖고 있다.

2. 인간에게 실재하는 공간의 의미

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이 동일하지 않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공간과 그 밖의 다른 공간,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공간 사이의 대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비종교적 인간에게 공간은 동일하다. 성스러운 공간은 인간에게 세계를 발견하게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획득하게 한다. 이에 반해 속된 경험의 공간에는 단지 흩어진 우주의 단편들만이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공간의 체험은 '세계의 창건'을 가능케 했다. 성스러운 것이 출현하는 공간에서, 실재가 그 모습을 나타내고 세계가 출현한다. 성스러운 것의 출현은 지상과 천상 사이를 교류하게 하고,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 속된 공간에 이 같은 단절이 생김으로써 하나의 중심이 창조되고, 그것을 통하여 초세계적인 것과 교섭하고 그에 따라 세계를 창건한다. 공간의 성현 혹은 공간의 정화는 우주 창조에 대응한다.

모든 세계는 신들의 작품이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세계 안에서만 살 수 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세계 속에서만 진정으로 실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종교적인 욕구는 억제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적 인간은 존재를 갈망한다.

이 존재론적인 갈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종교적 인간은 실제의 핵심,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자 노력한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상징은 국가, 도시, 사원, 궁전뿐만 아니라 수렵민의 천막, 유목민의 유르트, 정착 농경민의 집과 같은 보잘것 없는 인간 주거의 형성 원리가 된다.
그러나 어떤 공간에 거주하는 것은 우주 창조의 반복과 같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이 공간 안에 자리 잡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 결단이 된다. 그는 자기가 거주하기로 선택한 세계를 창조할 책임을 떠맡으면서 혼돈을 우주화할뿐만 아니라 그의 작은 우주를 신들의 세계처럼 만듦으로서 성화한다. 종교적 인간은 '신의 세계'에 깊은 향수를 느끼고 후세의 사원이나 성전이 그러한 것과 같이 신들의 집과 유사한 집을 동경한다.

3. 인간에게 실제하는 시간의 의미

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동일하거나 연속적이지 않다. 한편에는 성스러운 시간, 축제의 시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속된 시간, 즉 일상적인 시간이 지속된다. 이 두 종류의 시간 사이에는 물론 단절이 있다. 하지만 종교적 인간은 의례(儀禮)를 통해 일상적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이행한다.

이 두 종류의 시간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성스러운 시간은 원초적인 신화적 시간을 나타낸다. 종교적으로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일상적인 시간에서 탈출하여 신화적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시간은 무한히 회복될 수 있고 반복 가능하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은 두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이에 반해 비종교적 인간도 역시 시간의 비연속성과 이질성을 체험한다. 그에게도 노동하는 단조로운 시간이 있는 한편, 오락과 위안의 시간, 즉 '축제의 시간'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애인을 기다릴 때나 혹은 만날 때, 그는 일하거나 피곤에 지쳐 있을 때 체험하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체험한다.

그러나 종교적 인간과 비교하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시간'을 체험한다. 그 시간은 신들에 의해 성화되고 축제에 의해 재현된 원초적인 시간이다. 이 전례의 시간은 비종교적인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렵다. 비종교적인 인간에게 시간은 단절도 신비도 아니다. 그에게 시간은 그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처음과 끝이 있다.

4. 인간에게 실재하는 자연의 의미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체험하는 종교적 인간에게는 자연도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종교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고 세계는 신들의 손으로 완성된 것이어서 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간에게 세계는 성스러운 것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세계는 실존하고, 실제로 거기에 있다. 세계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다. 따라서 세계는 신들의 작품인 피조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은 직접적으로 '자연스럽게' 무한한 거리, 신의 초월성을 계시한다. 대지도 우주적인 어머니이자 양육자로서 자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종교적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다. 자연은 항상 그것을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성스러운 돌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것이 신성하기 때문이지, 돌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돌의 진정한 본질을 계시하는 것은 돌의 존재 양식 안에 나타난 신성성이다.

