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를 둘러싼 잡음과 논란을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기초학력 미달’로 판정하는 기준의 합리성과 일관성이 의심스럽다. 알려진 바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나름의 절대평가 기준으로 기초학력 미달자를 가려낸다고 한다. 그런데 평가원은 일제고사보다 더욱 세심하게 관리할 것으로 보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출제 난이도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켜왔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2008년 일제고사(전집평가)를 2006년 일제고사(표집평가) 결과와 비교해 보면(2007년도분은 미발표) 초등·고등학교의 학력 수준은 비슷한데 유독 중학교 단계의 기초학력 미달자가 증가했다. 평가원은 이러한 결과에 관하여 어떠한 해석도 내놓지 않았는데, 내가 보기엔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초등-중학-고교로 갈수록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아지는 것을 놓고 “하향평준화의 결과”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안 장관도 명색이 사회과학 전공자인데, 공시적·통시적 대조군과의 비교 없이 한 번의 테스트 결과로 과학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내용이 어려워지므로 기초학력 미달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공인된 국제학력비교평가에서 계속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하향평준화’라는 낙인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일제고사가 절대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의 기능을 이중화시키는 것, 즉 최저학력과 최고학력 모두의 잣대로 활용하는 데 있다. 특히 최고학력의 기준을 ‘객관식·단답식 시험에서 빨리 답 맞히는 능력’으로 획일화시키고 일제고사라는 잣대로 학생들을 무한경쟁시키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일제고사의 기능을 기초학력 미달자 확인과 대책 마련으로 한정한다면,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전제 아래 일제고사를 시행하는 것도 나쁜 방법이 아니다.
사실 기초적인 읽기와 연산능력 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상급학교에서 정상적인 학습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태까지 우리나라 학교가 뒤처진 학생들을 얼마나 방치해 왔나를 돌이켜보면 낯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겨우 ‘특별보충학습’이라고 하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이것마저 일선 학교에서 예산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기 일쑤였다. 이런 학교의 무책임함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경우는 저소득층(비정규직)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일제고사를 계기로 기초학력 미달자에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것이 고마울 지경이다.
그러니 이제 ‘교사는 일제고사 없이도 금방 기초학력 미달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자. 이 말 자체는 맞지만, 지금까지 학교의 무책임함에 비춰보면 안이하기 짝이 없게 들린다. 이런 언행이 국민과 교육계 사이에 불신의 벽을 높였고, 전교조에 ‘반대만 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칠해왔다. 일제고사 반대 여부보다, 학교가 기초학력 미달자를 책임질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면, 핀란드처럼 세심하고 일상적인 성취도 점검과 보충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를 편의에 따라 이용하기만 할 게 아니라, 진짜 핀란드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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