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재단은 정치인들의 이목을 생각해야하는 입장이다. 명문중고가 되어야 하니깐...따라서  어떻게든 법대로, 현 실세대로 맞추려 한다. 그러나 일제고사에 대한 거부는 있을 수 있고 이것을 당당히 실현하는 것이 참교육이자 참민주주의라고 생각된다.  획일화된 옛 서열교육의 잔재라고 보는 입장에선 더욱 그러하다.  이 시점에서 파면에 대한 대책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생긴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강남의 학생과 학부모들, 동료교사들이 함께 나선 것은 참교육을 실현하기 어려운 척박한 토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단비와 같이 의미있는 일이다. 정치권력이 바뀌면서 교육정책도 주물럭거리는 교육현실에 제대로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일시적인 구호가 아닌 미래를 향한 도약이길 바란다.
  
지난해 10월 일제고사 선택권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줬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 당시 세화여중 학생들은 집단 백지답안 제출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 이경태
세화여중

세화여중(서울 서초구)이 14일 지난해 10월 치뤄진 일제고사와 관련,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설명해준 김영승 교사를 파면했다.

 

당시 세화여중 3학년 학생들은 일제고사에서 매 시간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이 백지답안 등을 제출해 일제고사 거부 의사를 표했다.

 

서울시교육청과 강남교육청은 지난 11월 학교법인에 김 교사에 대한 중징계 요청을 했다. 학교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 12월, 1월 두차례의 인사위원회를 열어 관련 심의를 벌이고 지난 7일 최종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학교 측은 징계사유로 ▲일제고사 선택권 발언 ▲일제고사 반대 선전 및 서명 ▲백지답안 관련 교육청 특별감사 방해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을 위한 무단조퇴 등 총 4가지 사유를 밝혔다.

 

한편, 교사들에게 학부모와 학생들의 일제고사 선택권을 존중했다는 이유로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 사태와 관련해 지난 12월 10일 초·중등교사 7명을 파면·해임했고, 지난 1월 19일 강원도교육청도 초등학교 교사 4명을 파면·해임했다.

 

  
동료교사, 세화여중 졸업생 및 재학생, 학부모, 지역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세화여중 김영승 선생님 징계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세화여중 정문 앞에서 김 교사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는 학교 재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경태
세화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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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My Life ] “만화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그린다” [조인스]

‘조선’을 그린 이두호의 만화인생 40년… 전 10권 ‘만화 한국사’ 작업에 몰두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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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만화를 읽는 좋은 방법이 있다. 두 번 읽는 것이다. 1995년 그가 그린 장편 임꺽정(전 20권)을 1회독 했을 때, 나는 그 그림의 어눌한 이미지, 불명확한 선 처리에 다소 불만이 남았다.

몇 년 후 그 임꺽정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그가 추구하는 ‘조선의 심상(心象)’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흔히 ‘바지 저고리의 혼’이라 명명하는, 거칠고 두루뭉술한, 저 이두호적 만화의 ‘불투명한 세계’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만화에는 단박에 사람의 얼을 빼놓는 날카로운 매혹의 순간이 드물다. 산과 강의 풍광을 음미할 때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유유자적의 마음으로, 멀리서 천천히 감상할 때 진면목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당기는 힘이 여간 완고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지난 연말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했다. 그는 명예교수로 1년을 더 강단에 설 예정이다.

아직 그의 대학 연구실엔 그가 평생 그려온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는 5년 후 완간을 목표로 ‘만화 한국사’ 전 10권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듯이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렸어요.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만화책 뒷장에 빽빽하게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큰형님 결혼식 때 축사를 쓴 두루마리에도 그림을 그렸어요. ‘며느리 설움’이란 무성영화를 보고 만화로 내용을 되살렸던 기억도 납니다. 5학년 때였죠. 중3 때는 정식으로 ‘피리를 불어라’란 만화책을 출판하기도 했어요.”

이두호는 1943년 경북 고령군 다산면에서 태어났다. 3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절까지는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출중했다. 측량, 목수 등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탁월했다. 그 손재주를 살려 부친이 뛰어든 또 하나의 세계가 도박이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면서 이두호 일가는 고생의 문에 들어서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만화보다 회화에 열중했다. 장차 화가가 되리라 생각했지, 만화가는 꿈도 꾸지 않았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63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을 때까지도 그는 서양화가로의 입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고교 시절부터 그는 대구 문예출판사에 취직해 위인전의 삽화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 모아둔 돈으로 입학금을 낼 수 있었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그는 오직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서울역 주변에서 구두닦이를 했고, 명동 심지다방 근처에서 밀감을 팔기도 했다.