종교적 인간은 열려진 우주 가운데 살며, 그 자신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이것은 그가 신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 세계의 신성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들과 교류가 가능한 중심에 거주하기를 갈망한다. 그의 거주지는 소우주이며, 그의 신체도 역시 소우주이다.

'신체ㅡ집ㅡ우주'의 동일시는 매우 일찍부터 나타났다. 인도의 종교 사상은 이런 '집ㅡ우주ㅡ신체'라는 상징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등뼈는 우주의 기둥, 호흡은 바람이나 배꼽, 심장은 세계의 중심과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그에게 미리부터 운명 지워진 상황 속에 의식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스스로를 우주화 한다.

5. 현대의 비종교적 인간

이에 비해 현대의 비종교적인 인간에게 우주는 불투명하고 둔하고 말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주는 어떤 메시지도 전해 주지 않으며, 어떤 암호도 갖고 있지 않다. 자연의 신성함이라는 의식은 오늘날 유럽의 경우 주로 농경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 왜냐 하면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우주적 제의로 체득한 그리스도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서 산업 사회의 그리스도교는 중세 시대까지 지녔던 우주적 가치를 오래 전에 상실해 버렸다. 그들의 종교 체험은 더 이상 우주를 향해 열려 있지 않다. 결국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이 되어 버렸다. 즉, 구원은 인간과 그의 신에 대한 문제가 되었다. 기껏해야 인간은 신에게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할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ㅡ신ㅡ역사'의 관계 속에는 우주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세속적인 인간도 여전히 종교적 인간의 후예이며, 그는 자신의 역사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는 존재의 깊은 곳, '무의식'이라 불리는 영역을 간직하고 있다. 이 무의식의 내용과 구조는 시노하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무의식의 내용과 구조는 특히 위기의 상황이 낳은 결과이다. 이 때문에 무의식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갖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실존적 위기는 세계의 실재성과 세계 내에서의 인간을 다시 한 번 문제 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실존적 위기가 결국 '종교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인들에게 종교와 신화는 그들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인간이 내면 속에 생의 종교적 인식을 회복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비종교적 인간은 '의식된 종교 체험', 즉 '종교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했지만, 그의 가장 깊은 존재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저자 소개

『성(聖)과 속(俗)』은 세계 안에 있는 두 가지 존재 양식이다. 또한 인간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형성해 온 두 가지 생존 양식이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 1907~1986)』의 『성과 속(Das Heilige und das Profane)』은 성과 속이라는 개념으로 종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고전으로 손꼽힌다.

엘리아데는 1907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부쿠레슈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에 만난 다스굽타 교수에게 산스크리트를 배우며 인도의 사상과 상상력에 매료됐다. 인도에 유학하여 1936년에 『요가 : 인도 신비주의의 기원』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연금술과 우파니샤드, 불교를 통한 상징 해석에 몰두했으며, 1949년에는 자신의 종교 연구를 집대성한 『종교 형태론』을 펴냈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이니시에이션의 의례와 상징』, 『탄생과 재생의 신비』등을 저술했다. 1982년에 『종교 관념의 역사』2권을 출간하고 그 보완 작업을 하던 중 1986년에 사망했다. 그는 신화, 상징, 의례 등을 연구함으로써 역사, 문화의 차이를 초월한 인류의 공통적 정신세계를 탐구했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거룩한 공간의 세계의 성화, 제2장은 거룩한 시간과 신화, 제3장은 자연의 거룩함과 우주적 종교, 제4장은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삶 등이 그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앞의 글을 토대로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이 갖고 있는 공간과 시간과 자연의 의미를 각각 정리해 보자.
2. 엘리아데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양식을 성과 속으로 나누고, 또 그 범주를 토대로 인간을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분류가 현실적인 세계에 부합하는 분류인지 생각해 보자.
3. 엘리아데는 '현대의 비종교인들이 실존적 위기시에 나타나는 무의식을 바탕으로 종교적 인식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가 오늘날 과학 문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환경 문제, 인간 소외 문제 등에 시사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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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

