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09.07.12 23:15 / 수정 : 2009.07.13 01:02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했던 헤르만 불의 하산 길도 사투(死鬪) 그 자체였다. 식량이 떨어져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영하 20도 추위와 싸워야 했고 산소결핍증으로 환각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맸다. 정상에서 내려온 지 40시간 만에 생환한 이 스물아홉 청년이 80세 노인의 얼굴로 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 10일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한 41세 여성 산악인 고미영이 그제 밤 하산 길에 실족 추락했다. 2006년 히말라야 14개 고봉 등정에 나선 지 2년9개월 만에 11번째 고봉을 정복하는 최단기록을 세운 뒤였다. 하산할 때는 대원들이 서로 로프로 묶어야 하지만 눈사태와 낙석이 많아 연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색 헬기가 캠프1 100m 위쪽 지점에 누워있는 그를 확인했다. 그는 여성 14좌 완등(完登) 대기록을 놓고 한국 산악인 오은선, 오스트리아 칼텐브루너와 막판 경쟁을 벌였다.
▶고미영은 농림부 공무원으로 12년을 일하면서 암벽타기를 즐기다 1997년 전문 암벽등반가로 나섰다. 여성 암벽등반 1인자로, 아시아챔피언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해 2001년 세계 랭킹 5위에 올랐다. 160㎝의 단단한 체구에 폐활량이 좋은 그가 직업 산악인으로 변신한 것은 2005년 파키스탄의 6000m 고봉을 고소병 없이 등정한 뒤다. 작년과 재작년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고봉을 3개씩 연이어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미영은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앞서 "내가 극복하고 싶은 것은 남이 아니라 나"라고 했다. 히말라야 14좌 정복을 놓고 경쟁자 오은선보다 한발 뒤처진 상태에서 20㎏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 같은 강훈련을 거듭했다. 그는 2005년 히말라야 드리피카(6447m)를 오를 때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6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졌다가 극적으로 생환했었다. 부상한 몸을 이끌고 절벽을 다시 올라왔다고 한다. 그렇게 강인했던 고미영의 도전 정신은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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