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7조원 아일랜드 갑부 ‘마이티 퀸’의 이상한 파산

[중앙일보] 입력 2012.01.09 00:00 / 수정 2012.01.09 10:38

꼬리에 꼬리 무는 의혹

션 퀸
아일랜드 최고 갑부가 파생 금융상품으로 거액을 날리고 막대한 은행 빚까지 진다. 갑부가 파산 신청을 한 가운데, 그의 회사 자산관리 책임을 맡은 신임 CEO의 차량엔 폭발물이 터진다. 본사 건물에 느닷없이 불도저가 돌진한다. 그의 해외 자산 추적 과정에선 회사 주주 의결권이 노트북 한 대 값에 양도됐던 사실이 밝혀지는 등 희한한 일이 꼬리를 무는데….

 미스터리 금융소설 줄거리가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다. 주인공은 한때 60억 달러(약 7조원, 2008년 포브스 집계)의 부를 자랑했던 아일랜드의 전설적 자수성가 사업가 션 퀸(65).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마이티(Mighty·힘센) 퀸’이라고 불렸던 그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고 공식적으론 ‘무일푼’이 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7일(현지시간) 퀸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과 파산 뒷얘기를 전했다.

아일랜드 밸리콘넬에 있는 션 퀸 일가 저택의 조감도. 실내골프장과 수영장에 영화관도 갖춘 이 호화저택은 당초 퀸 부부 명의로 등록됐다가 지금은 다섯 자녀의 명의로 돌려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데일리메일 웹사이트]

 북아일랜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퀸은 28세이던 1975년 100파운드(약 18만원)를 빌려 채굴 사업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경제 호황과 맞물려 사업은 시멘트·호텔·부동산·보험 등으로 확장됐고, 퀸은 아일랜드 최고 부호로 떠올랐다. 14개국에 70여 회사를 거느렸고, 팰컨사의 전용 제트기까지 소유했다. 그러나 2007년 앵글로 아이리시 은행(이하 앵글로)의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2008년부터의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은행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끝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유화됐다. 퀸은 앵글로의 주가가 하락하는 동안에도 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투자규모를 늘리다가 결국 은행 측에 총 28억 유로의 빚을 졌다. 지난해 영국령 북아일랜드 법원을 통해 파산 절차를 밟을 당시 그의 손엔 “1만1000유로(약 1600만원)와 구식 메르세데스 자동차, 약간의 땅”(퀸 주장)만 남은 신세였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퀸에게서 돈을 떼이면 은행 손실이 고스란히 납세자에게 돌아갈 상황. 아이리시 은행 정리공사(IBRC·앵글로 은행의 법정관리주체)는 전 세계에 흩어진 퀸그룹의 자산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직화된 배후라도 있는양 물리적 방해가 번번이 일어났다. 자산을 압류하려고 하면 딱 그 가치만큼 담보를 설정했던 채권자가 등장했다. 우크라이나·인도 등에선 지방법원이 태클을 걸어왔다. 퀸이 절세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도 복잡한 구조로 인해 정리책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IBRC 측은 퀸이 5억 유로에 이르는 은닉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퀸의 자녀들은 “정부가 아버지를 희생양 삼아 금융위기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퀸이 다섯 자녀 명의로 된 호화저택에 살면서 사업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IBRC 측의 불신을 산다. 몇 주 전엔 퀸그룹 지주회사의 국제 자산을 퀸의 미성년 손자들에게 넘기려는 목적의 기밀문서가 발각되기도 했다. 퀸과 IBRC는 파산 선고의 유효성을 둘러싸고 조만간 다시 법정에서 맞붙는다. “도시개발과 금융신화는 어디 가고 냉전시대 이중 스파이 소설 같은 이야기만 남았다.” 퀸그룹 몰락 스토리를 추적해온 더블린대 경제학자 브렌던 윌리엄스 교수의 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다음은 중앙통신이 전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보도전문.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수행에서 전환적국면이 열리고있으며 우리 혁명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승장구하고있는 력사적인 시기에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며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가장 큰 슬픔이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장구한 기간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조국과 인민,시대와 력사앞에 영구불멸할 혁명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위인이 지닐수 있는 품격과 자질을 최상의 높이에서 완벽하게 체현하시고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로 혁명과 건설을 백전백승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걸출한 사상리론가,희세의 정치원로이시고 불세출의 선군령장이시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숭고한 헌신으로 혁명투쟁의 전로정을 수놓아 오신 절세의 애국자,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는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내세우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가장 친근한 동지,가장 충직한 전우가 되시여 혁명과 건설을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줄기차게 전진시켜오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와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선군사상을 전면적으로 심화발전시키시고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빛내이시였으며 백두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순결하게 계승발전시키시여 조선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놓으시였다. 혁명과 건설의 영재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온 사회 주체사상화의 기치높이 우리 당과 군대,국가를 김일성동지의 당과 군대,국가로 강화발전시키시였으며 민족의 존엄과 국력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시고 반만년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륭성번영의 대전성기를 펼치시였다. 혁명적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류정치사가 알지 못하는 수령영생위업실현의 위대한 귀감을 창조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존함과 불멸의 혁명생애와 업적이 주체조선의 무궁한 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을 뿌리도록 하시였다.