『성과 속』의 핵심 내용

『성과 속』은 이 세계에서 성이 드러나는 여러 양태와 종교적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우리를 종교학의 심오한 문으로 안내한다. 엘리아데는 이 세계가 태초부터 성스러운 것이라는 입장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성현의 개념과 종교적 인간

인간이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것은 그 성스러움이 속된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서 스스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종교의 역사는 가장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고도로 발달한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성현이란 어떤 성스러운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성스러움이 드러남으로써 사물은 어떤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하지만 그 후에도 그 사물의 물질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스러운 돌도 여전히 한 개의 돌이다. 즉, 겉으로 볼 때는 그 돌을 다른 일반적인 돌과 구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돌이 성스러운 것으로서 제시되는 사람들에게는 눈앞의 돌이 초자연적인 실재로 변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경험을 가진 인간에게는 모든 자연이 신성성으로 제시된다. 그 때 우주는 전체가 성현이 된다.

고대 사회의 인간은 성스러운 것 가운데에, 혹은 성화(聖火)된 사물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살려고 노력했다. 왜냐 하면 원시인 및 모든 전근대적인 인간에게 성스러운 것은 힘이며 궁극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실재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것은 존재로 가득 차 있다. 성스러운 힘은 실재와 동시에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 실재에 참여하고자 하는 갈망, 힘으로 충만하고자 하는 갈망을 갖고 있다.

2. 인간에게 실재하는 공간의 의미

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이 동일하지 않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공간과 그 밖의 다른 공간,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공간 사이의 대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비종교적 인간에게 공간은 동일하다. 성스러운 공간은 인간에게 세계를 발견하게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획득하게 한다. 이에 반해 속된 경험의 공간에는 단지 흩어진 우주의 단편들만이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공간의 체험은 '세계의 창건'을 가능케 했다. 성스러운 것이 출현하는 공간에서, 실재가 그 모습을 나타내고 세계가 출현한다. 성스러운 것의 출현은 지상과 천상 사이를 교류하게 하고,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 속된 공간에 이 같은 단절이 생김으로써 하나의 중심이 창조되고, 그것을 통하여 초세계적인 것과 교섭하고 그에 따라 세계를 창건한다. 공간의 성현 혹은 공간의 정화는 우주 창조에 대응한다.

모든 세계는 신들의 작품이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세계 안에서만 살 수 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세계 속에서만 진정으로 실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종교적인 욕구는 억제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종교적 인간은 존재를 갈망한다.

이 존재론적인 갈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종교적 인간은 실제의 핵심,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신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자 노력한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상징은 국가, 도시, 사원, 궁전뿐만 아니라 수렵민의 천막, 유목민의 유르트, 정착 농경민의 집과 같은 보잘것 없는 인간 주거의 형성 원리가 된다.
그러나 어떤 공간에 거주하는 것은 우주 창조의 반복과 같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이 공간 안에 자리 잡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 결단이 된다. 그는 자기가 거주하기로 선택한 세계를 창조할 책임을 떠맡으면서 혼돈을 우주화할뿐만 아니라 그의 작은 우주를 신들의 세계처럼 만듦으로서 성화한다. 종교적 인간은 '신의 세계'에 깊은 향수를 느끼고 후세의 사원이나 성전이 그러한 것과 같이 신들의 집과 유사한 집을 동경한다.

3. 인간에게 실제하는 시간의 의미

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동일하거나 연속적이지 않다. 한편에는 성스러운 시간, 축제의 시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속된 시간, 즉 일상적인 시간이 지속된다. 이 두 종류의 시간 사이에는 물론 단절이 있다. 하지만 종교적 인간은 의례(儀禮)를 통해 일상적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이행한다.

