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 『군주론』집필의 시대적 배경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개인적 배경보다도 중요한 것은 『군주론』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정신이며 이러한 정신을 낳게 한 시대적 배경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서 자신의 조국인 이탈리아를 재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는 그 당시 이탈리아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외부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어 있었고, 이탈리아 반도는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즉,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와 독일이 통일된 국가 형태로 진전되어 가는 것과는 달리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지속된 국가 분열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사회 안정과 이탈리아 통일의 해결책을 찾도록 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집필한 저작이 바로 『군주론』이라 할 수 있다.
2. 군주론의 주요 논점
‘이탈리아의 통일과 안정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마키아벨리는 이에 대한 답으로 ‘강력하고 전제적인 군주’를 제시했다. 사회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군사력과 지도력을 가진 전제 군주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사회 혼란의 해결점을 일인 독제의 강력한 군주에서 찾았고, 이러한 군주에 대한 논의가 바로 ‘군주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상적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첫째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외적 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둘째는 군주의 인물됨에 대한 내용, 그리고 셋째는 군주에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조언에 대한 내용이다.
3. 군주의 외적 요건
먼저, 첫째로 ‘군주가 갖추어야 할 외적 요건’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다름 아닌 군주 ‘자신의 군대’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만 자신의 지위와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군사력을 중시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상실한 통치자들은 모두 ‘군사적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강력한 ‘자신의 군대’가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항상 기본적으로 전사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군대를 직접 통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군주의 인물됨
둘째로 ‘군주의 인물됨’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살펴보자. 마이카벨리는 군주의 관후(寬厚)함과 인색함, 잔인함과 인자함, 사랑받는 것과 외경(畏敬)받는 것 등, 군주의 인물됨과 그에 따른 행동들 중 어떠한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논의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적 개인이 아닌 공적 개인인 만큼 사적 개인이 가졌을 때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적 개인은 인색함보다는 관후함을 가지는 것이 좋지만 군주의 경우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는 사적 개인이 가졌을 때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관후함, 인자함, 신의(信義)등은 군주에게 커다란 해악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마키아벨리는 관후함을 가진 군주는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과시적으로 낭비해야 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신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인색함을 가진 군주는 오히려 세입을 풍요롭게 하여 외적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으며, 또한 신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대사업(전쟁)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색함을 가진 군주가 진정으로 관후한 군주라는 주장이다. 도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민들을 단결하게 하고 충성스럽게 하려면 잔인하다고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외경의 대상이 되어야 신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랑받는 것과 외경을 받는 것을 모두 겸비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외경을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위선자요, 염치를 모르는데다가 몸을 아끼고 물욕에 눈이 어두운 속물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금세 등을 돌릴 수 있다. 인간은 외경하는 자, 즉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애정을 느끼는 사람을 더욱 쉽게 배반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사랑받기 보다는 외경을 받아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민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도 알 수 있다.
군주의 인물됨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마지막으로 ‘군주는 신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에 대해 논의한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기본적인 덕으로 알려져 온 바와는 달리,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과감히 약속을 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약속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무릇 군주라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의도 저버릴 줄 알아야 하며, 자비심을 버리고 인간미를 잃고 때때로 반종교적인 행동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실제 군주는 인색함, 잔인함 등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적 개인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덕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군주가 보통 존경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성품을 갖지 않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에게는 위장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물론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덕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비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5. 군주에 대한 조언
그렇다면, 이러한 군주의 인간됨이 좀 더 이상화된 군주의 모습이라면 실제 군주에게 어떠한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는 ‘경멸과 증오를 피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군주가 구축하는 요새 및 그 비슷한 것들은 과연 유익한가.’, ‘명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등의 내용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영토를 요새로 방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만약 군주가 신민들의 증오를 두려워한다면, 군주는 확실히 자신의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마저도 궁극적으로 통치자를 인민의 불만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다.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신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신민의 신임도 역시 중요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민의 미움과 경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민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부녀자의 명예를 깎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군주가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무기력한데다가 결단력이 없다고 보이면 경멸을 받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일들을 피해야만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 군주가 경멸을 받지 않는 또 다른 방법은 간신을 피하는 방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이 군주와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군주는 매우 쉽게 존경을 잃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즉, 군주는 완전한 논쟁의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단지 소수의 조언자에게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논의하기를 원하는 주제에 관해서만 상의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한 행동이 군주를 경멸스럽게 만들고 있으므로 소심함의 징표인 중립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6. 『군주론』의 해석
이렇듯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상을 제시했다. 『군주론』의 가장 근본적인 주장은, 군주는 만약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 악행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는 사회 불안의 해결책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통치자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단지 자기의 권력과 세력을 팽창,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말고 도의 정신, 종교심, 논리성을 저 버리며,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사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는 해석 방식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군주론』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하고 있으며 분명 통치자의 정치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주론』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군주론』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겠다. 물론 그 후에 『군주론』이 갖는 현대적 의미에 대한 지적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 마키아벨리(Machiavelli : 1469~1527)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주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끊임없이 침입하여 사회 불안이 격하되고 국가 재정이 파탄 지정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독일 정세’, ‘프랑스 정세’, ‘국가 재정에 관한 진언’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후 1512년에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가의 왕정이 복원되었고, 이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메디치가의 전제 시대가 시작되면서 마키아벨리는 구정권에 봉직하였다는 이유로 1년간이나 억류 생활을 했다. 그 후 다시 공직에 봉직하지만 반(反) 메디치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다. 다시 석방된 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참여하기 위해 1513년 말경에 『군주론(Il Principe)』을 집필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개인적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각하’께 바치며 현재 자신이 ‘얼마나 엄청나고 지속적인 부당한 운명의 학대를 받고 있는가.’를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군주의 신임을 얻고 다시 공직에 참여하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그 후 마키아벨리는 반메디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다른 지식인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전술론』과 자신의 공화주의적 사상을 담은 『로마사론』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 후 메디치 왕정은 프랑스의 로마 약탈, 이로 인한 교황의 도주 등의 이유로 붕괴되었고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공화정이 복원된 후에도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결국 1527년에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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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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