고구마가 네 개에 10원 하던 시절인데 하루에 두 개씩 먹으며 버텨낸 적도 있다. 초등학교의 환경미화를 도급 받아 생활비를 충당했던 적도 있지만 학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1965년 그는 군에 입대했다. 그 지긋지긋한 배고픔과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그의 작품에서 배어 나오는 약하고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짙은 연민은 그런 그의 청년기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홍대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렸어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동창생들이 저를 바퀴벌레 취급하더군요. 그런 풍토에 대한 반발심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화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죠. 군 제대 후 결혼했는데, 그때 학교에 복학해서는 도저히 가장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박기정 선생 문하에서 1년 습작기를 거친 다음 ‘소년중앙’ 창간을 계기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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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0년 동안 그는 지독한 갈등에 시달렸다. 만화는 생업이었지, 그가 절실하게 꿈꾸던 세계가 아니었다. 1978년 그는 절친한 동료 한희작씨에게 희한한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화풍이 비슷했던 그에게 2년간 자신의 연재 만화를 대신 그려 달라 부탁한 것이다. 그는 오래 꿈꾸던 세계, 그가 일생을 추구하리라 결심했던 서양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내도 1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챘을 정도예요

그때 철조망도 그리고 망치도 그리고 찌그러진 깡통도 그리고… 나의 설움이 압축된 온갖 대상을 캔버스 위에 그려봤죠. 무서운 가난에 시달리면서 2년 동안 서양화를 그리고 나니까 역설적으로 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한희작과 약속한 2년이 지나면서 다른 연재물은 다 정리하고 성인만화는 ‘바람소리’를, 아동물은 ‘암행어사 허풍대’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시대물이었죠.”

그는 학창시절부터 국사, 특히 조선사를 좋아했다. 박기정, 박기당, 김종래 등이 즐겨 그렸던 시대극화의 전통이 끊어져 안타깝기도 했고, 시대물엔 뭔가 비아냥거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거기에는 사회 현실을 에둘러 비판할 수 있는 소재가 가득 차 있었다.

“1987년부터 주간만화에 연재한 ‘덩더꿍’이 그런 작품이죠. 작중 모델은 세조 때 영의정까지 지내고 부귀 영화를 누렸던 홍윤성이었는데, 그는 조선의 역신 중 최악으로 평가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조는 끝내 그를 징치하지 못했는데, 최고통치자가 못하면 백성들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만화의 메시지였습니다. 주인공 ‘독대’가 홍윤성을 죽일 때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군요.”

그의 시대극화 중 기념비적인 작품은 김주영의 ‘객주’와 벽초(홍명희)의 ‘임꺽정’일 것이다. ‘객주’는 1988년 김주영씨와 직접 만나 원작료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김주영은 당시 신촌의 한 만화출판업자에게 거금 1800만원의 원작료를 제의 받았지만 이두호에겐 단돈 400만원을 받고 만화판권을 넘겼다.

“신촌 출판업자는 만화가를 여럿 동원해 공장 식으로 만들려 했는데 김주영씨는 그 점을 싫어했어요. 단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자기가 필요한 돈이 400만원인데 300만원만 달라는 거예요.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 제가 그냥 400만원을 드리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가 다방 주인에게 메모지 한 장을 달라 하더니 거기에 깨알 같은 글씨로 ‘객주의 만화판권을 이두호에게 양도함’이라 써줬던 기억이 납니다.”

벽초의 ‘임꺽정’은 이두호가 오랜 기간 몇 번이고 열독해 온 소설이었고, 언젠가 꼭 그려보리라 마음에 뒀던 작품이었다. 벽초의 소설을 뼈대로 삼았지만 실록에 나타난 임꺽정의 자료도 모조리 섭렵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임시로 대학원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벽초의 임꺽정은 작품 전체가 연대기 순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각 편마다 서술방식도 다르다.

만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발상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주인공의 캐릭터에도 변화를 줘야 했다. “임꺽정은 고우영씨가 70년대에, 방학기씨가 80년대에, 그리고 제가 90년대에 작품을 만들었죠. 2000년대에 좋은 후배가 나와 새롭게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궁무진한 변용이 가능하죠.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으니까요.”

이두호의 저 유명한 ‘엉덩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만화는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엉덩이로 그린다”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늘 세뇌하는 그의 지론이다.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 했던 고 김수영 시인의 소위 ‘온몸론’과도 통하고, 만화란 예술이면서 동시에 노동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도 통한다.

만화의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선 엉덩이를 붙이고 한 자리에서 10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두호는 그래서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여름방학 만화지옥캠프’란 전통을 만들었다. 여름방학 때마다 보통 열흘씩 시골의 폐교를 빌려 만화를 그리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작화 테이블을 1인당 1개씩 설치하고 무더위와 모기떼와 싸우며 만화 그리기 고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고행엔 이두호 자신도 똑같은 조건으로 참여하므로 학생들은 감히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내가 만화 배울 땐 이랬죠. 작화 테이블 앞에 조그만 창이 있었는데, 한참 그리다 고개를 들어보면 그 창밖에 눈이 내리고, 또 한참을 그리다 보면 꽃도 피고, 장마가 지고, 낙엽 지는 가을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그리고 그려서 어느 날 작가가 된 것이죠. 요즘 학생들은 만화를 그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지옥캠프를 그래서 구상했죠. 한번 갔다 오면 학생들 눈빛이 달라지고, 작업에 임하는 진지함이 달라집디다.”