이 두 종류의 시간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성스러운 시간은 원초적인 신화적 시간을 나타낸다. 종교적으로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일상적인 시간에서 탈출하여 신화적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시간은 무한히 회복될 수 있고 반복 가능하다. 그러므로 종교적 인간은 두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이에 반해 비종교적 인간도 역시 시간의 비연속성과 이질성을 체험한다. 그에게도 노동하는 단조로운 시간이 있는 한편, 오락과 위안의 시간, 즉 '축제의 시간'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애인을 기다릴 때나 혹은 만날 때, 그는 일하거나 피곤에 지쳐 있을 때 체험하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체험한다.

그러나 종교적 인간과 비교하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시간'을 체험한다. 그 시간은 신들에 의해 성화되고 축제에 의해 재현된 원초적인 시간이다. 이 전례의 시간은 비종교적인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렵다. 비종교적인 인간에게 시간은 단절도 신비도 아니다. 그에게 시간은 그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처음과 끝이 있다.

4. 인간에게 실재하는 자연의 의미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체험하는 종교적 인간에게는 자연도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종교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고 세계는 신들의 손으로 완성된 것이어서 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간에게 세계는 성스러운 것으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세계는 실존하고, 실제로 거기에 있다. 세계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다. 따라서 세계는 신들의 작품인 피조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은 직접적으로 '자연스럽게' 무한한 거리, 신의 초월성을 계시한다. 대지도 우주적인 어머니이자 양육자로서 자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종교적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다. 자연은 항상 그것을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다. 성스러운 돌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것이 신성하기 때문이지, 돌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돌의 진정한 본질을 계시하는 것은 돌의 존재 양식 안에 나타난 신성성이다.

종교적 인간은 열려진 우주 가운데 살며, 그 자신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이것은 그가 신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 세계의 신성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들과 교류가 가능한 중심에 거주하기를 갈망한다. 그의 거주지는 소우주이며, 그의 신체도 역시 소우주이다.

'신체ㅡ집ㅡ우주'의 동일시는 매우 일찍부터 나타났다. 인도의 종교 사상은 이런 '집ㅡ우주ㅡ신체'라는 상징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등뼈는 우주의 기둥, 호흡은 바람이나 배꼽, 심장은 세계의 중심과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그에게 미리부터 운명 지워진 상황 속에 의식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스스로를 우주화 한다.

5. 현대의 비종교적 인간

이에 비해 현대의 비종교적인 인간에게 우주는 불투명하고 둔하고 말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주는 어떤 메시지도 전해 주지 않으며, 어떤 암호도 갖고 있지 않다. 자연의 신성함이라는 의식은 오늘날 유럽의 경우 주로 농경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 왜냐 하면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우주적 제의로 체득한 그리스도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서 산업 사회의 그리스도교는 중세 시대까지 지녔던 우주적 가치를 오래 전에 상실해 버렸다. 그들의 종교 체험은 더 이상 우주를 향해 열려 있지 않다. 결국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이 되어 버렸다. 즉, 구원은 인간과 그의 신에 대한 문제가 되었다. 기껏해야 인간은 신에게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할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ㅡ신ㅡ역사'의 관계 속에는 우주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세속적인 인간도 여전히 종교적 인간의 후예이며, 그는 자신의 역사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는 존재의 깊은 곳, '무의식'이라 불리는 영역을 간직하고 있다. 이 무의식의 내용과 구조는 시노하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무의식의 내용과 구조는 특히 위기의 상황이 낳은 결과이다. 이 때문에 무의식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갖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실존적 위기는 세계의 실재성과 세계 내에서의 인간을 다시 한 번 문제 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실존적 위기가 결국 '종교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인들에게 종교와 신화는 그들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인간이 내면 속에 생의 종교적 인식을 회복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비종교적 인간은 '의식된 종교 체험', 즉 '종교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했지만, 그의 가장 깊은 존재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저자 소개

『성(聖)과 속(俗)』은 세계 안에 있는 두 가지 존재 양식이다. 또한 인간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형성해 온 두 가지 생존 양식이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 1907~1986)』의 『성과 속(Das Heilige und das Profane)』은 성과 속이라는 개념으로 종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고전으로 손꼽힌다.

