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의 『의산문답』
『의산문답』의 핵심 내용 |
1. ‘땅은 둥글다.’ - 지구설
실옹은 먼저 ‘땅은 둥글다’는 ‘지구설’로 허자가 지녀 온 전통적인 우주관을 깨뜨린다. 허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인 우주관에 따라 직육면체 모양의 땅이 물 위에 떠 있는 우주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우주관을 바탕으로 허자는 땅의 위쪽 면에서는 사람이 똑바로 서 있을 수있지만, 옆면에서는 가로로 누울 수 밖에 없다고 실용의 지구설을 의심한다. 또한 땅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물 위에 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옹은 먼저 허자가 지는 기존의 상식을 모두 버릴 것을 주문한다. 편협한 경험에 의존하는 사고를 버리고 우주를 무한한 공간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천체가 우주 공간상에 떠 있다고 하면 상하의 구별이 없어지고 땅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필요 없어지는 것이었다. 실옹은
허공에 상하가 없는 것은 그 자체로 보아 분명한데, 세상 사람들은 평소의 속된 생각에 젖어 그 까닭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진실로 그 까닭을 찾아낸다면, 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고 하며, 아래에서 받쳐 주는 물이 없으면 땅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허자의 생각이 무의미한 것임을 일깨운다.
그러나 허자는 여전히 “만일 땅이 둥글다면 지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거꾸로 서 있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의심한다. 실옹은 지구상의 물체는 모두 중심을 향하는 성질이 있어서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서 있을 수 있다고 허자를 설득한다.
또한 실용은
중국은 서양에 대해서 경도 차이가 180도인데, 중국 사람들은 중국을 바로 선 세계로 삼고, 서양을 거꾸로 선 세계로 여긴다. 이에 대하여, 서양 사람들은 서양을 똑바로 선 세계로 삼고 중국을 거꾸로 선 세계로 삼는다. 그러나 사실상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이면 기준을 어디로 한들 모두 마찬가지다. 옆으로 선 것도 없고 거꾸로 선 것도 없으니, 모두가 똑바로 선 것이다. |
고 하며 둥근 지구에서는 모든 곳이 공간적으로 동등하고 똑바로 선 세계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지구상의 모든 공간이 공간적으로 동등하다는 인식은 홍대용이 당시의 어느 지식인보다도 앞서, 그리고 편견 없이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 정당하게 평가할 수있게 한 기반이었다. 허자는 서양의 문물은 변방 오랑캐의 것이라고 무시하며 중화사상에 젖은 당시 지식인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실옹은 서양의 학문이 수학과 천문학 등에서 매우 뛰어난 것임을 인정하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옹은 서양의 과점에서 보면 중국이나 조선이 변두리에 해당하고,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서양이 변두리에 해당한다며 교만한 중화사상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상대주의는 홍대용의 철학 사상 전반을 지배하는 중요한 사유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의산문답’에서 ‘인간과 모든 생물들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주장을 펼 정도로 생태학적 시각이 강하게 견지되고 있다.
실옹은 자연의 모든 생물은 지(知), 각(覺), 예(藝)의 유무에 따라 식물, 동물, 인간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모두 질(質), 정(精), 혈(血)의 교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없다고 주장한다.
생물의 종류에는 셋이 있는데, 사람과 금수와 초목이 그것이다. 초목은 거꾸로 서서 살아가는 까닭에 지(知)는 있어도 각(覺)이 없고, 금수는 옆으로 서서 사는 까닭에 각(覺)은 있어도 지(知)가 없다. 이 세 생물의 종류는 한없이 엉크러져 서로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데, 거기에 귀천의 차등이 있겠느냐? |
결국 모든 생명체가 궁극적으로 자연계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므로, 어느 것을 중심에 놓기보다 모두 동등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으냐 다르냐.’ 하는 당시의 철학적인 논쟁에서 홍대용이 인성과 물성이 동등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철학사적인 의미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끄는 주장이다. 또한 홍대용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의 인간 중심주의적인 자연관 때문에 빚어지는 생태계 파괴의 문제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변형하는 것만을 정당화하면서 자칫 인간과 자연이 동등한 주체로서 상호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것이다.
