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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체류자 사이에) 우리 정부가 아무 대응책 없이 뒷짐만 지는 형국에 대해 불만이 없지 않습니다.”
북한의 통행금지 조치로 개성공단에 발이 묶여 있다가 14일 오전 외국인 4명과 함께 귀환한 김향희씨는 이날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정부나 정치권은 (이번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김씨는 15일로 예정된 본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긴급 입출경 제도를 활용, 이날 오전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귀환했다. 긴급 입출경 제도는 사전 신고된 날짜가 아닌 다른 날짜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출경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김씨는 하지만 북한이 다시 일방적으로 통행 금지 조치를 내린 이후에도, “가스나 전기 공급이 안되고 부식이 원활히 수급이 되지 않고 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평상시와 분위기에 별 차이가 없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기업체 입장에서는 생산이라든지 납기, 고객 관리, 거래 등에서 문제가 된다”면서 “북한이 왜 통행 제한에 나섰는지 정확한 이유도 불확실하고 정부는 대응책이 없는 상황에서 현지 기업인이나 직원들이 아무 이유 없이 묶여있는 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환이 결정될 때까지 정부나 정치인은 진짜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다”면서 “회사 임직원과 북측에 있는 관리위원회, 출입국 사업부 쪽에서 귀환을 위해 많이 힘써 주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14일 오전 북한 개성공단에서 귀환한 김향희씨와의 인터뷰 내용.
-지금 심정은 어떻습니까.
“개성공단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크게 흔들림 없이 편안합니다.”
-내려오기 전에 그곳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개성공단 분위기는 평소와 비슷합니다. 가스·전기 공급이 안되고 부식이 원활히 수급이 되지 않고 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일상과 다름없습니다.”
-북쪽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사정을 설명해 내려올 수 있었습니까.
“저는 내일 결혼식이 있어요. 정상적인 입출국 과정을 밟고 내려온 건 아닙니다. 통상적인 절차로는 사전 신고를 하고, 관리위원회와 북측의 허락을 얻어야 통행이 허가가 되는데 저는 긴급 입출경 제도라고 하는 개성공단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긴급 입출경 제도란 어떤 것인가요.
“긴급 입출경 제도라는 건 사전 신고된 날짜 이외의 다른 날짜에 개인적인 사정, 뭐 예를 들면 부모님이 사망하셨다거나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주위 분들이 저희 관리위원회에 사정 설명을 해주셨고, 북측의 관리위원회에 제가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죠.”
-그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군요.
“몇 차례 사용되었던 전례는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여야 하고 또 북측의 승인이 떨어져야 되니까요.”
-북쪽에 있을 때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불안이나 걱정 보다는 출입제한이 된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고 지난 월요일에도 있었고 오늘 또 이렇게 재발이 됐는데 기업체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잖습니까. 생산이라든가 납기, 또 고객 관리, 거래 등에서 문제가 되는데 정부가 대응책이라는 게 없이 뒷짐만 지는 형국에 불만이 많은 거죠. 기업의 한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으로 뭐 불안했다거나 걱정이 됐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분들하고 같이 내려왔는데, 그 외국인들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외국인 근로자는 언론에도 나왔듯이 호주, 중국 이런 분들인데, 각각 다른 업체 분들입니다. 다른 업체 분들이고 이분들이 사실상 어제 입경이 됐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어서 오늘 나오게 됐습니다. 이게 왜 그랬느냐면 어제 관리위원회에서 입경은 총국으로 통보가 되었는데, 총국에서 외국인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합니다. 몰랐다가 관리위원회에서 강하게 어필을 하니까 저와 같이 내려오게 된 것이죠.”
-긴급 입출경 제도를 이용하시면서 내려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까.
“뭐 확신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희망은 나가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었고,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저는 결혼식이 있으니까 꼭 나가야 한다는 게 있었죠.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또 제 사정을 다들 잘 이해해줘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 주위 분들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분들을 말합니까.
“일단은 정부나 정치인은 진짜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고요. 진짜 아무것도 해준 게 없고. 제가 피부로 느끼기로는 회사 임직원 분들이 저를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 설명해주시고, 북측에 있는 관리위원회, 출입국 사업부 쪽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내일 결혼식이 있으신데, 준비는 잘 하셨습니까.