정치의 대가이시며 천출명장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민족 최대의 국상,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공세와 혹심한 자연재해속에서 선군정치로 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였으며 우리 조국을 일심단결된 불패의 정치사상강국으로,그 어떤 원쑤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대국건설의 웅대한 목표를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전인민적인 총진군을 진두에서 이끄시여 온나라에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하시고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대혁신,대비약이 일어나게 하시였다. 민족의 어버이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 통일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길로이끌어오시였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 사회주의와 정의의 위대한 수호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제자주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세계의 평화와 안정,인민들사이의 친선단결을 위하여 정력적인 대외활동을 벌리시여 우리 나라의 국제적지위와 권위를 비상히 높이시고 인류자주위업수행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장구한 혁명령도의 전기간 인민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며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초강도의 현지지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과로로 하여 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전생애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절세의 애국자의 한생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처럼 바라시던 강성국가건설위업의 승리와 조국통일,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보시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서거하시였으나 우리 혁명이 대를 이어 줄기차게 전진해나갈수 있는 강력한 정치군사적지반을 다져놓으시고 우리 조국과 민족만대의 무궁번영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여주시였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동지께서 서계신다. 김정은동지의 령도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시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갈 수 있는 결정적담보로 된다. 우리에게는 당의 위업을 앞장에서 받들어 나가는 무적필승의 백두산혁명강군이 있고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군민대단결이 있으며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와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있다.

우리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불변의 신념과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시며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선군혁명의 길에서 한치의 양보도,한치의 드팀도 없을것이며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천추만대에 빛내여나갈것이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인민들은 존경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며 더욱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한다. 우리는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나라의 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튼튼히 지키며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함남의 불길을 온 나라에 세차게 지펴올려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여야 한다.

 

우리는 조국통일3대헌장과 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기어이 실현할것이다. 우리 당과 인민은 자주,평화,친선의 리념에 기초하여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하며 지배와 예속,침략과 전쟁이 없는 자주적이며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것이다. 우리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조성된 정세는 준엄하지만 위대한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존함과 자애로운 영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있을 것이며 장군님의 성스러운 혁명실록과 불멸의 혁명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드라마보다 극적인 스티브 잡스의 일생

[연합] 입력 2011.10.06 09:26 / 수정 2011.10.06 14:19

미혼모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집에 입양..대학도 중퇴
창업한 회사서 쫓겨나고 긴 암투병까지..'굴곡의 인생'
어려움도 신념 잃지 않고 성공신화...죽음까지 혁신도구로 이용

"곧 죽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좌절과 실패 등은 모두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까지 혁신의 도구로 이용했던 글로벌 IT업계의 위대한 구루(스승.거장) 스티브 잡스.

그는 애플과 애플 제품에 대해서는 현란한 미사여구와 화려한 영상까지 활용해 '프레젠테이션(PT) 달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그러던 그가 2005년 미국 서부 명문대학인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불우했던 어린 시절, 암투병, 좌절과 성공 등에 대해 상세하게 털어놓아 화제가 됐다.

잡스는 1955년 2월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로 입양됐다. 잡스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났으나 심슨 가족이 잔달리가 시리아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해 미혼모인 상태로 잡스를 낳았다.

생모인 조앤 심슨은 입양 당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잡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하다가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입양을 허락했다. 잡스는 학창시절 내내 '사고뭉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다행스럽게도 입양 부모인 잡스 부부는 그를 사랑으로 감싼 것으로 전해졌다.

잡스는 명문 리드대학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중퇴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친구의 방바닥에서 자고 먹을 것을 위해 콜라병을 반납해 5센트를 모았으며 한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으려고 7마일(11.3㎞)을 걸어가기도 했다.

잡스는 1976년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입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후 이듬해 개인용PC 애플Ⅱ를 내놓아 성공을 맛보지만 30세 때인 19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과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껴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또다시 일어섰으며, 경영난을 겪고 있던 애플로 복귀해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잡스는 이 같은 외적인 성공에도 불구,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치열하고 긴 투병생활에 시달려야 했다.

잡스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입양되는 등 복잡한 가정사, 대학을 중퇴하고 방황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데다 암 선고를 받고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을 중퇴한 후 배운 서체교육이 이후 맥컴퓨터의 서체에 응용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지적했으며, 애플에서 축출된 것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꾼 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최고의 사건"이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그는 암선고를 받은 후 죽음에 직면한 후에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신화를 일궈냈다.

그는 성공과 좌절이 교차하는 '롤로코스터'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스탠퍼드대 연설 말미에 밝혔듯이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한 삶을 살다 떠났다. (연합뉴스)


 

17평 아파트 거주·자전거 출퇴근·이코노미석…


미국 금융소프트웨어회사인 인튜이트의 최고경영자(CEO) 아론 패처(30)는 2년 전 자신이 창업한 개인재정상담 사이트 민트닷컴을 1억 7000만 달러(약 1790억원)에 매각해 돈방석에 올랐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청년 갑부지만 사는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호화 주택에 고급가구, 최첨단 가전제품 대신 그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팔로 알토 지역에서 600평방피트(약 56㎡) 크기의 방 한개짜리 아파트에 살며 낡은 소파와 TV를 사용한다. 물려받은 39년 된 갈색 가죽구두를 애지중지 아끼고, 12달러짜리 이발소를 애용한다.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27)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아파트에서 산다.

