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많이 낳지 말자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증권사 임원으로 일하던 선배 한 분이 얼마전 그만 뒀다.
본인 입을 빌어 정확히 표현하자면 '짤렸다'. 40대 중반의 사장이 부임하면서 그보다 나이 많은 임원들이 모조리 짐을 쌌다. 그 증권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한국거래소에선 나이 50세를 기준으로 명예퇴직을 받고 있다.

한쪽에선 '고령화 시대'를 걱정하면서, 우리 사회는 다른 한편에선 이렇게 '피부양인구'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다시 말하면 고령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고출산'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역(逆) 가족계획'의 구호를 접할때마다 (실효성이나 도덕성을 따지기에 앞서, 여전히 한국의 인구밀도가 방글라데시와 대만에 이어 세계3위라는 점을 우리가 잊고 있지나 않나 되묻고 싶어진다.

비정상적인 교육열, 살인적인 취업경쟁, 천정부지 아파트 값, 반 사회적 범죄...이런 문제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몰려 살기 때문이다. 조그만 박스 안에 생쥐 두 마리를 넣어두면 사이좋게 살지만, 네 다섯마리, 열마리로 늘어나면 서로 물어뜯고 죽기 살기로 싸운다.
대학교 나와도 제대로 된 일자리 찾느라 머리 터지는 마당에 우리가 머릿수 적다고 걱정할 처지인가.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과밀 사회가 균형을 찾아가는 자연스런 수렴과정이다.
토지가 부양할 수 있을 수준으로 인구가 균형을 찾아가는 몇십년 동안은 고령화라는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이 과도기의 대응책은 아이를 더 많이 낳는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이 은퇴를 늦추고 오래 일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환갑이 넘어도 과거 40대만큼의 체력과 에너지를 가진 실버세대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나이 든 세대가 끝까지 회전의자를 차지하고 젊은 세대의 희망을 빼앗아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리를 낮춰 겸손하게 일하고, 젊은 세대는 이들의 경륜을 존중하며 나이와 무관하게 '직무관계'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데서 세대간 타협은 이뤄질 수 있다.

'고령자 재활용'을 통해서 뿐 아니라 젊고 우수한 노동력도 얼마든지 보충할 길은 있다. 우리가 저출산을 걱정하는 사이에 이미 이민자들로 인해 우리나라 인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우리'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인구문제의 본질도 달라지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중요한 일원이 될 때 글로벌 국가 경쟁력도 강해진다. 단일민족만 모여 사는 국가가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 합쳐 인구가 1억은 돼야 선진국 갈수 있다'던 시절도 있었다. 내수가 뒷받침돼야 국내 산업이 클 수 있다는 전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기업들에게 글로벌 경쟁력은 내수 시장에 있지 않다. 지금은 시장 경계가 점차 무너지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아닌가.

환경적 관점에서도 '고출산'은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목청을 높여 기적적으로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로 감축하기로 합의한다 치자. 민간과 정부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연간 1인당 10톤(한국기준)씩 탄소를 내뿜어 대는 인간들이 급증한다면 효과는 '말짱 황'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개도국에 '가족계획'을 강요해야 할 판에 우리는 더 낳겠다고 대놓고 나서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과거 5년간 30조원을 퍼부었다는데도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면 정책 효율성은 '제로'라고 할 수 있다. 돈으로 아이 낳기를 유도하는 저차원 정책보다는 그 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태는게 지금 세대나 후세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출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선택이다. 실속도 명분도 없는 '역 가족계획'으로 등 떼밀 일이 아니다. 어린이 날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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