그의 만화세계를 한 번의 인터뷰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섭렵한 수많은 장르의 만화, 40년 작품세계의 리스트는 셀 수조차 없다. 그 넘칠 듯한 과거의 업적을 뒤로한 채 그의 만화는 요즘도 진보를 거듭한다.

“앞으로 5년은 10권짜리 ‘만화 한국사’에 몰두할 작정입니다. 내가 그 동안 천착했던 조선시대사를 넘어서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작업이죠. 제 엉덩이가 감내해야 할 새로운 도전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선물로 받은 책, ‘이두호의 가라사대’의 속표지에 그는 임꺽정의 초상을 그려줬다. 그는 눈동자의 점을 제일 마지막에 찍었다. 임꺽정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지만 이두호 만화, 그 거대한 계보를 마감하는 화룡점정은 아직 찍히지 않았다.

한기홍 뉴스위크 한국판 객원기자 / glutton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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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넘치는 현장, 혁신은 엔진 달았다 [조인스]

“위기 오기 전부터 대비했다”… 원가절감으로 7382억원 아껴
정준양 시대 포스코의 미래는?(下)

포스코가 지난해 말 사상 최초로 감산에 돌입하자 시장은 술렁였다. 포스코가 생산을 줄일 정도면 올해 철강산업이 대단히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포스코는 이번 감산 결정이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준비라고 말한다. 포스코가 위기를 어떻게 헤쳐가고 있는지 포스코 광양제철소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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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2000명이 사는 광양시. 작고 조용한 도시지만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다. 최근 이곳 주민의 최대 관심사는 백운산에서 나는 ‘고로쇠 물’과 ‘포스코 주주총회’란다. 그만큼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이 지역에서 중요한 존재다. 지난 2월 4일 아침 광양제철소 도금부.

시곗바늘은 8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팀원 앞에 선 최홍철(32) 대리가 입을 열었다. “2월 4일 아침 VP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유머는 나이대별로 부부의 잠자는 모습입니다. 20대는 포개져서, 30대는 마주 보고, 40대는 등 돌리고, 50대는 각방에서, 60대는 어디서 자는지 서로 모르고 잡니다.”

최 대리의 말이 끝나자 부원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최 대리가 말을 이었다.

“절반 이상 웃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맡은 업무를 설명하겠습니다. 엔지니어와 분류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품질관리시스템을…(이하 생략).”

“현장 모니터는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최 대리의 업무 발표가 끝나자 황규삼 도금기술개발팀 리더가 질문을 던졌다. 최 대리가 대답하자 다른 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원들이 업무 발표를 모두 마치자 최 대리의 선창으로 “파이팅”을 세 번 외치고 팀원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정각 9시였다. VP(Visual Planning)란 포스코 혁신활동의 하나로 팀원 각자가 앞으로 한 분기 동안 무슨 업무를 수행할지 월, 주, 일별로 부원 앞에서 계획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업무계획을 보여주는 활동이다. 광양제철소는 매일 아침 9시 업무시작 전 20분 동안 VP활동을 실시한다. 이날 활동 진행을 맡은 최 대리는 “처음 6개월은 괜한 일을 하는 것 같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효과를 느끼고 있다”며 “발표력도 기르고 내가 할 일을 스스로 고민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불필요한 업무를 간소화해 회의도 많이 줄었다”며 “활동 초기에는 발표를 위해 일부러 업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됐다”고 덧붙였다. 분기마다 회사 전략이 발표되면 1박2일 워크숍에서 회사 전략에 맞는 부서 목표를 정한다. 그리고 팀 리더가 담당자를 지정해 주면 담당자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3개월 동안 할 일을 직접 정하는 것이다.

가령 ‘세계 최고 전략제품 품질 경쟁력 확보’라는 회사의 큰 전략이 150개가 넘는 세부 업무로 쪼개진다. 황 리더는 “회사 전체 비전과 전략을 팀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VP활동의 목적”이라며 “업계에서 우리나라가 완벽하게 일 마무리를 못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원들의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은 보너스다. 도금부에서는 업무 발표에 앞서 웃기는 얘기를 해 부원 절반 이상이 웃지 않으면 발표자가 점심을 낸다. 회사 측은 VP활동을 실시한 후 직원들의 성과 몰입도가 86% 증가했다고 밝혔다. 팀 단위 활동뿐 아니라 지난해부터는 임원끼리 모여 따로 VP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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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기계실에서 ‘마이 머신 활동’ 중인 화성부 2코크스 현장 직원들.