새로 창업한 회사인 아사나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비행기는 일반석을 탄다. 반면 자신이 만든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 하버드대 동창으로 페이스북을 함께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 마찬가지로 생전에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부(富)는 큰 집이나 번쩍이는 차보다 더 가치있게 쓰여야 한다."(패처) "명품을 지닌 나를 상상해 봤지만 이것들로 인해 삶이 더 의미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모스코비츠)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젊은 기업가들이 신분 상승의 전통적 상징인 스포츠카나 요트, 호화저택 등 물질적 풍요 대신 사회공헌 등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도 자신이 보유한 재산에 비하면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팔로 알토에 700만 달러짜리 주택을 처음 구입하기 전까지는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지난해 공립학교 발전 기부금으로 1억 달러를 선뜻 내놓은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미니멀리즘'과 '욕망 자제'가 관심사로 등록돼 있다.

뉴욕대에서 인터넷 기업가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앨리스 머위크 마이크로소프트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들은 신분상승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찾는 방식이 다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은 훌륭한 외모와 눈에 보이는 부, 멋진 몸매를 가꾸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집단이 아니다."라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의 척도는 무엇을 샀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업을 창업했는가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청년 갑부들이 과소비를 피하는 또 다른 이유로 에드워드 울프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재산의 증가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신들의 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라 조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년 5천만원으로 위험처한 국민 구하라?

지진, 테러, 해적, 정변, 사건사고 느는데
국민 긴급구난비는 연 1억8천만원
 
 

매년 1000만 명이 해외로 나가고, 700만 명 가까운 재외국민이 세계 200여 나라에서 활동한다. 이런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뛰는 사람들이 있다. ‘영웅’과 같은 '초능력'도, '총 한 자루' 없으면서도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다. 외교통상부 내에서 가장 힘든 부서로 꼽히는 재외동포영사국 직원들이다.

위기에 빠진 국민 구하는 부서 예산이 연 5,000만 원

이런 재외동포영사국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 백주현 국장을 만났다. 백주현 국장은 2010년부터 이 자리를 맡았다. 그는 ‘외교부 사상 큰 일을 가장 많이 치른 고위 공무원’으로 꼽힌다.

실제 그가 부임 후 있었던 사건으로는 아이티 지진(2010년 1월 13일), 칠레 지진(2010년 2월 27일), 뉴질랜드 지진(2011년 2월 23일), 일본 대지진(2011년 3월 11일) 등 자연재해와 과테말라 인질사건(2010년 1월 18일), 온두라스 한지수 씨 사건(2010년 10월 16일 해결) 같은 재외국민이 얽힌 범죄, 삼호드림호(2010년 4월 4일), 금미 305호(2010년 10월 9일), 삼호주얼리호(2011년 1월 15일), 한진텐진호(2011년 4월 21일), 싱가포르 선적 MT제미니호(2011년 4월 30일) 등의 해적 피랍 사건 등에서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혹은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마다 그가 지휘하는 재외동포영사국은 ‘비상’에 돌입했다. ‘정시출근 정시 퇴근’이라는 말은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공무원 사정’이다. 피를 말리는 긴장 속에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들이지만, 잘 모르는 국민들은 ‘외교관은 어쨌거나 외교관’이라는 선입견에 싸잡아 비난하기만 한다.

이런 선입견은 삼호드림호 사건, 금미 305호 사건, 재외국민 긴급철수작전을 폈을 때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지난 1월부터 한 달 동안 이뤄진 이집트의 우리 국민 철수 작전 때 ‘외교부가 밥도 제 때 챙겨주지 않아 굶었다’ ‘영사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는 말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정부 내에서마저 그들을 비판하는 바람에마음 고생이 심했다. 이들의 임무가 갖는 기본 속성이 '잘해야 본전'이란 점을 감안한다하라도, 재외국민보호 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냉정하게 따져 볼 여지는 존재한다.   

'욕 먹어도 목숨 걸어야 하는' 재외동포영사국은 외교부 제2차관 지휘를 받는다. 재외동포과, 재외국민보호과, 여권과, 영사서비스과로 구성돼 있다.

백주현 재외동포영사국 국장은 “2004년 김선일 씨 피랍살해 사건,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이후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제도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이들은 마음놓고 활동을 못 한다. '황당한 수준'의 예산 때문이다. 실제 위기에 처한 재외국민을 구출하는 '신속대응팀'의 연간 예산이 단 5,000 만원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한 사람의 4개월치 세비 수준도 되지 않는다.

외교부 신속대응팀은 재외국민보호과에서 훈련받은 인력들로 보통 해당지역 근무 경험자, 해당지역 언어 능통자 등 10여 명으로 꾸려져 상시 대기한다. 이들 외에도 외교부 전체에 100 여 명의 전문가 풀(Pool)을 구성한 뒤,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 전문가를 차출해 긴급투입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신속대응팀은 인력과 예산, 기본 장비 부족으로 늘 어려움에 봉착한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 5,000만원은 한 순간에 소진된다. 올해 이집트, 리비아 사태, 일본 동북부 대지진에 사용된 예산이 이미 4억 원. 결국 다른 부서의 예산을 전용할 수밖에 없다.

