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뉴스에서 초등학교 여학생이 슈퍼 주인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 당하는 것을 같은 동네 주민이 목격해서 신고했다는 내용을 보았다. 그 소식을 들으며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희롱 문제에 경악하면서도, 한 가지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그녀가 계속해서 같은 가게를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 여학생은 슈퍼 주인의 행위가 그렇게 나쁜 짓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바로 철저한 성교육이 선행되었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주목해야할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성교육은 지금까지도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의 경계도 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아이는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성교육을 받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본 이 들의 성교육은 충격적이다. 아무 것도 숨기려 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성에 대한 아이들의 의혹을 풀어주고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짚고 넘어간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과연 이정도까지의 교육이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적나라한 부분이 많다. 오른 쪽에 보이는 프린트물은 우리 아들이 첫 시간에 받았다며 얼굴이 상기되어 내 놓은 것이다.

일반적인 성적인 상식도 물론이지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성교육을 하면서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폭력에 대한 언급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 글을 읽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하기로 했다.

근친간의 성폭력 솔직히 드러내

아래 보이는 두 장의 프린트 물은 기초적인 교육이 모두 끝나고 마무리 단계에서 받아 온 것들이다. 하나하나의 예문을 보기로 들면 더욱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번역해보았다. 각각의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내고 만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써가는 숙제였다.

* 옌스와 칼로는 친구입니다. 그들은 함께 놀면서 끌어안기를 좋아하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 수지가 층계에서 놀 때 지나가던 이웃 아저씨가 종종 수지의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려고 해요. 아저씨의 이런 행동이 싫다면 수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고모는 이자에게 생일선물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많이 컸구나.”라고 말했습니다.

* 페어디난드는 친척들이 모이는 파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파티에만 가면 삼촌은 그와 둘이만 있으려 하고 고추를 만지려고 해요. 그리고는 삼촌은 페어디난드에게 말합니다.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면 안 돼!”

* 두 청소년이 하굣길에 에곤을 길모퉁이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에곤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 여기저기 더듬었어요. 그리고는 “너 만일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맞을 줄 알아!”라고 말했어요.

* 헬가는 샤워를 할 때마다 아빠가 이상한 느낌으로 사타구니를 만진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믿으려고 하지 않을 때 헬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프린트를 읽고 독일 성교육에 꽤나 익숙해진 나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6년 전 큰아이가 배울 때만 해도 없었던 내용이다. 근친간의 성폭력 문제 등 최근 자주 등장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의식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내용인 것 같았다.


아기를 갖는 사람의 마음 자세와 책임

아래 보이는 두 번째 프린트는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바로 전 페이지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차마 올릴 수 없었다. 너무 적나라한 섹스 장면을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적절한 표현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한 번도 한국말로 전해 본 적이 없는, 나 자신도 아직 버거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올릴 수 없는 페이지는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고 초등학교 3학년 성교육의 마지막 부분인 아기를 갖는 사람의 마음 자세와 이에 대한 책임에 대해 설명한 부분만 요약해서 번역해 보았다.












사춘기가 되면 남자는 아기를 만들 수 있고

여자는 임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아기를 낳으려면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교육을 받은 후 직장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기방과 각종 시설, 유모차, 유아용 자동차 의자,

기저귀, 넓은 공간과 충분한 시간,

그리고 사랑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때문에 아기를 갖기는 쉽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성교육을 시작할 때는 너무 충격적이고 소화하기 힘들어서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다. 도저히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된 아이와 그렇게 적나라한 내용들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도 많이 그 부분에서 세련되어져서 최근에 둘째가 시험 볼 때는 함께 킥킥거리며 질문을 주고받는 수준이 되었다.

7학년 때 콘돔 사용법 배워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림이나  일반적일 설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인 차이과 성적인 지식을 배우지만 5학년이 되면 막연한 이론뿐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큰아이가 7학년 때 피임법을 배우는 것을 보며 ‘아니 벌써?’라며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여러 가지 태마 중 콘돔 사용법에 대한 팀 아르바이트를 예로 들면 아주 재미있다. 그 주제를 발표 하겠다고 자원한 팀은 남자가 아니라 그 반 여자 아이들이었다.

콘돔 사용법에 대해 조사해 올 팀은 손들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자원했다고 한다. 설사 이런 시간이 있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생각해 보면 가정에서부터 성에 대한 수치심 없이 개방적으로 자란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녀들은 며칠 동안 시시덕거리고 몰려다니며 무엇인가 열심히 조사하고 준비하는 것 같더니 발표시간에 콘돔 한 상자와 커다란 당근들을 하나씩 들고 왔단다. 당근을 이용해서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하며 시범을 보여주고 준비해온 다양한 정보들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 말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남자 녀석들은 저건 니 꺼니 내 꺼니 킥킥거리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가 직접 학교 방문


이 정도는 7학년 단계의 성교육이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인영화나 적나라한 출산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활용하는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대부분 수업은 남녀 학생들이 함께 받지만 보다 깊이 있는 전문지식인 경우에는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해서 교육시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에대한 수치심을 없애가는 것은 물론 각종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배워나간다. 우리보다 열려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처음엔 여기 아이들도 성이란 것은 부끄럽고 어색한 부분이다.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처음엔 선생님 입에서 섹스의 S자만 나와도 모두들 얼굴이 빨개져서 킥킥거리는 바람에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힘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 발단은 우리 사회에서 ‘성’이라는 말은 점잖은 사람에게는 입에 담는 것조차 껄끄러운 단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육 속에서 자란 여자들은 성희롱을 당해도 본인 스스로 이를 고발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여자가 얼마나 정숙하지 못했으면......’이란 말이 여성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이상 위험에 올바르게 대처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 힘은 미약해지는 것이다.

성교육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애는 연습

어제 중국 칭화대 여대생들이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알리는 에이즈 예방 행사에서 남성 성기 모양을 한 모형에 콘돔을 씌우는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이 그래도 한발 앞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에 대해 격렬히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들으니, 중국도 아직 갈 길이 먼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독일학교의 중학교 1학년 정규 수업시간에 당연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장면이고, 또 길 가다 보면 에이즈 예방 포스터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회풍자 플레카드에도 흔히 등장하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일이다. 독일 학교의 성교육은 자세한 성적인 지식과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처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앨 수 있는 연습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나 일상생활 속에서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엄격한 법도 한 역할을 하지만, 여자들 스스로 과감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만약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다면, 아마 그 남자는 경찰에 잡혀가기 전에 그 자리에서 생매장부터 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성교육이야말로 우리 학교에서 하루 빨리 정규수업에 도입해할 시급한 제도다. 어른들이 쉬쉬하고 있는 폐쇄된 성문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씻지 못한 상처를 입을 수도, 혹은 잘못된 성적인 지식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이미 늦었다는 조급한 마음이 든다.


출처 : 독일교육 이야기
글쓴이 : 무터킨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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