엘리아데는 1907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부쿠레슈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 시절에 만난 다스굽타 교수에게 산스크리트를 배우며 인도의 사상과 상상력에 매료됐다. 인도에 유학하여 1936년에 『요가 : 인도 신비주의의 기원』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연금술과 우파니샤드, 불교를 통한 상징 해석에 몰두했으며, 1949년에는 자신의 종교 연구를 집대성한 『종교 형태론』을 펴냈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이니시에이션의 의례와 상징』, 『탄생과 재생의 신비』등을 저술했다. 1982년에 『종교 관념의 역사』2권을 출간하고 그 보완 작업을 하던 중 1986년에 사망했다. 그는 신화, 상징, 의례 등을 연구함으로써 역사, 문화의 차이를 초월한 인류의 공통적 정신세계를 탐구했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거룩한 공간의 세계의 성화, 제2장은 거룩한 시간과 신화, 제3장은 자연의 거룩함과 우주적 종교, 제4장은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삶 등이 그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앞의 글을 토대로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이 갖고 있는 공간과 시간과 자연의 의미를 각각 정리해 보자.
2. 엘리아데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양식을 성과 속으로 나누고, 또 그 범주를 토대로 인간을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분류가 현실적인 세계에 부합하는 분류인지 생각해 보자.
3. 엘리아데는 '현대의 비종교인들이 실존적 위기시에 나타나는 무의식을 바탕으로 종교적 인식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가 오늘날 과학 문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환경 문제, 인간 소외 문제 등에 시사하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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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의 『정의론』

『정의론』의 핵심 내용


여기에 케이크 하나가 있다. 다섯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 케이크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가? 우리는 이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대충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한 사람으로 하여금 케이크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게 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케이크 한 조각씩을 갖고 마지막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케이크를 자른 사람이 갖게 하는 것이다.

다른 네 사람이 더 큰 케이크 조각을 가지려고 싸울지도 모른다. 그것이 걱정된다면 네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사람부터 케이크 조각을 골라 가지게 하면 될 것이다. 케이크를 나누어 먹을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그 누가 불평을 하겠는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절차와 방법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정의(社會正義)의 문제를 이와 같은 절차와 방법을 이용하여 풀어 간다면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해 일정한 모형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20세기 최대의 윤리학자 존 롤스(John Rawls)이고 그의 정의에 관한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저서가 바로 『정의론』이다.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議)는 상당히 많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을 정의(正義)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몫을 받는 것을 정의(正義)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자의 경우처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측을 ‘자유주의’라고 말하고, 후자의 경우처럼 똑같은 분배를 강요하는 측을 ‘평등주의’라고 말한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받을 수 없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만큼 많은 대가를 받는 사회를 자유주의 사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평등주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를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는 없는가? 더 나아가 자유주의 안에 평등주의의 좋은 점을 도입할 수는 없는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철학자가 존 롤스이다. 그는 『정의론』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롤스는 『정의론』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축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더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됨을 거부한다. 즉,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가용해도 좋다는 것을 정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동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최선의 이론이 없을 경우에는 결함 있는 이론이나마 따르게 되듯이, 부정의는 그보다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제 1덕목으로 진리와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것이다.