월, 주, 일별 업무계획 발표

같은 날 오후 3시 화성부 2코크스 공장. 코크스를 다음 공정으로 옮기는 전차의 기계실에서 마이 머신(My Machine) 활동이 한창이다. 마이 머신이란 현장 노동자가 ‘내 기계’를 직접 관리한다는 뜻으로 설비 청소부터 기계의 성능 개선까지 다 포함하는 혁신활동이다. 이날은 1단계인 청소작업을 했다. 크게 소리쳐야 옆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굉음이 들리는 현장에서 2코크스 소속 기사 예닐곱 명이 전차 기계실을 세척하고 있었다.

마이 머신 활동은 주로 휴무를 이용해 하는데 1인당 한 달에 20~30시간 정도 참여한다고 한다. 작업 마스크를 벗은 박태수(29) 화성부 2코크스 공장 기사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눈앞에서 기계가 깨끗해지고 매번 문제를 일으키는 기계가 개선되는 것을 보니 결국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기계를 분해해 성능을 원래대로 좋게 만드는 과정에서 전기, 기계, 유압 등 설비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어 자격증 시험을 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이 머신 활동은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발전해 왔다. 2006년 초창기에는 청소가 전부였다. 그러다 2007년에는 설비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진행했고 지난해부터 전 설비를 블록으로 쪼개 3개월마다 한 블록씩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전체는 2700여 개의 블록으로 나뉘어 있다.

3코크스 공장의 김제성 반장은 마이 머신 활동을 벌이기 전의 설비 사진을 보여주며 “녹이 슬고, 볼트가 없어지고, 모터에 먼지가 끼는 등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마이 머신 명소로 꼽히는 3코크스 공장 공기압축기실에 들어가자 바닥과 벽은 깔끔하게 페인트칠 돼 있고 모든 장비가 제자리에 갖춰져 사진 속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 업무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직원들이 직접 쓸고 닦고 조립한 결과다. 공기압축기실의 천장에 걸려 있는 만국기가 눈에 띄었다. 김 반장은 “원래 공장을 준공할 때 만국기를 단다”며 “처음 공장을 준공했을 때 마음으로 늘 작업장을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유지하자는 뜻에서 달았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현장 직원들에게서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수원 QSS 마스터는 “나라가 워낙 어렵다고 하니 심리적으로 불안하긴 하지만 이곳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며 “만약 지금 설비를 교체해야 하거나 기계가 고장 난다면 돌발 사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2년 전부터 대비했기 때문에 오히려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힘줘 말했다.

30년 넘게 포스코에서 일한 김기성 화성부 2코크스 공장 파트장은 “1998년 외환위기 때도 어렵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수출길은 막히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이래 지금이 가장 위기이면서 또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혁신이 제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시 무전기에 입을 갖다 댔다.

설비를 재정비하는 것은 결국 원가절감으로 이어진다. 설비가 고장 나면 품질이 떨어지고 리스크는 높아진다. 그만큼 비싼 원재료를 써야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인다. 하지만 설비가 안정되면 저렴한 석탄을 써도 목표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도금부의 최 대리, 2코크스 공장의 박 기사. 이들에게 혁신활동은 곧 일이다.

나 하나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철강산업과 포스코는 잘 돌아간다는 식의 사고는 이들의 머릿속에 없다. 대신 또 하나의 생각이 더해진다. 바로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일, 혁신, 학습이 일체화되면 고성과가 나고 실적이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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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부 팀원들이 VP활동을 펼치고 있다. 패널에 월, 주, 일 업무 계획이 수정하기 좋게 붙어 있다. 왼쪽 끝이 분기, 가장 오른쪽 끝이 일 계획이다.

24시간 돌아가는 교육동

직원들의 ‘학습’을 돕는 혁신지원센터는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업무만 24시간 3교대가 아니라 학습도 24시간 돌아가는 것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김명득 혁신지원그룹 팀 리더는 “학습은 혁신을 위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개선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오후 11시~오전 7시, 오전 7시~오후 3시, 오후 3시~오후 11시로 돌아가는 3교대 업무 속에서 직원들은 시간을 쪼개 공부한다.

교육동에서 만난 한 직원은 “도서관에 빈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학습의 목표는 ‘설비에 강한 오퍼레이터를 양성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2006년 혁신지원센터를 시작하면서 최신 장비를 들여놓는 데만 70억원을 투자했다. 또 자주 바뀌는 현장 시스템 설비에 익숙해지려고 교육동 실습 장비는 늘 현장에 있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선 것을 고집한다.

김 리더는 “자동차 운전자가 자동차 원리를 알고 운전하면 자동차의 수명도 오래가고 교통사고가 나도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설비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계정비산업기사 자격증 획득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격증을 따면 전기, 유압 등의 설비 6계통을 모두 마스터하는 셈이다. 평균 140시간을 공부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144명에 불과하던 자격증 취득자는 2008년 2406명으로 급증했다. 현장직원의 40%가 자격증을 가진 셈이다. 올해는 취득자 비율을 90%까지 높일 계획이다. 김 리더의 말이다.

