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 '인터넷 정치' 재개하나
"정치는 거짓말ㆍ정치자금ㆍ이전투구 수렁"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공개적인 언급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작년말 형 건평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감췄던 노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홈페이지에 "형님이 재판을 받고 있는 마당이니 국민에게 오로지 송구스러울 따름"이라고 말문을 연 뒤 두 달 넘게 이어온 침묵을 깼다.

또 지난달 22일 퇴임 1년을 맞아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글을 통해 "앞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글을 올리겠다"며 인터넷 소통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5일 `정치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실정치인이 처할 수있는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 고독과 가난 등 5가지 수렁과 난관을 자세히 언급했다.

 
`정치인을 위한 변명' 차원에서 작성했다고 밝힌 이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하지 마라'고 진담으로 말한다"며 "노력과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정치권의)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지기 마련"이라며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지고 국민들로부터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치인의 고독과 가난에 대해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같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가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돼 버렸기 때문"이라며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한국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인터넷 정치'의 재개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노전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건평씨 문제 때문에 국민이 여전히 노 전 대통령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당분간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한 시점 아니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측은 퇴임후 시민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구상에 따라 평소 생각을 피력한 것이지, 현안 언급으로 봐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측은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현실정치인에 대해서는 온갖 굴레가 덧씌워져 있어 정치인은 물론 시민의 의식전환도 필요하다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 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저는 언제 이 실패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거짓말의 수렁 -거짓말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유권자나 참모들과 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거짓말, 근거 없는 보도, 풍문에 상처를 입고 진실을 밝혀 보겠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곧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보면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차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거짓말에 익숙해집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소재로 우스개꺼리를 만들어 웃고 즐기고 돈벌이까지 합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저 농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분노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양심도 인격도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돈의 수렁 -돈정치는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조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후원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지역을 관리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한참 부족합니다. 원외 정치인의 사정은 참담하다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가끔 뭘 먹고 사느냐? 세금은 얼마나 냈느냐? 이런 질문이라도 받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됩니다. 원외 정치인은 둘러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를 할 방법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게는 연금제도도 없습니다. 결국 노후는 대책이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샘이 깊은 후원자라도 있는 복이 많은 정치인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어디 많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만 정치를 하는 나라 정치가 과연 잘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언젠가 정치와 돈에 관한 이야기도 글로 써볼 작정입니다.-

사생활의 노출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인 일도 정치인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의 자유도 없습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골프를 치는 일도 세상 분위기와 언론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실수가 아니라도 실수가 됩니다. 저격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검증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보호의 한계가 너무 모호하여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전투구의 저주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구조가 본시 싸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당을 서로 나누어 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치는 무너집니다. 정도의 문제일 뿐입니다. 독재 시절에는 여야의 싸움이 전쟁이었습니다. 감시하고 조사하고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 직장생활도 못하게 했습니다. 야당은 정치는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했습니다. 패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 전쟁인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싸움이 전쟁에서 게임으로 바뀌었습니다. 패자라도 정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싸움입니다. 민주주의라고 싸움이 항상 규칙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정쟁을 전쟁으로 하던 적대적 정치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 지기 마련입니다. 욕설, 몸싸움, 거짓말, 중상모략, 뒷조사 이런 악습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 지고 국민들로 부터는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과 가난 -좀 막연한 짐작입니다. 이미 그런 처지에 빠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돈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통의 정치인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형편이나 관계도 과거와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치를 하는 동안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생각과 정서도 달라지기도 하고, 손을 자주 벌려서 귀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은 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저의 말대로 정치할 사람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정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신뢰가 이런 속도로 계속 떨어지면, 정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자고 권유를 하고 다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빠져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떤 정치인이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변명으로서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도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별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 상한다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이야기는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조건에 있지 않은 보통의 정치인들은 거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없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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