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s Lanting, albatross courting
Paul Klee, angelus novus
첫 번째 이미지는 프랜스 랜팅의 사진 <구애하는 알바트로스>, 두 번째 이미지는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입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게 서로 닮은 구석이 있지요?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게으른 바다새를.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얼마나 어색하고
나약한가!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뚝 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걸음조차 방해하네.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파울 클레의 그림이 있다.
앙겔루스 노부스라고 하는, 천사 하나가 그려져 있다.
마치 그의 시선이 응시하는 곳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의 눈은 찢어졌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그의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아마 이런 모습이리라.
그의 몸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거기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눈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끊임없이 폐허 위에 폐허를 쌓아가며
그 폐허들을 천사의 발 앞에 내던지며 펼쳐지는 파국을.
아마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패배한 자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한줄기 난폭한 바람이 파라다이스로부터 불어와 그의 날개에 와 부딪치고,
이 바람이 너무나 강하여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이 난폭한 바람이 천사를 끊임없이 그가 등을 돌린 미래로 날려 보내고,
그 동안 그의 눈앞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
앞의 것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에 수록된 <알바트로스>라는 시이고, 두 번째는 이른바 '역사철학테제'라 불리는 <역사의 개념의 관하여>에서 벤야민이 한 말입니다.
*
보들레르의 시에서 알바트로스는 하늘을 날 때는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나 땅으로 내려오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시인을 상징한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알바트로스는 보들레르의 다른 자아(alter ego)인 셈입니다. 벤야민의 글에서 신천사는 머리만 비대하고 현실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지식인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벤야민의 알터 에고라 할 수 있지요. 벤야민은 보들레르에 관한 꽤 긴 비평을 몇 편 쓰기도 했었지요. 말할 필요도 없이 <악의 꽃>에 수록된 <알바트로스>를 읽었겠지요.
땅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바보새 알바트로스와 날개를 접지 못하고 바람에 밀려나는 신천사.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알바트로스는 날개의 추진력으로 이륙하는 게 아니라 긴 날개를 바람에 맡겨야 비로소 떠오를 수 있다고 하는군요. 착륙할 때에도 날개보다는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모양입니다. 비행기에 비유하자면 글라이더에 가깝다고 할까? 신천사 역시 날개를 접지 못하고 마치 연처럼 바람에 떠밀려 등을 돌린 채 미래로 떠밀려가지요.
이 정도면 벤야민의 <신천사>와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 사이의 연관을 추측해도 되겠지요? 이것은 ms 마플님을 위한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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