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7조원 아일랜드 갑부 ‘마이티 퀸’의 이상한 파산

[중앙일보] 입력 2012.01.09 00:00 / 수정 2012.01.09 10:38

꼬리에 꼬리 무는 의혹

션 퀸
아일랜드 최고 갑부가 파생 금융상품으로 거액을 날리고 막대한 은행 빚까지 진다. 갑부가 파산 신청을 한 가운데, 그의 회사 자산관리 책임을 맡은 신임 CEO의 차량엔 폭발물이 터진다. 본사 건물에 느닷없이 불도저가 돌진한다. 그의 해외 자산 추적 과정에선 회사 주주 의결권이 노트북 한 대 값에 양도됐던 사실이 밝혀지는 등 희한한 일이 꼬리를 무는데….

 미스터리 금융소설 줄거리가 아니다.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다. 주인공은 한때 60억 달러(약 7조원, 2008년 포브스 집계)의 부를 자랑했던 아일랜드의 전설적 자수성가 사업가 션 퀸(65).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마이티(Mighty·힘센) 퀸’이라고 불렸던 그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고 공식적으론 ‘무일푼’이 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7일(현지시간) 퀸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과 파산 뒷얘기를 전했다.

아일랜드 밸리콘넬에 있는 션 퀸 일가 저택의 조감도. 실내골프장과 수영장에 영화관도 갖춘 이 호화저택은 당초 퀸 부부 명의로 등록됐다가 지금은 다섯 자녀의 명의로 돌려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데일리메일 웹사이트]

 북아일랜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퀸은 28세이던 1975년 100파운드(약 18만원)를 빌려 채굴 사업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경제 호황과 맞물려 사업은 시멘트·호텔·부동산·보험 등으로 확장됐고, 퀸은 아일랜드 최고 부호로 떠올랐다. 14개국에 70여 회사를 거느렸고, 팰컨사의 전용 제트기까지 소유했다. 그러나 2007년 앵글로 아이리시 은행(이하 앵글로)의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2008년부터의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은행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끝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유화됐다. 퀸은 앵글로의 주가가 하락하는 동안에도 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투자규모를 늘리다가 결국 은행 측에 총 28억 유로의 빚을 졌다. 지난해 영국령 북아일랜드 법원을 통해 파산 절차를 밟을 당시 그의 손엔 “1만1000유로(약 1600만원)와 구식 메르세데스 자동차, 약간의 땅”(퀸 주장)만 남은 신세였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퀸에게서 돈을 떼이면 은행 손실이 고스란히 납세자에게 돌아갈 상황. 아이리시 은행 정리공사(IBRC·앵글로 은행의 법정관리주체)는 전 세계에 흩어진 퀸그룹의 자산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직화된 배후라도 있는양 물리적 방해가 번번이 일어났다. 자산을 압류하려고 하면 딱 그 가치만큼 담보를 설정했던 채권자가 등장했다. 우크라이나·인도 등에선 지방법원이 태클을 걸어왔다. 퀸이 절세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도 복잡한 구조로 인해 정리책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IBRC 측은 퀸이 5억 유로에 이르는 은닉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퀸의 자녀들은 “정부가 아버지를 희생양 삼아 금융위기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퀸이 다섯 자녀 명의로 된 호화저택에 살면서 사업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IBRC 측의 불신을 산다. 몇 주 전엔 퀸그룹 지주회사의 국제 자산을 퀸의 미성년 손자들에게 넘기려는 목적의 기밀문서가 발각되기도 했다. 퀸과 IBRC는 파산 선고의 유효성을 둘러싸고 조만간 다시 법정에서 맞붙는다. “도시개발과 금융신화는 어디 가고 냉전시대 이중 스파이 소설 같은 이야기만 남았다.” 퀸그룹 몰락 스토리를 추적해온 더블린대 경제학자 브렌던 윌리엄스 교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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