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주식시장이 꼭지를 찍고 내리막길을 달리던 2000년, '400만원으로 10억 번 사나이'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주식투자의 귀재 김동일씨(33). 그는 과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2009년 한국 주식시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약관(弱冠)을 갓 넘긴 나이에 각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내리 4관왕을 차지하며 증권가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씨는 서울의 한 투자자문사 이사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제 30대 초반이 된 김씨는 단기매매 외길로 자산을 불려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젊은 부자다. 부동산 등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산규모는 50억여원에 이른다. 생활비로 월 1000만원을 쓰면서도 돈 쓸 곳을 가리는 자린고비형 부자다. 김씨는 슈퍼개미 원조이자 부(富)의 소매끝 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샐러리맨들의 우상이다.
아버지에게 한달 생활비로 200만원씩 꼬박꼬박 송금하는 효자이기도 한 김씨. 냉혹한 주식시장에서도 인간성을 되찾고 싶어 '주식과 결혼했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는 김씨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혼이다.
실전투자대회의 귀재 9명이 투자자문사를 차리고 둥지를 튼 서울 역삼동에 있는 8층짜리 빌딩.김씨의 사무실은 이 건물 5층에 있었다.
주위 정돈이 잘 돼 있는 10㎡ 남짓한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마치 항공기 조종석처럼 평판 LCD모니터 4대가 책상 위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두 개의 키보드가 책상 바닥에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실시간 뉴스가 뜨는 7인치 모니터까지 자리잡고 있다.
"책상 위가 깨끗하지 않으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편집증이랄까 징크스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닦고 또 닦는 것이 일과입니다."
◆ '로스컷' 자신없으면 주식시장 떠나라
김씨가 주식입문 3년만에 400만원으로 10억원을 모으고, 10년 간 50억원을 벌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로스컷'(손절매)이다.
주식 투자에서 '상식'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말이 있듯 김씨는 손실이 2%에 이르면 앞 뒤 안보고 무조건 손절매해 버리는 철칙을 주식 입문이후 10년 동안 단한번도 잊지않고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다.
"냉혈한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2% 손실이 나면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팔아 치웁니다. 심지어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본전까지만 내려와도 무조건 손을 턴 적도 있습니다"
김씨는 2000년 SK증권, 2002년 메리츠증권, 2003년 LG투자증권, 2004년 동양종금증권 실적투자대회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뒤 소감으로 '주식이 가장 쉬웠어요'라는 오만섞인 말을 할 정도로 운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누나의 쌈짓돈과 아버지의 전재산 2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쫄딱 말아 먹기도 했다. 대학생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며 주식에 손을 댄 시절이었다.
"재미삼아 주식에 빠졌다 돈 맛을 좀 봤더니 시쳇말로 건방져 졌던겁니다. 듣기좋은 말로 가치투자라는 폼도 잡아봤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실패는 계속됐고 이 때부터 김씨는 주식에 전력을 다하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철칙으로 세운 것이 '로스컷'이었다. 그는 10년 경력의 '주식쟁이'가 된 지금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김씨가 월 단위 수익률 점검에서 손실을 본 달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것도 철저한 로스컷 덕분이다.
"로스컷을 못한다면 주식시장을 당장 떠나야 합니다. 냉혈한들이 득실거리는 전쟁터에서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안봐도 백전백패입니다"
장밋빛 꿈을 품고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걸지 않고 어설프게 가치투자로 폼을 잡으려면 주식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주식 활황기에 연일 신문보도를 장식하는 주식관련 얘기나 돈 좀 벌었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현혹돼 주식시장에 몸을 담갔던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쓴맛을 보고 자의반 타의반 퇴출됐거나, 아니면 반토막 난 펀드를 부여잡고 '펀드통(痛)'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리먼 브러더스 쇼크가 일어났던 지난 해 10월 이후 주식시장에서 아마추어들은 거의 스스로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진정한 고수들 뿐입니다. 지금 준비없이 덤볐다가는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손절매를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그중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이라며, 로스컷을 하고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오를 주식을 얼마든지 살수 있다고 김씨는 강조했다.
◆ 주식투자는 '종목'을 사는 것이 아니라 '때'를 사는 것
김씨는 몸담고 있는 투자자문사에서 자신의 자산외에 300억원의 투자금을 굴리고 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그가 펼치는 매매패턴은 가치투자가 아닌 단기매매다.