롤스는 정의(正義)를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정의론』의 중심 과제는 “어떤 차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절차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면 불평등이나 차등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얼핏 들으면 모순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이 어떤 점에서 설득력을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다수의 커다란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소수가 될 때도 그런 일을 순순히 허용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롤스는 타인들의 커다란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을 정의라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도 있고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위의 결과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 시킨다고 할 때 그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금지시켜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이러한 금지를 합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직접 제한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스는 “부정의를 참을 수 있는 경우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할 수 있을 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롤스가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 정의를 주장할 때 내세우는 정의는 ‘절차적 정의’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추첨에 의해 5억 원을 받게 됐다고 할 때, 공정한 절차만 지켰다면 어느 누구도 그 결과에 대해서 전혀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케이크를 나눌 때 케이크를 나눈 사람이 마지막에 자기 조각을 가져가는 것이나, 더욱 커다란 케이크를 갖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도 이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롤스는 절차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계약(contract)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점에서 롤스는 기본적으로 로크, 루소, 칸트의 전통 위에 서 있고 그들과 비슷한 계약론적 접근을 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롤스는 순수한 절차적 정의의 원리를 수립하기 위해 계약 당사자들이 자신의 특수한 여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자신의 특수한 여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순수한 절차적 정의가 확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법률을 만들 때 자신이 건설 회사 사장이라면 건물 주인보다는 건설 회사에 유리한 법률을 만들 것이고, 만약 법률을 만드는 주인이 변호사라면 의뢰인보다는 변호사에게 유리한 법률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려면 그런 특수한 여건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룰스는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게 만드는 무지의 베일(the vail of ignorance)'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가 갖게 될 케이크 조각이 어떤 것인지를 몰라야 케이크 자르는 사람이 케이크를 공정하게 자르지 않겠는가?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원초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물론 이 말에는 계약 당사자들이, 상호 협동이 가능하고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권력이나 재화의 취득을 욕구한다는 사실 등을 전제하고 있다. 롤스의 기본적인 생각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공정한 절차에 의해, 사회 제도나 규칙을 결정한다면 비록 그 결과가 부정의하더라도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롤스는 자신이 주장하는 이와 같은 설명이 옳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롤스의 정의의 두 원칙 중에 첫째 원칙은 자유 우선성의 원칙으로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차등의 원칙으로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불평등이 인정되려면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직위와 직책이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 있고, 만약 불평등한 제도가 있다면 그 제도는 사회의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고 그 모든 절차가 공개되어 있을 때만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월수입이 천만 원인 공인 회계사 시험이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 있다면 어느 누가 그런 제도를 용납하겠는가? 또한 도시 계획이나 국가 기간 산업 건설에서 비록 그 결정내용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손해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정의한 결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롤스가 말하는 절차적 정의에서는 정책과 제도의 투명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런 원칙이 채택되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평등주의의 좋은 점을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약 각 개인의 자유만을 인정한다면 소년 소녀 가장이나 불우한 처지에 놓인 노인,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문제를 소홀히 할 소지가 많다. 그러나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그들의 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커다란 단점인 빈익빈 부익부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롤스의 정의론은 기본적으로 ‘최소 수혜자의 최대 행복’을 고려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개인의 능력만을 강조하는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이지만, 둘 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이다. 정의로운 국가는 차등이나 불평등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이나 능력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존 롤스(John Rawls)』는 1921년 미국에서 태어나 코넬, MIT대학을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공정으로서의 정의』, 『분배적 정의』 등 사회 정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논문들을 근간으로 20여 년에 걸친 필생의 대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를 내놓았다. 이 책은 20세기 윤리학 저술 중 가장 유명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볼 문제

1. 케이크 하나가 있다. 다섯 명이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기아 상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먹어야 살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롤스의 주장대로 ‘무지의 베일’을 사용하여 케이크를 다섯 명 에게 똑같은 크기로 분배하였다면 이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지 친구들과 토론해 보자.
2. 존 롤스는 “부정의를 참을 수 있는 경우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할 수 있을 때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 일상생활에서 찾아보자.
3. 존 롤수는 정의를 크게 법적, 정치적 차원의 정의(자유주의적 관점)와 경제적 분배 차원에서의 정의(평등주의적 관점)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이 상충될 경우, 어떤 것이 우선 할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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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 마르크스 학설 비판