“강제로 시켜서 하기보다 스스로 필요성을 알고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요. QSS 마스터 50명은 의무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게 했어요. 그리고 일반직원으로 확대한 것이지요. 또 부하직원한테만 공부하라고 하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공장장도 공부합니다.” 자격증을 따면 회사가 50만원과 꽃, 와인을 선물로 준다. 자발적으로 공부하게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감산 결정에 학습 분위기도 시들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산조업 동안 학습에 매진하겠다는 분위기다. 회사 측은 현장직원뿐 아니라 각 팀 단위로 집중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토론 문화 활발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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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포스코의 혁신활동에서 주목할 활동이 있다. 바로 학습동아리(Community of Practice) 활동이다. 학습동아리는 조직 구성원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지식을 창출,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공동체를 말한다.

김영주 QSS 마스터는 학습동아리를 “회사 목표를 함께 이루고 일, 혁신, 학습을 일체화하기 위한 놀이마당”이라고 소개했다. 재질시험과의 학습동아리 사이트를 보니 일반 온라인 커뮤니티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인터넷에서 ‘퍼 온’ 게시물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QSS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토론하고 평가하는 장임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다. 학습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QSS 활동뿐 아니라 일반 업무까지 이곳에서 의논하게 돼 이제 학습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일하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학습동아리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온라인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안건은 오프라인 토론으로 옮겨 결정하기 때문이다. 학습동아리는 과 단위로 운영한다. 외주사 학습동아리를 합치면 362개다. 학습동아리를 운영하고 난 뒤 의견 제안 건수가 2007년 16만3032건에서 2008년 21만1708건으로 늘었다.

김 마스터는 “처음에는 동아리별로 활동 정도에 따라 점수도 매겼지만 이제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활발하게 운영된다”고 말했다. 김호신 혁신지원그룹 팀 리더는 “포스코는 혁신활동을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 대응력을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활동으로 위기를 버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리 위기에 대비해 온 포스코는 2008년 매출액 30조6420억원(전년 대비 38% 증가), 영업이익 6조5400억원(52% 증가)을 달성했다. 또 저렴한 원료사용기술 개발, 설비 재활용 등 원가절감 노력으로 7382억원을 절감했다. 2009년 원가절감 목표액은 9584억원이다. 포스코는 지난 1월 열린 CEO 포럼에서 ‘생존’을 넘어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혁신활동을 벌여온 40년 역사의 포스코는 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만들 전환기에 들어섰다.

‘공감’과 ‘스킨십’이 성공 키워드
혁신활동이 자리 잡기까지…
“어떻습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좀….”

한 달 후,

“어떻습니까.”

“예, 좋습니다.”

2007년 광양제철소에서 첫 여성 공장장이 탄생할 때 일이다. 허남석 광양제철소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떤 일을 추진하더라도 직원들이 완전히 공감할 때까지 기다렸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진정한 행동으로 우러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1999년 민영화를 앞두고 전사적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프로세스 혁신(PI·Process Innovation) 활동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2년부터 3년여 동안 일과 혁신이 완전히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원인은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데 있었다. 2006년 2월 새로 부임한 허 소장은 직원들이 위기의식이 없다고 판단하고 위기 설파에 나섰다. 상사와 부하직원 간 소통이 우선이었다. 주 5회, 아침 7시면 팀장급 직원들은 허 소장이 연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혁신활동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3분 스피치’를 해야 했다.

허 소장은 중식간담회, 1박2일 워크숍 등을 이용해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직원들과 스킨십을 시도했다고 한다. 2006년 7월 ‘글로벌 NO.1 자동차 강판 전문제철소가 되자’는 비전을 선포했을 때 직원들 마음속에 열정이 자리 잡았다. 한 팀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비전 선포가 포스코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직원은 물론 직원 가족, 지역주민까지 불러놓고 설명회를 여러 번 개최했어요. 시내에 다니는 택시기사도 광양제철소 비전을 다 알 정도였지요.”

직원 한 명 한 명이 회사의 비전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 포스코는 본격적으로 QSS(Quick Six Sigma) 활동과 6시그마 활동을 큰 축으로 한 혁신활동에 주력했다. QSS는 복잡한 통계지식을 요하는 6시그마를 현장직원이 쉽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6시그마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제품이나 서비스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활동의 핵심은 일, 혁신, 학습의 일체화를 통한 고성과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선포한 비전은 지난해 12월 일본 도요타에 강판을 공급하면서 계획대로 완성됐다. 현재 광양제철소는 2011년까지 이룰 ‘꿈의 제철소’라는 비전을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직원들은 칭기즈칸의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나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일한다.
철강을 넘어 친환경 기술로
포스코의 힘, 기술력
포스코가 창사 이래 불황기를 막론하고 한 차례의 적자도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기술개발 때문이었다. 국내 일관제철소 기술이 전무했던 1970년대 조업 초기 일본 등 해외에서 이전 받은 기술을 개량화하고 고도화해 조업기술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선진 철강사들이 후발 철강사들을 견제하며 기술 이전을 피하자 자주기술개발의 필요성을 깨달은 포스코는 1977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1986년과 1987년 포항공대(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해 조업생산성과 원가경쟁력 확보는 물론 자체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계속 노력했다.