2. 지구 회전설
실옹은 허자의 박약한 우주관과 생명관을 교정한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의산문답’ 전체가 홍대용의 새로운 우주관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사적으로 가장 획기적인 주장은 지구 회전설(지전설)일 것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중국과 조선에 정식으로 소개되기 이전에 조선의 지식인이 독자적으로 주장한 학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홍대용의 선배인 김석문은 서양에서 주장된 상대 운동의 개념과 동양 전통의 천체 이론을 결합해, 지구가 중심에서 돌고 태양과 달 등 천체들은 지구의 운동에 의해 상대적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는 지구회전설을 주장했다. 아마도 ‘의산문답’에서 제시된 홍대용의 지전설은 김석문의 지전설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허자는 “지구가 돌면 지구 표면의 생물체가 어떻게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느냐” 며 지전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실옹은 대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지구와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지구가 돌더라도 지구 표면의 생물이 넘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마치 물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칠 때 물 전체가 움직여도 물고기는 아무런 영향 없이 헤엄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실옹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치 나는 새가 공중을 빙빙 돌고, 구름이 하늘에서 피어났다 흩어지고, 물고기와 용이 물에서 놀고, 쥐가 땅을 기어다니듯이, 고여 있는 기(氣) 속에서 헤엄치는 것들은 넘어지거나 쓰러질 염려가 없거늘, 하물며 지면에 붙어 있는 사람과 만물에 있어서랴! |
3. 우주 무한론
자신의 세계관이 여지없이 깨지는 것을 목도하며, 허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신의 믿음만이라도 지키고 싶어 한다. 허자는 지구가 중심에서 돌더라도 천체들이 지구 주위에 있다면 어쨌든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닌가 하며 실옹을 물고 늘어진다.
그러나 허자의 믿음은 우주의 공간은 무한하고 우주는 지구와 같은 천체들이 무한이 많이 있다는 실옹의 우주 무한론에 또 다시 의미 없는 고집이 되고 만다. 실옹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주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허자를 더욱 경악시킨 것은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세계일 뿐이며,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세계가 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실옹의 다세계설이었다. 실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모두 각각의 세계이다. 별들의 세계로부터 본다면 지구의 세계도 또한 하나의 별일뿐이다. 한량없는 세계가 하늘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이 지구의 세계만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
지구설에 바탕해 지구상의 어느 곳이나 공간적으로 동등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지만, 우주 공간이 무한하고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실옹의 주장을 보면 홍대용이 상상한 우주의 크기와 사고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혁명적인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홍대용은 이러한 우주론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의산문답’ 후반부에서는 당시 지식인들이 교조로 삼고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를 여지없이 벗어 버린다. 이미 구형인 지구상에서 중심과 주변이란 구별이 무의미하고, 광활한 우주에서 중심과 주변이라는 구별이 무의미할 때, 중국은 대국이고 조선은 오랑캐라는 사대주의적인 화이관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실옹의 입을 통한 홍대용의 마지막 주장은 “만약 공자로 하여금 오랑캐 땅에 살게 한다면, 그는 중국의 법과 풍속을 그 곳에 일으켰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곳 중심의 춘추(역사)가 있었을 것이다.”였다.
허자로 드러난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홍대용이 “의산문답”을 통해 진정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과 우리에게도 우리의 역사가 있다는 각성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전통과 권위에 얽매여 경전이나 암송하는 허자의 허학을 버리고 세계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실질을 숭상하는 실옹의 실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역사학자 정인보 선생은 ‘의산문답’을 평하기를, “진실로 선생의 학설에 따라 미루어 알아 가면,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인데, 아깝게도 그 뒤를 이은 사람이 적었다.”고 했다. ‘의산문답’을 읽을 때마다 살아나는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의 면모는 이러했던 것이다.
저자 소개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호는 담헌(湛軒)이며, 조선 영조, 정조 연간에 활동한 문신으로 당시의 집권당인 노로 가문에서 나온 실학파의 선구자였다. 정치, 경제는 물론 특히 과학 분야인 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어 개인적으로 천문 관측기구를 소장하고 연구하기도 하였다. 천문학과 우주론에 대한 그의 지식은 중국을 토해 들어온 서양 천문학의 지식과 김원행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의 선배 김석문에게 영향 받은 바 크다. 홍대용은 특히 1766년 작은아버지를 따라간 북경 방문을 계기로 중국인 학자, 서양 선교사들과 사귀고 서양 과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서로는 북경 방문의 여행기인 ‘연기’, 서양 선교사들과의 필담서인 ‘유포문답’, 수학책인 ‘주해수용’, 과학 사상을 담은 ‘의산문답’ 등이 있다. 그의 사후에 그가 남긴 시, 서를 포함해 그의 저작을 망라한 ‘담헌서’가 편찬되었다. 『의산문답』은 가상 인물인 실옹과 허자가 펼치는 대담이다. 홍대용 자신을 대변하는 실옹과 전통에 매몰되어 진정한 진릴ㄹ 보지 못하는 당시의 조선 지식인을 모델로 한 허자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입장과 실학 정신, 과학 사상 등을 서술하고 있다. 제목에 나오는 의산은 의무려산의 준말로, 그가 북경 방문길에 그가 보고 들은 신세계의 경험이 이 책의 저술에 크게 기여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
[자료출처-대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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