백주현 국장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올해가 아무리 예외적인 상황이 많은 해라고 해도 몇 번 해외 출동하면 수 억 원이 넘는 돈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1년 예산이 5,000만 원이니 정말 난감하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살인범으로 몰려 큰 어려움을 겪었던 온두라스의 한지수 씨 경우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했거나 도저히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사람을 귀국시키는데 사용하는 ‘긴급 구난비’라는 게 있습니다. 그 예산이 연 1억 8,000만 원입니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 또한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간 피랍 사건 이후 그나마 늘린 예산이란다

재외국민보호는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백 국장은 지적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그 전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죠. 그걸 정부가 모두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백 국장은 “21세기 들어서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범죄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게 테러, 납치, 해적 등인데 우리 국민들이 항상 이런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최근들어서는 지진, 해일, 토네이도와 같은 자연재해에도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문제로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우리 국민도 언제든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조하고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백 국장은 “그나마 외교부는 김선일 사건, 아프간 피랍 사건 등을 겪으면서 신속대응팀 신설, 신속해외송금지원제도, 여행경보제도 등을 통해 체계를 갖췄다”고 답했다.

재외국민 보호의 시작은 ‘사건사고 예방’

“저희 국 직원들은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에 사건사고가 보도되는 건 우리 국민이 이미 피해를 봤다는 말이 됩니다. 이걸 미리 막아야죠.”

재외동포영사국은 이런 ‘예방’을 위해 대륙별로 돌면서 각국에 주재 중인 ‘사건-사고 담당 영사’들과 주기적으로 회의를 갖는다고 한다. 이때 현지에서 우리 국민이 피해자인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현지 정부와 협의할 것인지, 피해자를 구조할 때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노하우를 전수한다.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데 필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홍보입니다. 해외에 도착하자마자 로밍한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손끝에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연락처가 있 어야 한다는 게 저희들 생각입니다.”

재외동포영사국은 이를 위해 지하철, 공항의 카트 등에 부착하는 일반 광고 외에도 항공기보딩패스(Boarding Pass) 뒷면에도 영사 콜센터 전화번호를 표시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영사콜센터에 전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백주현 국장은 "400만 부가 발행될 때까지 홍보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보대사’도 있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해외안전여행 서포터스’가 그 주인공. ‘해안서’라고도 한다.

작년에는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서 30명을 뽑았다. 그런데 학생과 해외여행객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 올해에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40명, 충청 6명, 영남 7명, 호남 7명 등 모두 60명의 ‘해안서’를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해안서’ 학생들은 스스로 해외 안전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찾고, 안전여행 정보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고민한다. SNS는 물론 학교 축제 등에서 해외 안전여행 정보를 꾸준히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백주현 국장은 ‘해안서’들에게 ‘창의적인 홍보’를 주문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스펙 쌓기를 위해 지원한 걸 안다. 그것에다 앞으로 세계에서 활동하려면 해외여행 안전이 필수라는 점을 하나 더 배워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꼭 한다.

해외에서 사건사고 당하는 국민, 연간 7000여 명

백주현 국장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사건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연간 7,000여 명이 해외에서 각종 사건사고를 당한다고 전했다. 지난 2년 동안 사망자 발생 사건은 과테말라에서의 인질극 사건 단 한 건일 만큼 심각한 사건사고가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란다. 

“우리 정부의 신속대응능력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보니 사망사고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주재국 영사들은 주말이든 휴일이든, 위험하든 않든, 즉각 출동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지요.”

‘MT제미니호’사건 때도 이런 신속대응은 빛을 발했다. 지난 달 30일 싱가포르 국적 화물선이 토요일 오후 1시 30분 피랍됐다는 소식이 청해부대를 통해 들어왔다. 청해부대는 연합함대 체계를 통해 바로 정보를 취합, 외교부 신속대응팀을 통해 1시간 내 駐싱가포르 대사관으로 상황을 연락했다. 주싱가포르 대사관 측은 해당 선사와 싱가포르 외무성과 바로 접촉했다.

“대부분의 공관은 주말개념이 없이 사건처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재외공관 영사들에게 강조하는 첫 마디가 우리가 가장 빨리 우리 국민을 구출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는 것입니다. ‘MT제미니호’ 사건과 관련, 주싱가포르 대사가 싱가포르 외무성과 초기에 긴밀히 접촉했습니다. 이런 게 생각보다 굉장히 효과가 있습니다. 이를 외교부에서는 ‘초기 상황 장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영사나 대사가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에 따라 교민들의 피해가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 ‘예산’이 문제가 된다.

중국 등 재외국민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에는 보통 경찰청 인력이 파견돼 있다. 이들이 현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인맥을 구축해야 한다. 절차가 제도화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지만, '제도'보다 '관계'가 중요한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평소 '관계'를 형성해 놓지 못하면, 막상 일이 벌어졌을 때 애를 먹게 된다.

