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호,"선물 시스템매매로 23배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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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로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던 1998년. 지민호(46·사진) 에이스투자자문 회장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투신사 운용팀장이란 직책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10년 넘는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한 지금. 그는 업계에서 ‘시스템 펀드’의 고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 회장은 '숨은 고수'로 통한다. '압구정 미꾸라지'로 잘 알려진 윤강로 KR선물 회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적도 있다고 한다. 환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그가 이처럼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 IMF환란 좌절 딛고 시스템 매매 개발에 ‘올인’
“시장은 결코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도 손실에서 피해갈 수 없었죠. 하지만 이 같은 실수나 착오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나만의 시스템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주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 시스템대로 투자하자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투자비법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지민호 회장은 “시스템투자는 종목을 고르거나 장세 판단을 하는게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투자방법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문을 텄다.
지 회장은 증권맨이 아닌 회계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하던 시절, 공인회계사 2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졸업하기도 전에 채용돼 삼일, 세동회계법인 등을 거치며 9년동안 회계사로 근무했다.
회계사 정도면 안정적인 직업인데, 어떻게 전직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그는 “회계사라는 직업에 애착이 있었지만, 펀드매니저가 더 좋아보였습니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더 큰 매력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9년, 남들이 안주를 꿈꾸었을 법한 시점에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1993년 쌍용증권 조사부 애널리스트를 거쳐 1995년 LG투자신탁(입사 당시는 LG투자자문) 주식운용팀장까지 올라갔지만, IMF 관리체제인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LG투자증권 지점으로 옮겨야 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희생양이 됐던 외환위기의 후폭풍을 그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남들과 달랐다. 좌절감에 젖어들지 않았다. 그대신 지점에서 와신상담하며 현재 자신을 고수로 올려놓은 선물 매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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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현물이 아닌 선물에 눈을 돌린 것일까. 궁금했다.
“LG투자신탁에 근무할 때도 선물에 관심이 있어 조금씩 했었습니다. 당시에 국민연금에서 8개의 기관에 선물 투자를 위탁한 적이 있었는데요. LG투신이 수익률 20%를 제일 먼저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증권사 지점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는 선물 투자를 계속했다. 당시 현물 시장은 IMF의 충격 때문에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선물이라면 기회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선물투자 특성상 이익이 나면 크게 나지만 반대로 손실도 크게 날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1999년 초부터 경제가 IMF 그늘에서 벗어나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1998년 말에 나왔었죠. 증시도 실제로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절대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거예요. 경기지표는 하나도 안좋은데 엔화가치 상승과 저금리 등 금융지표만 증시에 우호적인 상황이라는 거였죠.”
이 말을 듣고 앞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롱플레이’를 하던 그는 하락에 베팅하는 ‘숏플레이’로 전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은 단기 급등세를 탔고, 지 회장은 큰 손실을 입었다.
“소위 ‘인텔리전트하다’는 사람들이 비관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시장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투자를 하다보면 다른사람의 시각에 의해 내 소신껏 투자를 하지 못하는 때가 생기고, 그럼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이때 느꼈습니다.”
컴퓨터가 내는 신호대로 투자를 결정하는 ‘시스템 매매’라는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그 방법도 몰랐지만 지 회장은 직감적으로 시스템 매매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자신만의 매매 시스템을 만들었던 증권사 지점생활 시절을 지금껏 가장 고생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당시 지점은 장이 끝나면 업무가 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오후에 볼일을 보거나 포커, 고스톱 등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장이 끝나고도 지표 분석에 매달렸습니다.”
눈여겨보던 데이터를 찾아 장시간 분석하고 모의실험을 하면서, 주식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 투자를 하면 ‘매 순간’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시스템 매매를 하려면 설계 단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요소를 어떤 로직에 적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습니다.”
지 회장은 “현재 일반적인 시스템 매매는 주가지표 등 가격변수를 기초로 하고 가끔 거래량을 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외국인 매매, 프로그램 매매 동향 등 수급관련 지표를 더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신호가 나올까 두려워 화장실도 마음놓고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 구축이 끝나도 그의 고민은 계속됐다. 바로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신호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의심’이 적잖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점에 있을때는 고객들이 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투자와 병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병행을 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시장의 방향과 시스템의 시그널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날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주가의 상승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적당한 시점에 청산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시스템의 신호를 따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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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호 회장은 개인자금을 굴리기 위해 1999년 지점을 나와 2000년 선물투자사무실인 ‘에스인베스팅’을 열었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지 회장과 컴퓨터 관련 인력 2명이 전부였다.