“준비를 잘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며칠을 묶여있다가 이제 내려왔는데요. 제가 지금 결혼 준비 때문에 수원에 내려가봐야 해서 더 길게는 통화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통행금지 조치로 개성공단에 발이 묶여 있다가 14일 오전 외국인 4명과 함께 귀환한 김향희씨는 이날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정부나 정치권은 (이번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김씨는 15일로 예정된 본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긴급 입출경 제도를 활용, 이날 오전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귀환했다. 긴급 입출경 제도는 사전 신고된 날짜가 아닌 다른 날짜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출경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김씨는 하지만 북한이 다시 일방적으로 통행 금지 조치를 내린 이후에도, “가스나 전기 공급이 안되고 부식이 원활히 수급이 되지 않고 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평상시와 분위기에 별 차이가 없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기업체 입장에서는 생산이라든지 납기, 고객 관리, 거래 등에서 문제가 된다”면서 “북한이 왜 통행 제한에 나섰는지 정확한 이유도 불확실하고 정부는 대응책이 없는 상황에서 현지 기업인이나 직원들이 아무 이유 없이 묶여있는 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환이 결정될 때까지 정부나 정치인은 진짜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다”면서 “회사 임직원과 북측에 있는 관리위원회, 출입국 사업부 쪽에서 귀환을 위해 많이 힘써 주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14일 오전 북한 개성공단에서 귀환한 김향희씨와의 인터뷰 내용.
-지금 심정은 어떻습니까.
“개성공단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크게 흔들림 없이 편안합니다.”
-내려오기 전에 그곳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개성공단 분위기는 평소와 비슷합니다. 가스·전기 공급이 안되고 부식이 원활히 수급이 되지 않고 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일상과 다름없습니다.”
-북쪽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사정을 설명해 내려올 수 있었습니까.
“저는 내일 결혼식이 있어요. 정상적인 입출국 과정을 밟고 내려온 건 아닙니다. 통상적인 절차로는 사전 신고를 하고, 관리위원회와 북측의 허락을 얻어야 통행이 허가가 되는데 저는 긴급 입출경 제도라고 하는 개성공단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긴급 입출경 제도란 어떤 것인가요.
“긴급 입출경 제도라는 건 사전 신고된 날짜 이외의 다른 날짜에 개인적인 사정, 뭐 예를 들면 부모님이 사망하셨다거나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주위 분들이 저희 관리위원회에 사정 설명을 해주셨고, 북측의 관리위원회에 제가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죠.”
-그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군요.
“몇 차례 사용되었던 전례는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여야 하고 또 북측의 승인이 떨어져야 되니까요.”
-북쪽에 있을 때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불안이나 걱정 보다는 출입제한이 된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고 지난 월요일에도 있었고 오늘 또 이렇게 재발이 됐는데 기업체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잖습니까. 생산이라든가 납기, 또 고객 관리, 거래 등에서 문제가 되는데 정부가 대응책이라는 게 없이 뒷짐만 지는 형국에 불만이 많은 거죠. 기업의 한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으로 뭐 불안했다거나 걱정이 됐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분들하고 같이 내려왔는데, 그 외국인들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외국인 근로자는 언론에도 나왔듯이 호주, 중국 이런 분들인데, 각각 다른 업체 분들입니다. 다른 업체 분들이고 이분들이 사실상 어제 입경이 됐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어서 오늘 나오게 됐습니다. 이게 왜 그랬느냐면 어제 관리위원회에서 입경은 총국으로 통보가 되었는데, 총국에서 외국인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합니다. 몰랐다가 관리위원회에서 강하게 어필을 하니까 저와 같이 내려오게 된 것이죠.”
-긴급 입출경 제도를 이용하시면서 내려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까.
“뭐 확신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희망은 나가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었고,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저는 결혼식이 있으니까 꼭 나가야 한다는 게 있었죠.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또 제 사정을 다들 잘 이해해줘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 주위 분들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분들을 말합니까.
“일단은 정부나 정치인은 진짜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고요. 진짜 아무것도 해준 게 없고. 제가 피부로 느끼기로는 회사 임직원 분들이 저를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 설명해주시고, 북측에 있는 관리위원회, 출입국 사업부 쪽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내일 결혼식이 있으신데, 준비는 잘 하셨습니까.
“준비를 잘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며칠을 묶여있다가 이제 내려왔는데요. 제가 지금 결혼 준비 때문에 수원에 내려가봐야 해서 더 길게는 통화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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