그런데 ‘예산’이 없다보니 대부분의 파견요원들이 매월 수백 달러 이상의 ‘적자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민원수당'을 배정해 줄 수 있는 지를 예산부처에게 요청해봤지만, ‘택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영사 서비스과, 청년층 위해 워킹 홀리데이 인원 10만 명으로

재외동포영사국 중에서도 ‘표시 나지 않으면서 일은 가장 많은 부서’도 있다. 바로 영사서비스과다. 영사서비스과에서는 비자 문제와 체류허가 문제를 다룬다.

“비자를 얼마나 쉽게 받느냐, 체류 허가를 계속 갱신하는 게 쉬우냐 하는 것들이 모두 국민들의 돈과 직결됩니다. 특히 기업인들은 출입국이 빈번하기 때문에 복수비자를 받아야 하죠.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국가와 쉬지 않고 교섭을 해야 합니다. 상호 운전면허 허용 또한 우리 국민의 해외활동이 늘어나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현재는 美 메릴랜드州, 버지니아州하고 교섭 중입니다. 앞으로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

2011년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인 것 중에는 ‘워킹 홀리데이 인원 10만 명 확대’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청년취업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해외에서 경험도 쌓고 외국어도 배울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로 나가는 것도 방법이지요. 현재 5만 명인 워킹 홀리데이 인원을 올해 안에 10만 명으로 늘리는 것도 목표입니다.”

백주현 국장은 이 외에도 위조방지를 위한 전자여권 발행, 한 창구에서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민원서비스’ 등으로 ‘고객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사콜센터는 외교부를 대표하는 서비스다. 영사 콜센터는 외주로 운영된다. 평소 근무인원은 20여 명. 하지만 긴급 상황 때는 인원이 늘어난다. 일본 대지진 당시 20명을 더 늘여 24시간 체제로 운영했다. 그 덕에 보름 만에 우리 국민들의 생사확인이 가능했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 지진 소식을 접한 뒤 혹시나 사망 국민 수가 수백 명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0명 미만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들께서는 답답해했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상당히 빠르게 확인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영사콜센터는 정부 부처의 콜센터 중 만족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2년 재외국민선거, 예산-인원 문제와 함께 가장 고민

2012년부터 실시하는 재외국민참여선거와 재외국민보호 예산 및 인원 확충은 재외동포영사국에게는 '난제 중의 난제'다.

재외국민참여선거를 위해 현재 선관위 직원 55명이 해외에 나가 영사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런데 난제가 산적해있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사법권이 없어 선거사범을 잡을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중국 등은 재외국민선거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교민들이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두 차례(투표인 등록과 투표) 대사관을 찾아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게 아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인데도 여의도는 무관심하다고 전했다.

“재외국민보호에 더해 재외국민투표에 이르기까지 이런 광범위한 업무를 처리하는데 인원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실제 지난 1월부터 한 달 동안 이집트에서 국민들을 철수시키느라 현지에 '신속대응팀'을 긴급출동시키는 한편 주변 공관 영사들까지 총동원했음에도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국민들의 '항의'만 들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네티즌들은 이들을 '골프나 치러 다니는 외교관'으로 묘사하며 비판했다. 이들 모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엄청 속앓이를 했다.

이런 재외동포영사국의 활동과 속사정을 아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일부 국회의원들은 "빨리 재외국민보호법을 입법하라"고 권할 정도다.

하지만 직원들은 당장 우리 국민을 보호할 인력과 예산이 더 급하다고 외친다. 현재 국 전체의 연간 예산은 30억 원 가량, 신속대응예산은 기본 5,000 만원에, 이것저것 끌어다 써도 연간 2억2,000만 원에 불과하다.

인력은 '만성부족'이다. 국 전체 인원이라고 해봤자 20여 명 남짓이다. 특히 해외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경험 있는 영사 인력들의 확보가 시급하다.

백국장은 경찰 인력 확충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저희 생각에는 경찰 인력 중에서 영사를 더 뽑았으면 합니다. 현재 47개국에 경찰 출신 영사들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역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노하우가 뛰어납니다. 경찰 중에는 특수어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저희 업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외교부의 영입 노력으로 외교관이 된 경찰이 20명을 넘는다. 하지만 이런 유능한 경찰들을 데려오는 데에 또 ‘돈 문제’가 걸린다. 백 국장은 ‘대통령의 의지’에 기대를 걸었다.

“대통령께서 올해에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재외국민보호예산은 확실하게 반영해 주시리라 봅니다. 저희가 무조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남는 예산은 반납하면 됩니다.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신속대응 예산이 남아 불용예산으로 반납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최소한 '세계 10대 교역국'이라는 나라가 국민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돈이 없어 쩔쩔매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 국장은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산과 인력은 확보해 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공관이라는 이집트 대사관 인력이 불과 9명이다. 소말리아 해적들과 맞서야 하는 케냐 공관의 인원은 그보다 훨씬 적다. 백 국장은 “재외국민 보호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500~600여명의 전문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직원들이 적은 예산과 인력 때문에 몸을 혹사하다보니 심각한 질병을 얻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실제 필리핀에 파견됐던 경찰 출신 영사 한 명은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다 식물인간이 되어 귀국했다고 한다. 필리핀은 최근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처럼 국제범죄의 천국이면서 한국 범죄자들의 도피처이기도 하다. 필리핀 남부 지역에는 반군과 연계한 알 카에다 조직 '아부 샤아프'가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예산-인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손을 놓을 수는 없죠. 올해에는 기업들과 함께 위기대응훈련을 실시하려 합니다. 일방적인 ‘대국민 서비스’가 아니라 함께 소통하며 훈련을 하다보면 보다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골프나 치러 다닌다는 귀족 외교관’이라는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DNA'부터 다른, 재외동포영사국 '머슴 외교관들' 덕분에 700만 재외국민과 1000만 해외여행객이 그나마 무사한 모양이다.

