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학생 감염 초비상, 전국 학교 ‘시름시름’
신종플루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 방역당국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와 정부 정책의 문제는 없는지 점검해 봤다. “장관님들께는 질문을 세 건 정도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실·국장들이 배석하고 있으니….” 최희주 보건복지가족부 건강정책국장이 공지했다. 장관들이 들어섰다. 카메라 프레시가 일제히 터졌다. 10월27일 보건복지가족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국무총리실 실장 등 4개 부처가 합동으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는 자리다. 전재희 장관이 입을 열었다. “배포된 담화문을 읽을 겁니다. 참고해 주세요.” 이날 기자회견 요지는 “신종플루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의 방역대책은 철저하게 준비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이날 정부가 제시한 13가지 지침만 제대로 숙지하면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발표였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기자들은 약속대로 장관들에게는 세 가지 질문만 했다. 공중파 방송사의 의학 담당 기자들이 나섰다. 장관들이 나간 뒤 모 방송사 기자가 재차 물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는 아파트 밀집지역인데 학생환자의 95%가 최근 발생한 경우다. 그런 경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 발생 초기부터 차단해야 하는데 교육당국 대책이 안이한 것은 아니냐. 권역별이나 지역별, 동 단위의 구체적 계획이 나온 게 있냐.” 이 기자는 질문 말미에 자신의 가족도 거기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원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조정실장이 답했다. “학교 단위의 휴업도 확진환자나 의심환자가 어느 정도 비중이 돼야 할지, 어느 정도 선이 합리적 기준이 될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권역 단위에서 휴업은 그런 휴업 조치의 차단효과 등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최종 발표할 것이다.” 언론 입장에서는 건질 것 없는 ‘립 서비스’다. 장 실장의 결론은 이렇다. “논의가 진행 중인데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학교대책 ‘논의 진행 중’ 원론만 되풀이 실제 고양시 덕양구 일대는 어떤 모습일까. 10월28일 기자는 거점병원과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곳 표정을 살펴봤다. 이 지역의 학교수는 총 58개. 초등학교가 32개, 중학교는 16개, 고등학교는 10개다. 먼저 이 지역 거점병원인 관동대 명지병원을 찾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장정연씨(가명·42·고양시 덕양구)는 월요일부터 회사를 쉬었다. 고열 증상을 보인 아들 장정군(가명·8) 때문이다. 아들은 인근 ㅎ초등학교 2학년이다. 장씨 집은 맞벌이 가정이다.
아들은 병원으로부터 확진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아들만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이 다 처방을 받았다. 어른은 타미플루 75㎖를 받았고, 아이들은 30~45㎖를 처방받는다. 아침저녁으로 한 알씩 5일 동안 먹어야 한다. 장씨는 말한다. “아이들은 그리 걱정되지 않지만 집의 어머니가 걱정됩니다.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는데…. 정부 분류에 따르면 ‘고위험군’이니까요.”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식구들 걱정이 앞섰다. 확진환자 대기줄에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우 모양(17)의 어머니 유 모씨는 “애보다도 지금 재수하는 애 오빠가 있는데 그 아이가 혹시 걸리지 않을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곳 학교는 이미 휴업 상태였다. 병원 인근의 ㅎ초등학교. 교문은 열려 있지만 교직원 차량만 주차돼 있을 뿐 운동장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의 놀이터에서 이 학교 학부모 김 모씨(39)를 만났다. 학교는 이날부터 휴업이었다. 김씨의 첫마디.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김씨의 손에는 병원에서 발급한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신종플루’ 보도를 보고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에 아이의 머리에 미열이 있었다. “우리 아이도 혹시…”하는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비로 7만원을 냈지만 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는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했다. “이 애는 지난 2년 동안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어요. 일부러 학원에도 보내지 않고 흙에서 뛰어 놀게 했고요. 저 역시 평소 양약의 과오남용 문제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그래도 병원에 달려오다니….” 