1989년 매출액 대비 0.94%였던 연구개발 투자비도 지속 증가해 1990년대 중반 2% 수준까지 높아졌으며 현재 약 1.5%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결과 포스코는 2007년 5월 세계적으로 풍부하며 저렴한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대량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파이넥스 공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철강 기술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넥스 공법은 철광석이나 유연탄 등 원료를 별도 공장에서 사전 가공해 사용하는 용광로 공법과 달리 자연상태 가루 모양의 철광석과 일반탄을 바로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다. 따라서 원료가공 공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물질을 최소화하고 저렴한 원료사용과 원료가공비, 가공설비 투자비 절감으로 제조원가를 용광로 공법 대비 85%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환경친화적인 동시에 경제적인 공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용광로 공법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굴지의 철강업체들이 도전했지만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100년 넘는 제철역사의 후발주자인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포스코는 이로 인해 세계 철강제조기술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 2006년에는 쇳물에서 직접 두께 1∼3㎜의 열연코일을 제조하는 신주조기술인 스트립캐스팅 상용화 기술 개발을 위한 데모 플랜트를 준공했다.

스트립캐스팅 기술은 열간 압연 공정의 대부분을 생략함에 따라 설비 투자비 및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고, 열연부하가 큰 강종에 대해서도 열연 두께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같은 해 포스코는 열연공장에서 조압연을 마친 전후 바(Bar)를 접합해 연속적으로 압연하는 공정인 열연 연연속 압연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포스코의 기술개발은 철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차세대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포스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그린 에너지. 이 중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가 연료전지 사업이다. 포스코는 2003년부터 RIST, 포스텍 등과 함께 발전용 연료전지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또 발전 전문 자회사인 포스코파워를 통해 2005년 4월부터 1년간 미국 에너지회사인 FCE의 발전용 연료전지를 서울 탄천하수처리장과 광주 조선대 병원, RIST 등 3곳에 설치해 사업성을 검증했다. 2007년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남동발전에 상업용 발전용 연료전지 1기를 보급했다. 포스코는 이런 기술력을 기반으로 내년 말까지 1,2단계에 걸쳐 100㎿ 규모의 세계 최대 발전용 연료전지 생산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포항 영일만 배후산업단지에 연산 50㎿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상용화 공장을 준공했다. 태양광 발전사업도 빼놓을 수 없는 포스코의 역점 사업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포항과 광양 사업장 옥상에 1㎿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연간 2500㎽h의 전력 생산과 연간 1600t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하수와 생활 폐기물을 발전용 연료로 재활용하는 ‘친환경 연료화’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SBS TV

'1분을 못버티고...' 축구대표팀 허탈한 무승부

기사입력 2006-09-03 21:21 기사원문보기

워낭소리 “흥행수익10%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연초 독립영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또 하나의 훈훈한 소식을 전했다. ‘워낭소리’(감독 이충렬)의 제작사가 영화의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이삼순 할머니 부부를 위해 흥행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제작과 개봉이 무산될 뻔한 위기와 시련을 겪고 어렵게 일군 성공으로 시름깊은 한국영화에 희망을 가져다준데 이어, ‘나눔’까지 실천하겠다고 해 1억여원짜리 ‘작은 영화’가 더욱 큰 빛을 발하게 됐다. 흥행에 ‘쪽박’을 차도, ‘대박’을 터뜨려도 늘 아옹다옹 뒤끝이 좋지 않고 법정다툼이 비일비재한 영화계에서 독립영화의 ‘작은 실천’이 작품만큼이나 따뜻한 사연을 만들어냈다.

그 주인공은 제작사 스튜디오 느림보 대표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고영재씨다. 그는 11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자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흥행수익의 10%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기부 방식에 대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두 내외분과 가족들이 협의해 결정이 나면 따르겠다”고 했다.