 

'십자가 사망' 김씨 "예수가 되고 싶다"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6시경 경북 문경시 농암면에 위치한 한 채석장에서 김모(58·택시기사)씨가 십자가 모양의 나무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인근을 지나던 동네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오래 전에 문을 닫아 인적이 드문 채석장으로, 발견 당시 김 씨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오른쪽 복부에는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사건 현장에서 몸을 때리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채찍과 함께 거울·탁상시계 등이 발견돼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기독교 기념일인 부활절을 맞아 예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한 사이코패스나 광신도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관련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숨지기 전 '광적인 종교관'을 털어놨다는 한 전직 목사의 진술을 확보, 김씨가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십자가 시신' "내가 바로 예수 아닌가"

 


경북 문경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김모(58)씨가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A씨는 4일 경찰에 "신앙 상담을 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친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 집에 와서 쉬었다가 가도록 했는데 2~3년 전에 카페 회원이던 김씨가 한 번 찾아왔었다"며 "김씨는 당시 얘기를 나누던 중 '신체는 달라도 삶이 그리스도의 정신이라면 내가 예수가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전직 목사로 현재 양봉업을 하는 A씨는 "그런 얘기를 하기에 맞지 않다고 대답한 후 가정사 등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며 "신앙과 관련된 얘기를 했으나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으며, 뭐라고 할 수도 없어 그냥 내버려 뒀다"고 설명했다.

A씨는 그 이후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지난 1일 다른 2명의 토종벌 업자와 함께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한 폐채석장에 토종벌을 찾으러 갔다가 김씨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A씨는 최초 발견자로서 다른 두 명과 함께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A씨는 "사체 발견 당시에는 김씨인 줄 몰랐다.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이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며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전에 우리 집에 왔던 김씨인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그는 "미리 실행계획을 짠 점이나 시신이 발견된 형태로 봐서 김씨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숨진 김씨가 기거한 천막에서 십자가 제작방법과 '가슴 묶고, 손 박고' 등의 메모가 발견되고, 십자가 앞에 대형 거울이 있었던 점은 자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경찰은 주씨가 지난 2002년부터 인터넷 카페를 여러 개 개설해 활동하면서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다' 등의 글을 1000여건 이상 올렸다고 말했다.
한편 주씨는 "김씨가 평소 '예수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진짜로 예수처럼 저럴 줄은 몰랐다"고 언론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숨진 김씨가 평소 광신도적 경향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자살했거나, 종교적 의식 등으로 타살됐을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십자가 죽음’ 이렇다면 자살일 수 있다!
지난 1일 경북 문경 페채석장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김모(58)씨의 자살 여부와 관련, 의학자들은 “김 씨가 망상상태였다면 통증을 덜 느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경찰서는 지난 6일 중간수사결과를에서 지금까지 김 씨의 죽음에 다른 누군가 개입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엽기적인 자살이 가능한지에 대해 "김 씨가 현장에서 다량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경안정제가 통증을 반감시키는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코메디닷컴은 8일 이와 유사한 사건이 2006년 미국에서도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23세 남자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방식의 자살을 시도했다. 나무판자 두 장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거실에 세우고 한 손에 못을 박은 그는 하지만 남은 한 손에 못을 박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구급차를 불러 목숨을 건졌다.
그는 당시 망상증을 보였으며 “컴퓨터 화면에서 신의 모습을 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경란 교수는 십자가 죽음에 대해 “자신이 하는 행동이 매우 고통스러워도 이미 판단력이 상실된 이후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실제로 느끼는 고통보다 망상이 더 크면 고통을 못 느낄 수도 있다”고 코메디닷컴에 말했다.
또 순순천향대병원 정신과 한성우 교수는 “심한 정신병을 앓으면 뇌에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며 “섬망이나 해리 상태가 되면 신체의 감각 능력이 떨어지는데 특히 초점 감각은 극대화되고 말초 감각은 극소화되는 일종의 최면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의정부힐링스병원 박석준 원장은 “이런 상태가 되면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에 교란이 생겨 뇌가 정상적인 반응을 하기 어려워진다”며 “김 씨가 최면 상태 때문에 통증을 못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는 망상이나 정신분열증 환자 가운데는 자해당시 아픔을 덜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십자가 사망' 메모 "채찍으로 39번" 의미는

최초 발견자 "간음에 대한 죄의식 의미하는 듯"

 
 

