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부분과 전체』의 핵심 내용 |
1. 자연 과학과 종교의 가치 기반
하이젠베르크는 이 책,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를 통하여, 자연 과학이란 실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겸손하게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20년 고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 중에 가진 원자 세계에 대한 첫 대화로부터 시작된 원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뮌헨 대학에서의 이론 물리학 분야로의 입문, 이후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에 대한 무수히 많은 토론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대화체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차 모인 폴 디랙, 볼프강 등과의 모임에서는 자연 과학(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종교(가치의 세계)에 대한 대화의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한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된다는 플랑크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 자신이 지식과 신앙이 날카롭게 분열되어 있는 인간 공동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젊은 실험 물리학자인 버튼과의 토론에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기술자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버튼의 주장과는 달리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술자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힘으로써,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원자 물리학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 과학(양자 역학)과 철학(인과론)의 관계
하이젠베르크는 양자 역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그레테 헤르만은,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근대 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하여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체이며, 모든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하므로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고,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하는 한도에서 자연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인과율을 다음의 예를 통해 부정한다.
우리는 조만간 라듐B 원자는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붕괴를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B 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방향 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은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은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헤르만의 주장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결국에는 칸트주의자뿐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칸트 철학과 현대의 자연 과학에 대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의 ‘이해’라는 개념에 대한 파울리 볼프강과의 폭넓은 철학적, 역사적, 물리적 지식에 입각한 대화와 그의 나이 20세밖에 되지 않은 해에, 4학기 째로 접어든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 닐스 보어를 상대로 원자론에서의 보어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과감하게 제기했던 일은 그의 학문적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봄, 물리학의 아성인 베를린 대학의 물리학 토론회에서 양자 역학에 관하여 보고하도록 초청을 받게 된다. 강연이 끝난 후, 아인슈타인과 가진 자연 법칙과 이론의 철학적 기초들에 대한 토론과 1926년 뮌헨의 세미나에서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한 물리학 해석에 대한 토론, 그 밖에도 다양한 일화를 통하여 여러 모로 서로 다른 분야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학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당시로서는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다양한 난점과 내부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자 물리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단순히 학자로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로서 그는 청년 운동이라는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여 새롭고 올바른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건축 연구소, 민중 학교, 고전 음악의 장려 등과 같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3. 부분과 전체
글의 머리말에서처럼 토론과 대화에서 원자 물리학이 항상 주연만을 맡아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비단 원자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 자체가 이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한 예로서, 1922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고 강연에 참석한 그는, ‘상대성 이론이란, 독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대인 신문들의 과대 선전에 의해서 부당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아주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사변(思辨)을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쇄된 종이쪽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유인물의 주동자가 실험상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겨 높이 평가되고 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문적인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젠베르크는 전문화되고 더욱 구체화된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감으로써, 이로부터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에서의 각각의 부문들과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성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급격한 과학 기술 및 정보량의 유출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각 분야를 더욱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개의 부분적인 질서와 함께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와의 관련성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나의 예로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나치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류라는 전체성을 잊어버린 채 그릇된 부분적 질서에만 집착함으로써 유발되는 폭력성과 같은 사상적 편견의 위험성을,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인 한 청년과의 대화를 통하여 기술함으로써 비단 정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성인들과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사상적 편견에 대하여 경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로써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질서에 대해 충실했을 때 유발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 물리학 이외에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이민, 파괴의 혼란과 개개인의 고립화와 상호간의 이해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협소한 유럽, 강압적인 나치 정권하에서 탈피하여 자연 과학의 커다란 비약과 준비된 조건 속에서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후 독일의 과학을 재건하고자 그의 주위에 모인 뜻 있는 젊은이들과 자신의 조국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치즘의 강압에 의해 위험한 과학적 발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기존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을 제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라는 전체성을 염두에 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력 무기로서 개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원자 물리학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성원으로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이 책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진리 추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용왕매진(勇往邁進)했던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의 흔적이 진리의 상아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토론의 장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소개 『베르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는 당대 최고의 석학인 조모펠트, 막스 본과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았으며, 원자 또는 분자의 미시적 구조는 물론 화합물들 사이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는 입자―파동 이중성을 바탕으로 한 양자 역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보어의 원자 구조 이론에 협력하고 현대 양자 역학의 최초의 착상을 발표하였으며, 그 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에 의한 양자 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도 이바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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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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