이러한 맥락에서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내용을 구성한다. 슘페터는 먼저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제1부 마르크스 학설’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 이론은 노동 가치설에서 시작되어 잉여 가치론, 축적 이론, 자본 집중론, 대중 궁핍화론, 산업 예비군 이론, 공황 이론. 그리고 제국주의론에 이르는 이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슘페터는 이러한 마르크스 이론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붕괴될 수 밖에 없는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내적 모순이 낳은 경제적 실패, 즉 공항에 의해 붕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슘페터는 이에 대해 반론을 펼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붕괴의 원인을 경제적 실패에서 찾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순경제적으로는 붕괴될 내적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리어 자본주의 경제의 그 훌륭한 성공이야말로 자본주의 붕괴의 여러 가지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슘페터는 경제적 실패라는 원인을 제시한 마르크스 이론으로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설명할 수없다고 단정한다. 바로 이 점이 슘페터 스스로가 자신을 비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른 이유이다.

2. 자본주의는 잔존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 이론에 만족하지 않은 슘페터는 ‘제2부 자본주의는 잔존할 수 있는가?’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본성을 설명한다. 그는 먼저 자본주의 문명의 눈부신 업적을 예찬하고 자신의 자본주의 붕괴 이론을 전개한다. 자본주의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은 곧 경제 발전 자체를 기계화하고 발전의 추진력인 기업자의 기능을 무용화한다. 이는 기업자, 즉 부르주와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린다. 둘째, 자본주의의 발전은 중소 기업의 파산과 거대 기업의 발전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계급(중소 기업 출신의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분위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주의의 정치 세력을 약화시키고 반대파의 정치 세력은 강화시킨다. 셋째, 거대 기업은 한 개인이나 한 집안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주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고, 주식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됨에 따라 기업자 자체가 기업에 대한 열정과 자본주의 체제를 사수하려는 정열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사물도 정신도 모두 점차 사회화되어 오늘날 안팎으로 지지자를 잃은 자본주의 체제는 머지않아 다른 체제에 자리를 야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슘페터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현상들을 자본주의이 붕괴 원인으로 보았던 것이다.

3.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의 붕괴 원인을 논의한 후, 슘페터는 ‘제3부, 사회주의는 작동 할 수 있는가?’에서 가능한 하나의 사회주의를 규정하고 이를 검토한다. 슘페터는 우선 제3부 첫머리에서 상업 사회 및 그 특수 형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개념을 규정한다. 상업 사회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생산 과정의 사적 관리에 의한 규제라고 하는 두 가지 요소를 내포하는 제도적 유형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상업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 동일하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업 사회가 내포하는 두 가지 요소, 즉 생산 수단의 사유와 생산 과정의 사적 규제 이외의 신용 창조라는 요소가 추가됨으로써 규정된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 수단에 대한 지배권과 생산 과정에 대한 지배권이 중앙 당국에 귀속되어 있는 제도적 유형을 말한다. 여기서 중앙 집권적 사회주의란 용어는 중앙 당국이 반드시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한다든가. 혹은 집행에 관한 일체의 일들이 오직 중앙 당국에만 귀속되어 있다는 의미의 주앙 집권주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개념 규정 후에 슘페터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질문은 이와 같이 규정된 사회주의 체제가 경제적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기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슘페터는 이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둘째 질문은 자본주의의 경제와 사회주의의 경제 중 무엇이 더 능률적인가의 문제이다. 우선 슘페터는 자본주의에서 완전 경쟁이 상실되고 그에 따라 자원 최적 재분배의 합리성도 상실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이것이 해결된다는 견해를 부정한다. 완전 경쟁 경제보다 독점 자본주의 경제가 오히려 더 능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유리한 점으로 다섯 가지 요인을 든다. 이 다섯 가지는 ① 불확실성이 배제됨으로써 비용, 낭비의 절감, ② 과잉 생산력을 경제 후생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 ③ 실업 배제의 가능성, ④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충돌이 해소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경제 능률의 향상, ⑤ 수입 원천의 국가 관리에 의한 조세의 폐지 등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문제는 과도기의 문제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문제를 말한다. 슘페터는 사회주의 사회가 성립되는 과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두 가지 경우가 성숙 상태에서의 사회주의화와 미성숙 상태에서의 사회주의화이다. 성숙 상태에서의 사회주의화는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서, 사회주의화를 이루기에 적합한 경제적 조건 및 심적 태도가 조성되고, 그에 따라 각종 계급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 의하여 헌법 개정이란 평화적 방법으로 채택되는 사회주의화를 말한다. 반면 미성숙 상태에서의 사회주의화는 일반적으로 중소 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고, 부르주아적 질서에 따라 사물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히 뿌리 깊게 깔려 있기 때문에 의회를 통한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고 단지 혁명에 의해 이룩되는 사회주의화를 말한다.