십자가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김모(58)씨의 텐트 내부에서 발견된 메모.ⓒ경북경찰청 제공
▲십자가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김모(58)씨의 텐트 내부에서 발견된 메모.ⓒ경북경찰청 제공
경북 문경 폐채석장 ‘십자가 사망사건’의 최초 발견자인 전직 목사 주모(53)씨가 7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http://jayou.ne.kr/)에 ‘자살순서를 기록한 내용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숨진 김씨가 직접 적은 것으로 보이는 메모와 십자가의 도면 등 사진을 사이트에 올리면서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추정했다.
그는 "채찍으로 39번" 앞의 메모에서 가려진 단어는 '고추'라고 밝혔다.
이어 "검사현장에 참여할 당시에 정면에서 오른쪽에 가방 같은 것이 있었는데 길쭉한 무엇에 포장 끈을 감아놓은 게 있어 저게 뭘까 했는데 이곳 메모를 보고 그것이 채찍이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주씨는 "고추가 뭐지 곧바로, 곧추세우는 것을 말하는가 하고 한참 후에 시신의 하체를 떠올리고 파출소에 내려와서 조서를 받는 중에 고추가 성기를 말하는 것 같으며 아마 성기를 채찍으로 39번 때린 것 같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그리고 그 뒤 기자들에게 시달리며 무슨 의미일까를 기도하며 나름대로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는 인간의 삶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금기시되는 단어이며 비난과 정죄의 대상이다"라며 "모든 교인이 제일 괴로워하는 것이 간음이라는 죄로 괴로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죄의식의 고뇌를 가져본 자는 성기를 채찍으로 때리며 죽어가야 하는 이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집요하게 물어온 방송사 피디가 있었는데 이 글로 답변을 대신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또 "서른아홉번이라는 회수는 예수께서 사십에 감한 하나의 채찍을 군병들에게 등에 맞았을 때의 회수를 따라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월드이슈] 힐러리 美 국무장관 24시

역시 클린턴과 힐러리는 인물입니다.   



[서울신문]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악화될 때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때도, 아니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열을 뿜을 때도 꼭 등장하는 기관이 있다. 미국 국무부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사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라는 입장 표명으로 혼돈의 이집트 정국의 큰 가닥을 잡아 나갔다. 여느 국가의 외교부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야말로 세계 경찰국가의 외교사령탑이다. 그 핵심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앉아 있다. 말 그대로 국제 외교안보질서 전반을 주무르는 인물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제질서의 흐름을 좌우한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뻗쳐 있는 각 공관은 물론 국내외 정보기관들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정보보고를 분석하고, 정세를 판단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각국을 돌며 크고 작은 협상과 담판도 벌여야 한다. 숨 쉴 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초를 쪼개 쓰는 힐러리의 24시간을 들여다본다.

이집트 시위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10일(현지시간) 오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 자신의 집무실에서 CNN 방송을 켜놓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지켜봤다. 미 정보당국의 예상과 달리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자 힐러리 국무장관실은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지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향후 변수들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곧이어 긴급 소집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재 안보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으로 향했다.

하루 전인 9일도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지휘하는 힐러리 국무장관의 일정은 마찬가지로 쉴 틈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고 바쁜 국무장관,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국무장관이라는 자리가 무게를 더한다.

힐러리 장관의 하루는 보통 오전 모든 공식일정에 앞서 자신의 집무실 내 사적인 공간에서 비서실장 등 최측근 6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안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9일 오전 9시 30분 국무부 회의실에서 15명의 국무부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주재하고 국별 현안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현안 점검에 나섰다.

이어 오후 3시 45분에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집트 사태를 비롯한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해 보고를 겸한 자리를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힐러리 장관은 백악관에서 안보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역시 최대 현안은 이집트 사태였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과연 권력이양 등의 결단을 내릴지, 야권과 시위대의 반응, 향후 중동 정세에 미칠 여향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1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를 마친 뒤 힐러리 장관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별도로 다시 만나 이집트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향후 대책을 추가로 조율했다.

이날 일정은 미국을 방문한 외국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오전이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보통 2~3건의 외국 외무장관이나 부통령 등의 면담이 포함돼 있다. 상·하원 의원 등 정치인들의 면담도 끊이질 않는다.

힐러리 장관에게는 이집트 시위 사태에서 북한 핵 문제, 중국과 미얀마의 인권 문제,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아프리카 각국의 여성 인권 문제 등 매일 다뤄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일정은 10분 단위로 쪼개 관리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짬이 날 때마다 미국 언론들과 인터뷰를 한다. 외국의 외무장관들과의 양자회담이 끝난 뒤에는 대부분 어김없이 5분이라도 언론들과 만나 짤막한 기자회견을 갖는다.

최근 이집트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아랍어권 언론, 특히 중동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알자지라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힐러리 장관은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거취에 대한 중대 연설을 앞둔 10일 오전 11시 20분 국무부에서 알아라비아·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점진적인 권력 이양과 이집트 국민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아랍권 언론매체를 통해 이집트와 중동 국가 국민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한 대민전략의 일환이다.