“1999년은 닷컴 버블이 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아는 분이 같이 닷컴회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는데,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월 30%의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이후 딱 11개월 만에 23배의 이익이 났죠.”
1000만원만 투자해도 2억3000만원에 되어 돌아오는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당시 선물가격이 상한가와 하한가를 밥먹듯이 치던 시기여서 고수익이 가능했습니다. 이후 이만큼은 아니어도 연평균 두자릿수의 수익률을 꾸준히 거뒀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 시장은 별다른 추세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03~2004년쯤 시장에서는 시스템 매매가 별 소용이 없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 뿐이었다는 게 지 회장의 설명이다.
“선물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한지 10년이 지났는데, 매년 이익이 났고 특히 장세의 변동이 클 때는 더욱 성과가 좋았습니다.”
지 회장은 현재 자신의 정확한 재산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단순히 ‘대박난 투자자’라고 인식되는게 싫다는 눈치였다.
그는 “에이스투자자문의 자본금이 62억원인데, 이 중 저의 지분율은 68.5%(약 42억원)입니다. 이는 일부이고, 더 벌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지 회장은 2006년까지 개인 사무실을 운영했고 지인들과 함께 같은해 5월 에이스투자자문을 출범시켰다.
재야에서 계속 큰 돈을 벌 수 있었을텐데, 굳이 제도권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묻자 “자신이 개발한 시스템을 사업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매 시스템도 한단계 발전시켰다.
“지점 시절에 만들었던 선물 매매 시스템은 장중에 매매하고 일체 잔고를 남기지 않고 청산하는 방법으로, 하루 중 수차례 진입 진출을 반복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투자만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었죠. 1분 정도의 신속한 매매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굴릴 수 있는 자금 규모가 100억원 내외로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일반대중의 위탁을 받아서 투자를 하려면 수천억원을 다룰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분야도 선물에서 주식현물로 넓혔다. 작년 11월에 운용을 시작한 에이스투자자문의 주식형 시스템 펀드는 현재 누적수익률 39.64%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을 24.30%를 초과한 수치다.
그는 현재 에이스투자자문 회장이자 최대주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사업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개발한 시스템의 사용권을 준 상태로, 현재 다른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지 회장은 “시스템 투자를 성공시킨 후 해외 진출을 하는게 목표입니다. 선물, 주식뿐만 아니라 금리시장이나 해외시장에 관련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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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아닌 ‘분석’으로 투자해야
“투자를 할 때는 무엇보다 소신을 가져야 합니다. 진입할 때 미리 청산할 조건을 정해놓고, 이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과거 그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최근 경제와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부탁하자 지 회장은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투자는 심리적인 측면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익에 대한 욕심이나 손실에 대한 공포에 좌우되면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레버리지 효과가 큰 선물투자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감정이 아닌 냉철한 분석을 통한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로 그는 과거 사례를 한가지 꼽았다.
“1998년 여름 코스피 지수가 최저치로 내려앉았을 당시 기관 자금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형편없었습니다. 아무도 추가불입을 하려고 하지 않았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놓고보면 그때가 투자 기회였습니다.”
코스피 지수가 1000선을 밑돌았던 작년도 마찬가지였다는게 그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그는 현재 주식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 회장은 장세 진단을 따로 하지 않는다면서도 “지금은 유동성 장세라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유동성 장세의 경우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알수 없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투자해 시장에 맡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유동성 장세 이후에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위험 관리에 집중해야 됩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쯤에 실적 장세가 올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대비해 실적호전주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합니다”고 말했다.
반대로 시장의 침체기가 오래 지속된다면 절대적인 저평가주가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지 회장은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원칙적인 이야기’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쏟아지는 재테크 서적에 한번쯤 나왔을법한 얘기지만, 역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는 것이 성공적인 투자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한경닷컴 문정현/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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