이는 상업, 독립영화계를 통틀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일이다. 기획사와 영화사가 신경전끝에 톱스타의 출연료로 정해지는 러닝 개런티조차도 2~3%를 넘지 않는 게 보통. 그마저도 줬네 안 줬네 하며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심심치 않은 게 산업화 이후 한국영화계의 한 풍경이었다. 계약이나 의무사항도 아닌 일종의 사례비를 흥행수익의 10%만큼 준다는 건 그만큼 대단한 일로 영화계에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영화의 흥행에는 이충렬 감독과 고영재 프로듀서의 ’악전고투’가 있었기에 이들의 결단은 더욱 의미가 깊다. 이 감독이 2000년경부터 기획하고 2005년부터 촬영에 들어가 2007년 완성한 ‘워낭소리’는 방송사에서 번번히 퇴짜를 맞고 빚으로만 남을 운명이었다. 이 때 고영재 대표가 합류, 개인 돈을 투자한 것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후반작업과 개봉ㆍ마케팅작업을 진행, 애초 기획했던 방송다큐가 아닌 극장용영화로 선을 보일 수 있었다. 고영재 대표는 이미 홋카이도 조선 학교를 다룬 휴먼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제작, 배급하며 11만 4000명을 동원했으며 ‘워낭소리’까지 연이어 히트시키며 ‘독립영화계 마이다스의 손’이 됐다. 그는 전작으로 얻은 수익의 상당부분도 각종 단체에 기부했다.

한편, ‘워낭소리’는 지난 9일까지 30만 5000명을 돌파하며 흥행행진을 계속했다. 이충렬 감독은 “제작사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촬영지에 아직도 취재 및 방문이 이어지고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심기가 불편하시다”며 “제발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이 감독과 고 대표가 참석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로 11일 열린 독립영화 지원 대책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양익준, 문정현, 박정숙 , 안해룡 등 감독들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폐지한 독립영화 개봉 및 마케팅 지원 정책 부활과 실질적인 제작 지원의 확대, 디지털 상영 지원 대책 등을 요구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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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희 심판, 김연아 관전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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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 2009/02/11 11:37 | 조회 23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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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세계최고의 선수가 돼야 하는데, 최고의 선수는 다 잘해야 한다. (트리플) 루프가 약하다고 빼서는 안된다. 어렵다고 자꾸 빼면 최고 선수가 될 수 없다. 스포츠 정신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지희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가 지난 8일 한 언론에 기고한 글과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이글은 이 심판이사가 김연아의 4대륙 대회 경기를 지켜본 후 관전평을 쓴 것. 하지만 지난 10일 김연아 소속사인 IB스포츠에서 "김연아는 앞으로 본인이 잘 하지 못하는 트리플 루프보다, 잘하는 더블 악셀을 중점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히자 이와 맞물려 이 심판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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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희 대한빙상연맹 심판이사ⓒ미디어 다음

그는 글을 통해 김연아를 격려하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일부 언론에서 이를 다루면서 네티즌들이 이 심판이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다음 아고라에는 필명 춘천미남이 "이지희가 국제심판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심판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김연아 우승 덕분"이라며 "자국 선수의 보호나 힘이 되는 말보다는 일본의 대변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필명 북극곰은 "전략상 트리플루프를 안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어떻게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냐"며 "왜 연아를 압박해서 부담감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심판을 비판했다.

한편 이지희 심판이사는 이 매체에 '또 어텐션 판정, 시즌 끝나고 고쳐야'의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에서 쇼트프로그램처럼 완벽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1등을 해서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김연아 선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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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기왕이면 ‘착한 초콜릿’을”



세이브더칠드런이 ‘착한 초콜릿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이트 화면 캡쳐
“여러분은 ‘착한 초콜릿’을 아시나요? 초콜릿에 착하고 나쁜 게 있나 하고 궁금하실 텐데요. 우리가 사 먹는 초콜릿의 달콤함 속에는 노예처럼 일하는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눈물과 한숨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기왕이면 윤리적으로 생산된 ‘착한 초콜릿’은 어떨까요?”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세계공정무역협회(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s International)의 인증을 받은 초콜릿에 관심을 가지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적인 아동인권단체로 한국에도 지부를 두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일부터 ‘코트디부아르를 돕는 착한 초콜릿’ 운동을 제기해 11일 현재 720 여 만 원을 모금했다. 인터넷 쇼핑몰Y사와 대기업 계열 마트와 쇼핑몰에서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판매 이벤트를 시작했다. 가격은 개당 2500원에서 5000원 선으로 일반 초콜릿에 비해선 비싼 편이다.

‘밸런타인 데이 특수’에 발 맞춰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공정무역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하루 종일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지만 정작 초콜릿 맛이 어떤지 모른다’는 어린이들의 사연은 다수의 누리꾼들을 울리며 호응을 얻고 있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그들이 생산한 물건에 대해 적정한 가격을 주고 거래하자고 주장한다.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생산자는 일반 중간 상인보다 30%정도 수익을 더 가져간다는 설명. 대신 이 생산자는 아동 노동이나 강제 노역을 해서는 안 되고 상품도 친환경적 방식으로 재배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공정무역협회가 검증한다.

공정무역은 초콜릿 외에도 커피, 축구공 등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정무역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4조원에 달한다.



