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이란 무엇인가. 떠남이란 끊임없이 ‘나’에게 돌아오는 존재의 여정 아닌가.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碇泊) 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 황동규, ‘기항지1’
‘기항지’는 동일성에 대한 형상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나의 존재론적 근원이란 무엇인가. 나를 끊임없이 함정에 빠뜨리고 그러면서도 나를 나이게 하는 견고한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구속과 자유라는 ‘이중성’의 문제임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기항지는 여행 중인 배가 잠시 들르는 항구다. 따라서 기항지는 출발과 도착, 하강과 비상, 떠남과 돌아옴을 가리키는 표지다. 출발은 도착을 위한 떠남이고 돌아옴이다. 여기서 출발은 존재론적 위기를 상징한다. 이에 끊임없는 방랑과 고뇌를 통해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 오디세우스적 긴 여정long march이 우리를 기항지로 안내한다.
기항지에서 나의 존재의 집을 흔드는 것은 ‘한지寒地의 바람’이다. 나는 정박하고 싶지만 바람은 나를 방황의 길로 이끈다. 나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싶지만 바다는 나를 유혹한다. 나는 항구의 안에서 안정을 찾고 싶지만 눈송이가 나를 홀린다. 모두들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나 또한 끊임없이 욕망과 현실의 시소게임에 동참하는 여행자다.
이 시는 이렇게 ‘방황’과 ‘안정’이라는 욕망의 기표들을 끌어안으면서 동화同化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이화異化에 대한 강한 유혹을 견디게 하는 도저한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정박(碇泊) 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용골’은 존재의 본질을 지시한다. 이 존재의 본질을 가리키는 형이상학적 이미지가 '고개를 들고' 동일성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저항의 표지라는 데 이 시의 무게가 있다. 그러나 용골은 항구의 ‘안’을, 안정을 본능적으로 희구한다. 이 모순된 용골이 무의식적 기표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화자가 설정한 욕망에 동참한다.
‘ㅋ 용골, 너도 어둡구나!’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을 깊이 있게 응시凝視하는 대자적 경험을 마주한다. 그것은 곧 빛나는 타자他者의 발견이다. 욕망은 이렇게 타자를 통해 실현된다. 타자는 곧 나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 이 타자의 거울을 통해 나는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 욕망, 허위의 껍질을 벗어버리게 된다. 그 껍질은 바로 왜소한 자아다. 그리하여 껍질을 벗은 자아는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따르’는 확장된 자아가 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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