힐러리 장관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오바마의 외교안보팀 내에서 뛰어난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게이츠 국방장관과는 호흡이 척척 맞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인답게 종종 거침없는 언사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지만 큰 그림을 꿰고 있는 자신감의 표출이라도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이집트 사태처럼 미 정부의 입장을 놓고 백악관과의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때는 당혹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담당 부처별로 약간씩 입장 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백악관에서 미국의 이집트 정책에 대한 입장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낸다.

힐러리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스마트 외교, 소프트웨어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 미국식의 소통정치를 외국 순방에서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접 학생이나 여성들과 타운미팅식의 만남을 갖고 현지 일반인들의 여론을 청취하고 미국의 입장을 알린다.

그러다 보니 역대 국무장관들보다 해외 출장도 빈번하다. 힐러리 장관은 지난 2년간 총 40회에 걸쳐 해외를 방문, 역대 국무장관 가운데 재임 첫 2년간 가장 많은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힐러리 장관이 지난 2009년 1월 취임한 이래 해외를 방문한 횟수는 40번이며, 이에 소요된 출장일수는 165일이었다.

바지정장이 트레이드마크인 힐러리 장관. 활동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성격이 반영돼 있고, 힐러리 장관의 외교의 색깔이기도 하다.

워싱턴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꿈에도 돼지 울음 소리'...구제역 스트레스

[경기] '꿈에도 돼지 울음 소리'...구제역 스트레스
 
  •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매몰된 가축이 10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묻는 광경을 지켜본 방역 직원들과 축산 농민들은 수면장애나 환청 등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강정규 기자입니다.

    [리포트]

    경기도 양주시의 축산위생연구소에서 10년 동안 수의사로 일해 온 최 모 씨.

    동물을 돌보기 위해 선택한 수의사의 길이지만, 양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3주 동안은 살아 있는 가축들을 땅에 묻는 역할을 해야했습니다.

    [인터뷰:최 모 씨, 수의사]
    "하루에도 살처분을 몇 농가씩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끼리도 분위기는 좀 그렇습니다.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해야 하나? 저녁이 되면 다들 말이 없고... 그러다 보니까 서로 의지해서 있는 거지..."

    매몰될 가축과 씨름하다 빙판에 미끄러져 허리까지 다쳤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정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인터뷰:최 모 씨, 수의사]
    "들려요. 환청이... 계속 소리가 들려서 저희끼리도 정신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 악몽을 계속 꾼다..."

    방역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들도 비슷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구제역 발병 지역인 포천과 연천의 공무원 200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정신적 스트레스와 수면장애 등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가장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축산 농민.

    몇 년 동안 애써 기른 가축을 하루아침에 땅에 묻은 농장주들은 구제역의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곽창선, 축산농민]
    "갈피를 못 잡죠. 멍하니 있는 거고...살처분 당하는 광경, 우리 돼지들이 지르는 소리, 그런 것들이 굉장히 힘들어요. 생각이 나니까..."

    이에 따라 경기도는 시군 보건소에 구제역 스트레스 상담 창구를 열고 필요한 경우 정신과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구제역이 계속 확산되면서 축산 농민들과 방역 직원들의 고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YTN 강정규[live@ytn.co.kr]입니다.

세계 최초 '페이스 오프' 수술 환자 공개

세계 최초로 안면 전체 이식 수술을 받은 스페인의 남성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스카’ 라고만 알려진 31살의 이 남성은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발 데브론 대학병원에서 자신의 얼굴을 언론게 공개하고 기증자 유족과 의료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오스카는 “이 자리에 서게 돼 기쁘고 의료진과 기증자의 유족들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담당 의사인 존 페레 바렛은 오스카의 상태에 대해 “이제 액체를 마시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말투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부였던 오스카는 지난 2005년 얼굴에 총상을 입으면서 코가 거의 사라져 숨쉬는 일조차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병원 측은 지난 3월 광대뼈, 피부조직, 얼굴 근육, 치아, 구개, 피부, 코, 입술, 턱, 눈꺼풀 얼굴 전체를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안면 부분 이식수술은 개한테 물린 프랑스 여성을 상대로 2005년 처음 실시됐으며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12명의 환자가 안면 부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부이치치 "자신 모습 그대로 사랑하세요"

"팔다리 없지만 행복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2개만 가진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21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0.2.21 << 문화부 기사 참조 >> uwg806@yna.co.kr

(수원=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호주판 '오체불만족' 닉 부이치치(28)가 8일 아주대학교를 찾아 "여러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첫번째 책 '닉 부이치치의 허그(HUG)'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부이치치는 이날 오후 3시 아주대에서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을 주제로 첫 번째 강연일정을 시작했다.

부이치치는 "포기 전까지는 희망이 있고 노력해보기 전까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실패할 때는 반드시 다시 시도할 것이고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목표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만약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이고 행복할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이치치는 또 "시간이 상처를 치유할 순 없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걸 치유할 수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는 연설 말미 단상에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이며 보는 이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팔다리 없지만 행복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2개만 가진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21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0.2.21 << 문화부 기사 참조 >> uwg806@yna.co.kr

이날 강연이 열린 아주대 원천관 강당은 500여명의 학생과 교수, 일반인이 참석해 좌석은 물론 계단까지 빼곡히 앉아 높은 관심을 보였다.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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