김씨는 뉴스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 봤지만 정말 알고 싶은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가정통신문에도 ‘자주 손을 씻어라’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휴업이 결정될 때까지 학교 학생 가운데 몇 명이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는지, 의심환자는 몇 명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식루트가 봉쇄돼 있으니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이날 병원 인근에서 만난 일부 학부모들은 “10월17일에 사망한 ‘수도권 7세 남아’가 인근 ㅁ초등학교 학생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의 말. “복지관에서 엄마들이 모여서 수군대는 말을 들었어요. 숨진 애가 ㅁ초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 그것 때문에 그쪽 인근에서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학원들도 다 문을 닫고.” 소문은 사실일까. 기자는 ㅁ초등학교를 방문했다. ㅁ초등학교가 휴업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바로 옆의 ㅁ중학교는 주말을 끼고 5일 동안 휴업했다. 이미 1주일 동안의 휴업이 끝난 터라 이날부터 학생들은 다시 등교했다. 다시 문을 연 ㅁ초등학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운동장에선 교사의 지도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만나 ‘소문’에 대해 물어봤다. 이 학교 5학년인 한지우(12)·박유선(12)양은 “오늘 등교하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애들이 지어낸 이야기지 사실이 아니라고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보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사실무근인 헛소문이다. 우리 학교가 언급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이 학교 앞 장사는 희비가 엇갈렸다. 중국집의 매상은 조금 올랐다. 학교를 가지 않은 아이들이 배달로 시켜 먹은 것이 조금 늘어났다. 반면에 교문 앞 분식집 주인은 “지난 1주일 동안 무척 힘들었는데 또 2차 휴교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집 여주인은 “그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가 아니라 ㅇ초등학교, ㄱ초등학교라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ㅇ초등학교는 ㅁ초등학교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다. 이 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이 학교 4학년 이용재군(11)은 “반에서 10여 명이 신종플루에 걸려 나오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병원. 안광용 명지병원 홍보팀장은 “다른 거점병원들은 병원 입구에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진료소를 세우고 있지만 우리 병원은 처음부터 신종플루 대응센터를 차려 신속히 대응해 왔다”고 말했다. 병원이 마련한 신종플루 진료소는 1차 진료소와 2차 진료소로 나뉜다. 1차 진료소는 신종플루 의심환자를 대상을 검진하고 있고, 2차 진료소는 확진 판정된 환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핸드마이크를 든 병원 관계자들이 번호표를 나눠 주고 진찰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평균 대기시간은 2시간. 이 병원이 신종플루 대응 진료센터를 개설한 것은 지난 9월1일이다. 10월27일까지 총 1111명의 신종플루 의심환자가 병원을 다녀갔다. 병원이 제시한 진료현황표를 보면 평균 두 자릿수에 머무르던 외래환자가 10월19일부터 세 자릿수로 급격하게 늘었다. 특히 소아로 분류돼 있는 유아, 초·중·고등학생 검사 및 확진자 수는 일평균 200~300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안해 하는 모습은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이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장 모씨(여·37)는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장씨의 큰 아들 최 모군(12)은 현재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 둘째 아들은 아직 검진하지 않았지만 ‘미열’로 벌써 두 번이나 돌려보내졌다. 장씨의 말. “어쨌든 좋은 병은 아니지 않아요? 어제 문화센터를 갔는데 다른 어머니들이 둘째 아이 이야기를 알고 있어 경계하더라고요.” 수험생 “신종플루 확진 축하한다” 수능을 앞둔 고3학년인 김용혁군(17)은 “지난 금요일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검사를 받았는데 지금은 다 나았다”고 말했다. 감염 경로는 어떻게 될까. “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밤늦게 돌아다녔기 때문인 것 같은데….” 검사 결과 김군은 뒤늦게 ‘확진’ 판정이 나왔지만 이날 김군을 만난 의사는 “그냥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김군은 전했다. “전화요? 친구들에게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학교에 안 나와도 되니까요.” 지난 금요일부터 이날까지 김군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김군은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정작 자신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군은 완치증명서를 떼러 이날 병원에 왔다. 학교에서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증명서가 없다는 것. 병원 관계자는 “타미플루 처방 내원 영수증을 가져가면 된다”라고 김군에게 설명했다.
