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웃음과 눈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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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들과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신자들과 국민을 이끈 지도자였다.

김 추기경이 2003년 11월 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삶이 뭔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이런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김 추기경은 2007년 10월 모교인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서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자화상을 선보이면서 "내가 제일 바보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간은 저마다 잘난 척을 하고 욕심을 부리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겸손하고도 유머 넘치는 표현이었다.

엄숙한 장엄미사나 주교 서품식에서도 추기경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아 좌중의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 2002년 11월 21일 김운회 주교 서품식에서 그는 주교들의 성씨로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 나갔다.

"김 주교님이 주교된 것을 축하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뭐냐면 김씨가 주교 됐다는 것. (웃음) 우리 주교단에 김씨 주교가 5명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다 나가래요. 얼마나 외롭게 느껴지는지! 거기에 비해 산 김씨 10명이 죽은 최씨 한 명도 당하지 못하죠. 주교회의에 최씨의 기가 얼마나 강한지! 그래도 걱정이 덜한 것은 최씨 위에 강씨가 있어. (웃음)"

그러면서도 김 추기경은 "사실은 주교에게는 최씨도 김씨도 없다"며 "주교는 백성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다'라고 말하고 있다"며 좌중을 인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95년 KBS '열린음악회' 가톨릭편에 출연해서는 '애모'를 열창하는 등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김 추기경은 때로는 선문답 같은 한마디로 허를 찌르기도 했다.

1996년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만남의 잔치에서 한 청년이 "제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추기경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라고 답했다. 자신도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으니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김 추기경은 나라와 사람들 걱정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성직자이자 지도자로서 한평생을 살면서 한국 현대사 비극을 목격해야 했고 국민을 이끌기 위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PBS TV의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제51화에서 가장 마음을 아팠던 일이 1980년 광주의 비극이라고 토로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을 겪었을 때가 그때였어요. 사태가 그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도 모르는 상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먹혀들어가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것 같으니까…"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정부의 강경진압에 맞서 평화를 이끌어내기까지 과정은 험난했고, 김 추기경은 이 짐까지 떠안아 명동성당을 지켜냈다.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맨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내 뒤에 신부들이 있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을 만난다." (PBC TV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제63화)

또 김 추기경은 2005년 12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파문 이후에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성탄 특별대담에서 "한국 사람들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을 생각하며 10여분간 눈물을 흘렸다.

세상과 사랑을 한없이 사랑하고 품으려 했던 김 추기경은 '정직'이라는 꿈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안타까워했다.

"치유는 뭐 달리 없죠. 우직한 게 필요하다. 내가 우직이라고 표현해요. 우직한 사람은 정직해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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