공정무역의 중요성은 알려지지 않았던 초콜릿 등의 생산과정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의 70%는 코트디부아르나 가나와 같은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카카오 농장에서 재배한 말린 카카오 콩(카카오나무 열매의 씨)은 1,2차 중개상을 거쳐 카길, 네슬레, ADM, 허쉬 등 다국적 기업으로 팔려나간다. 이들은 카카오 콩을 가공해 카카오 버터나 카카오 파우더와 같은 초콜릿의 원료로 만든다. 국내 제과업계에선 이것을 사다가 설탕과 첨가물을 넣고 초콜릿 완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인 농부들에게 주어지는 돈은 많지 않다. 유럽 공정무역협회는 카카오 생산자들의 수익이 초콜릿 가격의 5%라면, 초콜릿 회사와 무역 조직이 얻는 수익은 그 14배인 7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초콜릿 가격이 1천원일 때 농부들의 수익은 20원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생산비를 줄이려 어린이들을 동원해 카카오 채취에 쓰는 일도 생겼다. 9살에서 12살가량의 아이들이 하루 10시간 씩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2002년 국제적도 농업기구에 따르면 서 아프리카에서 이런 아동은 약 28만 4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1만2500명은 지역 연고가 없어 다른 지역에서 팔려온 것으로 추정됐다. 아이들은 변변한 마스크도 없이 농약을 치고 잡초를 뽑고, 긴 칼을 들고 카카오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는 위험한 작업을 한다. 초콜릿 453g을 만들려면 고사리 손으로 카카오 열매 400개를 따야 한다. 농장에서 탈출한 아이들은자신의 키 보다 더 큰 카카오 자루를 날라야 했고 매질을 당했다는 실상을 외신에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05년 국제노동권리기금은 네슬레, 카길, ADM 3대 초콜릿 기업에 대해 아동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무역은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루트와는 다르게 이뤄진다. 대개 생산자 조합과 소비자 직거래의 형식을 띄는데, 공정무역 생산자는 국제공정무역협회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인증 마크를 받는다.

한국공정무역연합 박창순 대표는 “공정 무역에는 ‘최소 가격제’와 ‘사회적 프리미엄 환원’ 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며 “국제 시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자의 생활비가 보장되도록 가격을 정하고, 생산지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평균 10% 정도를 생산자 공동체에서 쓸 수 있도록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돈으로 생산자 조합은 학교를 짓고 우물을 판다”고 설명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60년 전에, 일본에선 1990년대부터 공정무역이 시작됐지만 한국은 걸음마 단계다.

공정 무역 운동은 커피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돼 스위스의 경우 맥도날드 전 매장이 ‘공정 무역 커피’만을 사용하고 영국에서는 1500여 종에 달하는 공정 무역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영국 대형 유통 업체인 세인즈베리는 공정 무역 바나나만을 취급한다. 네슬레 스타벅스 맥도날드도 공정 무역 운동에 앞 다퉈 동참하고 있다.

1996년 파키스탄의 아이들이 작은 손을 놀려 축구공을 꿰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엄청난 주각 폭락을 경험했던 나이키는 이후 하청업체에까지 일정 수준의 사회책임 경영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4년 두레 생협이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유기농 설탕을 사다가 들여왔고 2005년에는 한국YMCA가 동티모르 커피를 팔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아름다운가게가 네팔커피를 팔았다. 2007년에는 한국공정무역연합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초콜릿과 커피, 축구공을 들여왔다. 공정무역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올리브유, 의류, 수공예품 등 거래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업체가 공정무역 커피 원료를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D그룹 산하 유가공 업체는 최근 자사 유제품에 사용하는 커피 원료를 공정무역 커피로 쓸 것을 약속했다. 이 회사는 동티모르산 아라비카종 공정무역커피를 공급 받는다. 이 지역은 한국YMCA 전국연맹이 공정무역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곳이다. 사측에서는 “월 2톤 규모로 예상되는 커피 원료 전량을 공정무역커피로 사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500억원 규모의 국내 초콜릿 시장에서 공정무역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스타벅스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을 들여와 매장에서 팔고 있지만 이는 아직 소규모에 불과하다. 하이 카카오 초콜릿 열풍을 주도하며 국내 초콜릿 시장을 키운 L제과는 원료 수급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공정무역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초콜릿은 커피보다는 훨씬 복잡한 단계를 거쳐 들여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료를 현지에서 직접 들여오는 것이 아니고 2차 3차로 구매하기 때문에 기존의 계약관계도 있고 걸림돌이 많다. 아마도 국내 초콜릿 업체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을 만들기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찬순 대표는 “소비자들은 같은 값이면 친환경 국산을, 수입품에선 공정무역상품을 선택하기 되면 국내 업체들도 공정무역을 환산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빈곤국가에는 기부는 하는데, 공정무역에 대해선 인식이 부족해서 잘 안 되고 있다. 공정무역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부나 원조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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