4.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의 제 4부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슘페터는 민족주의 이론을 전개한다. 슘페터는 우선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자기의 사상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동시에 슘페터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슘페터는 민주주의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방식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최상의 정치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민주주의적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주의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 그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이상화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5. 요약

이렇듯 슘페터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이론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사회주의 사회의 출현을 설명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성공에 의해 붕괴될 것이며, 만약 자본주의 붕괴의 상황이 성숙된 상황이라면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로서의 평화적 이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슘페터 학설의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슘페터는 저서의 마지막 부분인 ‘제5부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적 개관’에서 점차적인 사회주의화의 길은 전 세계적인 경향이며 미국도 그 예외는 아니라고 결론을 짓는다. 슘페터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점차적인 사회주의화는 역사적 대세였던 것이다.

저자 소개

『알로이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 1883~1950)』는 1883년 2월 3일, 체코슬로바키아령 모라비아의 트리시(Trisch)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란 그는 아름다운 고대 도시 빈의 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 갔다. 그는 중간 계급 출신이었지만, 빈이나 영국 상류 사회의 우아하고 자유스러운 환경은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슘페터는 1893년부터 1901년까지 귀족 자제를 위한 학교인 테레지아눔에서, 이 학교의 특징인 고전 중심의 교육을 받고 1901년 졸업과 동시에 빈 대학 법학부에 입학, 1906년 법학학사의 학위를 받았다. 1906년에서 1907년에 걸친 영국 상류 사회에서의 사교나 일류 경제학자와의 친교는 그의 교양과 학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슘페터는 그의 나이 25세에 ‘이론 경제학의 본질과 주요 내용’(1908년)으로 학계에 데뷔했다. 이 저서는 순수 경제학의 방법론적, 내용을 출발점을 확립시키려는 야심작이였으며, 이로 인해 그는 소장 경제학자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다. 그 후 슘페터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했고 제 1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오스트리아의 단독 평화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1933년부터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대표적인 저작들을 집필했다. 그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경기 순환론』 2권, 『경제학사』, 『경제 분석의 역사』 등이 있으며 1942년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가 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슘페터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학문적 업적을 쌓았던 슘페터는 1950년 1월에 그의 생을 마감했다.

생각해 볼 문제

1. 슘페터의 '자본주의 붕괴 과정'은 마르크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앞의 글을 참조로 정리해 보자
2. 슘페터는 비록 자본주의 몰락 원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와 견해를 달리하긴 했지만, 그 역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는 더욱더 번성하고 있으며,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는 현실을 낳았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 관점에서 슘페터가 제시한 자본주의 몰락의 과정이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타당하지 않은 것인지 친구들과 토론해 보자.

 

 

[자료출처-대성학원]

출처 : 대학입시수능정보(재수,점수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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