10월 중순 이후 학생환자는 전국적인 급증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건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10월26일까지 발생한 학생환자는 4만1000명. 이 가운데 42%인 1만7000여 명이 10월19일 이후 발생했다. 휴업이 결정된 334개 학교 가운데 40%인 132건 역시 같은 기간에 이뤄졌다. 급증 양상에도 교육과학기술부의 ‘장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0월29일 심야까지 계속된 토론 끝에 관련 당국이 내린 해법은 ‘학교장 중심의 대응체제 강화’였다. 결론은 이전까지 조치의 반복이다. 문제는 없는 걸까. “이미 현장 담당 교사는 과부하가 걸릴 대로 걸린 상태입니다.” 서정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종플루 대책팀장(전교조 보건위원장)의 말이다. 학교 보건교사 입장에서는 이미 업무 과부하가 걸릴 대로 걸린 상태라는 것이다. 보건교사들은 교육청 문서자료취합시스템(DCMS)을 통해 일일보고를 하게 돼 있다. “문제는 모든 항목을 학부모, 담임교사, 학생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취합해야 한다는 거예요. 타미플루를 복용한 학생은 몇 명인지, 확진환자·완치환자 수는 몇 명인지, 발생일은 언제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또 확진받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이름까지 파악해 보고하도록 돼 있으니…. 보통 오전에 전화를 하게 돼 있지만 점심도 건너뛰는 게 다반사인 데다 하루에 100명이 넘게 몰려드는 학생들을 돌보면서 수업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하더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요.” 서 팀장은 가장 큰 문제가 ‘인력이나 예산 지원 없이 공문만 남발하고 있는 관료조직의 행태’라고 말한다. “어제 발표한 담화문에서 학교와 관련 있는 게 학교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다고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서 팀장의 주장에 따르면 전시행정의 단적인 예가 학교 교문 앞 발열검사다. 37.8도라는 발열 기준에서부터 온도계의 정확성 문제 등 논란이 거세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슬그머니 꼭 학교 교문 앞이 아니라 교실 입구, 담임선생님 등 ‘실정에 맞게’ 하도록 수정했다. 하지만 정작 공문으로는 정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지금까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신종플루 방역대책은 성공한 것일까. 팬데믹(대유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정부 당국은 “현재 타미플루와 릴렌자를 전체 인구의 11%에 투여할 수 있는 분량을 확보했고, 연말까지 20% 이상으로 늘릴 것”이라면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백신을 자체 생산해 접종을 시작했고, 내년 2월까지 전체 국민의 35%에 해당하는 1716만명에게 백신 접종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성수의원 원장)은 “자체적으로 생산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연내 1000만개밖에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자체 생산을 하든 하지 않든 선구매 등을 통해 전체 국민이 맞을 수 있는 백신 물량을 확보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대비계획 등에 따르면 연간 1300만개, 누적으로 총 2600만개 분량의 백신을 이미 확보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신의 경우 원래 2회 접종을 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최근 임상실험 결과 1회 접종으로도 충분히 면역력이 형성된다는 결론이 나와 1700만명을 접종할 수 있게 된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대혼란이 일어날 뻔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대책 결과적으로 실패한 거 아니냐” 우 실장은 “누가 우선적으로 맞을 것이냐에 대해 예방접종심의원회에서 논란 끝에 결국 우선순위에서 노인과 병자는 내년으로 밀리게 됐다”면서 “원래 계획대로 연간 1300만명 분의 백신을 확보했더라면 내년까지 사망하게 될 지도 모르는 만성질환자 대부분은 포괄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은 의료공공성을 희생하고 의료산업화를 추진해 온 정부정책때문이라는 것이 우 실장의 주장이다.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은 공공의료적 성격을 띤다. 공공병원까지 민영화로 가고 있는 정부의료정책에서 이번 신종플루 정부대책에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 정부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불안은 확산되고 있다. 고양 덕양구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이곳과 의정부, 대전 일대가 지금 난리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가 지금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지 그런 정보가 없다”면서 “정보가 있어야 학부모 입장에서도 어떻게 할지 계획도 세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망자나 확진자에 대한 지역별 통계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질병관리본부 조영기 주무관은 “사망자 통계는 내부 회의를 거쳐 수도권, 호남권, 영남권 식의 광역권만 언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구체적인 지역을 공개하면 부작용이 더 크지 않겠냐”면서 “사망자가 나온 동네라든지 진료한 병원이 밝혀지면 기피 현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조 주무관에 따르면 지역별 확진환자 통계도 9월20일 이후 공식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된 마당에 지역별 통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발열검사 전시행정 논란은 어떻게 된 것일까. 박희근 교육과학기술부 학생건강안전과 과장은 “학교별 사정에 맞게 유연하게 집행하라는 것은 여러 차례 관련 회의나 공문 등에서 언급했다”면서 “아직도 교문 앞 발열검사를 고집하는 학교가 있다면 그런 지침을 미처 읽지 못했거나 빠뜨린 경우일 것”이라고 답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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