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길태의 중학교 때 생활기록부 사진(왼쪽)과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증명 사진(오른쪽). 중학교 생활기록부(아 래)에는 활달하고 명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박국희 기자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 툭하면 거짓말하던 외톨이
11년 교도소 생활도 난폭… 7차례 징계
부산 여중생 이모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작은 잘못에도 엉뚱한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옆 동네에서 호프집을 하는 친구는 "작년 10월 처음 만났는데 자기를 김길태가 아닌 '김상태'라고 소개해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지냈다"며 "나중에 알고 놀랐고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11일 부산 사상경찰서에서 이틀째 조사를 받은 김길태는 이양과 관련된 혐의는 여전히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했다.
김길태의 중학교 생활기록부 1학년 치는 "남성적이고 활달하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고 돼 있었지만 2학년 때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면이 보인다"고 바뀌었다. 3학년 담임교사는 김길태의 성격에 대해 "신중한 가치판단이 요구된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처럼 활달하고 운동 잘하던 김길태는 중학교 때는 겉으로는 쾌활했지만 말수가 적어지고 어두운 구석이 늘었다. 어머니 윤모(66)씨는 "길태가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난 어디서 왔어?'라고 가끔 묻곤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떨어진 너를 내가 받았다"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김길태가 '출생의 비밀'을 안 것 같았다고 가족들은 생각했다.
딸만 있던 종손(宗孫)인 아버지 김모(69)씨는 33년 전 교회 앞에 버려진 2살 김길태를 데려다 키웠다. 외삼촌(55)은 "'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길태라 이름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양부모는 길태를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나 김길태는 양부모가 끝까지 숨기려 했던 비밀을 누구에게 전해들었는지 알아내고 말았다.
1993년 부산의 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김길태는 그해 10월 스스로 자퇴서를 낼 때까지 40여일을 결석했다. 담임교사는 '태만으로 인한 결석'이라고 자퇴서류에 썼다. 김길태는 자퇴서에 "공부를 하기 싫어서입니다"라고 적었다. 지능검사 결과는 중학교 시절 85, 고등학교 때는 86였다. 하지만 워낙 성의없이 검사받은 수치였다. 자퇴하던 1학년 때 성적은 49명 중 49등이었다. 반면 운동엔 탁월했다. 중2 때 이후 체력검사 등급은 1급 아니면 특급이었다. 몸이 민첩하고 빨랐다고 교사들은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길태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덕포동 옥탑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모습만 가끔 눈에 띄였을 뿐이었다.
김길태는 1996년 폭행 혐의로 소년심사분류원에 갔다. 그 뒤부터 김길태는 33년 인생 가운데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교도소 안에서도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가끔씩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을 보여 7차례나 규율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정신질환자로 분류돼 특별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 교도소로 2년여 이감되기도 했다.
출감했다가 1997년 9세 여아 성폭행 미수 혐의로 다시 징역 3년을 살고 나온 뒤부터 김길태는 더욱 숨어지냈다. 몇날 며칠을 옥탑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외삼촌은 "친구는 물론 친지들과도 교류가 거의 없었다"며 "누나들과도 연락이 끊겨 조카 얼굴도 한번 못봤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혼자 은둔 생활을 하면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 전형적인 '프레데터(predator·포식자)형 범죄자"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먹잇감이 있으면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격해 가장 위험한 유형의 하나"라고 했다. 김길태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인간관계를 쌓지 못했고, 학교도 중간에 그만 둬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을 잃어버린 외톨이가 되면서 이런 성향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출소한 뒤 또 2달간 은둔을 한 김길태는 슬슬 '먹잇감'을 찾아 익숙한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꽃다운 소녀를 아무렇게나 희생시키고 말았다.
지난 10일 14일만에 경찰 붙잡혀 조사를 받는 김길태는 그럼에도 느긋하면서 태연했다.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만 쳐다봤다. 조사실은 낯설지 않았다. 김길태는 수사관에게 담배만 자꾸 달라고 했다. 경찰이 진술을 듣기 위해 담배를 주면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피워물었다.
저녁이 되자 김길태는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보름동안 라면만 먹었다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다. 꾸역꾸역 자장면을 입에 넣다가 반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달라고 했다.
경찰은 김길태에게 목욕을 먼저 하고 잠을 잔 뒤 다음날 조사를 하자고 권했다. 장기간 도피로 지친 몸 상태를 고려해서다. 그러나 그는 호기를 부렸다. "그럴 것 없어요. 조사부터 받죠"라고 했다.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할 말은 다 했다. 이양 살해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살인과 관련없는 빈집에 들어간 대목에선 "빈집에서 라면을 해먹고 용변도 해결했다"고 술술 얘기했다.
김길태는 오전 1시까지 조사받은 뒤 유치장 목욕탕에서 샤워를 했다. 때절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경찰이 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전 2시쯤 자리에 누운 김길태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했다. 1시간이 지난 새벽 3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경찰은 독방이 아닌 3명이 함께 지내는 방에 넣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1일 세끼 메뉴는 백반과 짬뽕, 된장찌개였다. 그는 모두 깨끗하게 비웠다. 경찰 관계자는 "김길태가 하루가 지나고 기운을 차린 듯 조사 도중 수사관을 째려보며 반항하고 있다"며 "담배를 피우며 진술은 하지 않아 담배를 주지 않으니까 이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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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이날 “현장 검증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경찰이 이 양 집을 알고 있는지 묻자 “모른다”고 답했고 이 양 집 다락방 창문을 통해 들어갔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하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양의 살해 장소로 알려진 무당집에 도착해서 김 씨는 성폭행, 살해 과정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4일 진술한 것과는 상반된 태도였다.
하지만 이양의 시신을 유기한 사실은 시인했다. 김 씨는 “자고 일어나 보니 이 양의 옷이 시신 옆에 있었다. 끈으로 발목을 묶어 가방에 넣었는데 다 들어가지 않았다. 비닐봉지에 이 양의 옷을 넣었다”고 말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장면은 김 씨의 거부로 대역이 동원됐다.
특히 시신을 물탱크에 유기한 이유에 대해 김 씨는 “추울까 봐 미안해서 우선 물탱크 안에 시신이 든 가방을 던져 넣고 나와서 대야에 석회가루를 탔다. 이후 물탱크에 석회가루, 옷이 담긴 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고 말했다.
참관 중인 검사가 당시 시각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검사님, 당시 시계를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있었겠느냐”고 오히려 검사에게 반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수사본부는 이날 이 양의 시신을 유기한 물탱크 안에 있던 이 양의 옷가지 등이 담긴 비닐봉지에서 수거한 휴지와 석회가루 인근에서 확보한 후드티 등에서 김 씨의 DNA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체와 함께 물탱크 안에서 수거한 이 양의 옷과 신발이 들어있던 검정색 비닐봉지에서 휴지 2점을 수거했는데 여기서 김과 이 양의 DNA가 나왔으며 또 물탱크 옆 석회가루를 섞었던 장소 옆에서 발견한 검정색 후드티에서도 김의 DN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부산여중생 납치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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