"가치투자로 3년 뒤에 들고 있는 종목이 30%가 올랐다면 잘한 투자라고 볼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을 졸여야 하는 심적고통에다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남는게 없는 장사를 한 셈이죠"
김씨는 자신에게 주식을 좀 배워보겠다고 찾아오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고 한다.
"주식투자로 은행 이자정도의 수익만 챙길 마음이라면 쉽게 투자하면 됩니다. 하지만 은행 이자정도만 챙기려고 주식투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만져볼려고 하는 것인데 가치투자로는 절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김씨는 철저하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간에 들어가서 수익나면 팔고 빠져나오는 것. 그래서 주식은 종목을 사는 것이 아니라 '때'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황사 관련주가 떴습니다. 중국에서 가뭄이 계속되면서 황사 발생시기가 빨라진다는 보도는 이미 나왔었고 관련 경보도 울렸습니다. 정보를 빨리 캐치하고 그중에서 가장 센 대장종목에 몸을 실으면 수익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김씨는 정책테마주로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 이것이 단기매매의 핵심이다. 정책적인 이슈에 대해 어느정도 파급력이 미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고 그와 관련된 종목들이 '상승구간'에 진입하면 매수하는 전략이다.
특히 정책적 이슈로 볼 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롭고 획기적인 뉴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조건은 자기가 산 금액에서 2% 이내에서 반드시 로스컷을 해야한다 것.
"주식시장이 아무리 나빠도 상승종목은 있습니다. 특히 정책테마주에 묶이면 장이 조금만 받쳐줘도 강하게 상승합니다. 환율이나 대체에너지, 4대강 테마 등과 관련된 종목은 이익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이들 종목들이 이슈권에 접어들면 가장 상승폭이 클 것으로 믿어지는 대장 종목에 몸을 실었다가 수익을 내고 빠져나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가랑비에 옷젖는다는 말이 있죠. 손절매를 자주 하다보면 손실규모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종목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장이 다 빠지는데 상한가 종목을 샀다가 그런데도 손해보면 바로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장상황이 정말 안좋은 것을 반증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쉬는 것도 투자다'라는 증시격언을 되새겨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의 매매패턴은 초단기투자 30%, 스윙 30%, 장기투자 10%내외다. 그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는 항상 현재 시장상황이 어떤 지를 간파한 뒤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세 상승장인지, 하락인지 횡보인지, 코스닥 주도 장세인지, 중소형주가 이끄는 장인지를 정확히 분석해 내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
시장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정말 확실하다 싶으면 강한 베팅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의 수익률을 여러번에 걸쳐 얻는 것도 좋지만 정말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면 풀베팅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풀베팅을 잘하면 조그마한 상승 기회를 열 번 이상 잡는거나 마찬가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끝으로 좋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책 관련주는 절대 혼자 가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대장주를 잡지 못했다면 막 상승으로 추세전환을 하는 종목을 상승구간에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쓰는 주식매매 '시나리오'
김씨의 투자는 주식시장이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주식시장이 마감된 이후부터 다음날 매매할 중점 투자종목 3개를 고른다. 시간대별 매매패턴과 초단위의 결단력을 요구하는 모의 전장 매뉴얼을 완성하고 나서야 퇴근길에 오른다.
다음날 장이 시작되면 철저히 시나리오에 맞춰 트레이딩에 나선다. 매수한 종목이 30분만에 상한가로 치솟으면 추가매입에 들어가고 손절매 범위에 들어오면 가차없이 던지는 등 미리 작성해 놓은 매뉴얼에 따른다는 것.
김씨는 요즘도 점심식사를 모니터 앞에서 한다. 사무실이 아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다.
"어느 순간부터 높은 수익률이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모두 갖고 나면 더이상 행복을 찾을 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했고 이제는 외국시장에 관심을 갖고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기매매에 대한 비판에도 대해서도 김씨는 담담했다. 단기매매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힘없는 '개미'들의 피를 빠는 것 아니냐는 힐난에 대해 김씨는 "주식시장은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충돌하는 ' 끝없는 부딪힘의 현장'"이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이익을 얻는 합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다만 1%의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 듯 주식투자를 하려한다면 자신만의 세밀한 매매스타일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바둑처럼 복기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수익률이 좋았던 기간의 매매패턴을 꼼꼼히 떠올려보고 자신만의 특기와 강점을 추려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 6개월내에 이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식시장에서 떠나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겠다는 김씨. 그런 날이 언제쯤 오겠느냐고 묻자 김씨는 말없이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글=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사진=한경닷컴 김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