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가 <라디오스타>에서 동료연예인 권선국의 이혼을 언급하면서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콘셉트를 '독설'로 설정한 탓인지 그의 입은 방송수위를 늘 위태롭게 넘나들었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주변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폭로성 발언을 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김구라의 연예인 '독설'은 인터넷방송 때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에 김구라는 지금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김구라는 원래 정치인들에 대한 독설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지상파에 등장하면서부터 이런 '정치적'인 독설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방송가의 분위기가 이미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방송에서의 다양한 견해와 심지어 독설을 통한 희화화를 용납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서 '정치후진국'에 살고 있는 현실이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보면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지켜낸 '민주주의'는 딱 절반 밖에는 성취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라고 해도 다양한 의견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성공한 사람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면 '성공도 못한 찌질이들의 궁상'으로 몰아부칩니다. 그래서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를 쥔 이상 일반 서민들과는 '급'이 다른 대우와 대접을 받습니다. 거기에다 '독설'을 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골출신이 서울 교육에 대해서 뭘 안다고.."
가난하고 못난 찌질이들이 권력을 가진 '귀하신'분들에 대해서 욕좀 하면 안 됩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 십년 간 안 됐습니다. 심지어 노래 가사에 '간접적인' 내용 때문에 '금지곡'이 돼 버렸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권력자들의 절대부패에 대해서도 관대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머리카락'조차 기르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고, 짧은 치마조차 마음대로 입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살아 온 세대들에게 인터넷은 그야말로 '돌파구'였습니다. 그 최초의 주인공이 바로 '김구라'였습니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계를 가리지 않고 당시 언론에 회자되던 사안에 대해서 거침없이 독설을 내뿜었습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에 했던 경솔한 발언으로 김구라의 '도마'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지난 2003년 11월 3일,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고교 평준화제도를 비판하면서 윤덕홍 교육부총리를 "시골출신"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당시 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교육부총리가 본연의 임무인 유치원, 초등, 중등교육은 도외시한 채 대학입시 제도에만 매달려 있다"며 "부총리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필요없는) 직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장은 또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 하나는 노조이고 또 하나는 전교조"라며 노조와 전교조도 비난했습니다. 이 시장은 이어 "부실 교육의 핵심은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이 모두 시골출신이라는 데 있다"며 "교육부총리는 대구 출신인데 시골 중학교 교사 하다 대학교수하고 무슨 협회장 거쳐서 부총리까지 올라왔다. 이런 사람들은 서울의 교육실정을 모른다"고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김구라, 이명박 시장 향해 "멸치대가리, 노가다 십장출신이.."
이 발언으로 이명박은 곤경에 처했지만 그저 '말실수'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뜨거웠습니다.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김구라입니다. 그는 구봉숙(김구라, 황봉알, 노숙자)이라는 인터넷 시사방송을 통해서 '통렬히' 욕설과 독설을 함께 날렸습니다.
김구라는 "그렇게 따지면 이명박 시장은 뭐예요. 현대건설 출신 아녜요? 현대건설..그거 무슨 노가다 십장 출신 아닙니까?"라며 말문을 열었고, 이어 "현장에서 모래짬밥 먹고 튀다가 주영이형(정주영 명예회장) 눈에 띄어서 이렇게 된거 아닙니까? 자기는 무슨 *발, 건설회사 노가다 출신이 무슨 시골출신 운운하는거야"라며 거침없이 욕설을 쏘아댔습니다. 심지어 생김새까지 거론하면서 "멸치대가리"라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기존 방송에서는 얌전 빼고 "이 시장의 발언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정도의 멘트를 할 때, 김구라는 인터넷에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는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와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웠습니다.
시대가 바뀌니 언론도 바뀌고, 권력이 바뀌니 사상도 바뀌나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상황이었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줄곧 '민주화'와 '자유'에 대해 관대하던 분위기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직설적인' 인터넷 방송을 용납하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한나라당이 상정하려는 미디어법으로만 보더라도 '욕설'을 당한 상대방의 동의가 없어도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판단되면 그대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상대가 가만 있을 리 없고, 경찰은 당연히 처벌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김구라의 독설이 그리운 것입니다. 아니 그의 '독설'이 그립다기 보다는, 그와 같은 '독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겠지요. 지금 그가 인터넷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6년 전과 같은 그 독설은 듣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지금처럼 주변의 연예인에 대해 '이혼했다'며 신변잡기를 폭로하는 수준 밖에 더 하겠습니까.
왕비호와 김구라, 모두 방송에서 '낮은 수위'의 독설 밖에는 할 수 없는 처지들입니다. 그렇다고 '인터넷'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걸 눈치봐야하는 시대입니다.
글 하나 잘 못쓰면 그대로 경찰에 잡혀가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시위를 할 때 '마스크'를 쓰면 그것도 현행범으로 잡혀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 5.18 민주화 운동하던 군부독제시절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민주주의 후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노동가'와 '진군가'를 명동시내에서 듣게 될 날이 올 것 같기도 하고, 각목과 화염병을 들고 마스크를 쓰고 시내를 달려가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 주권이 점차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옮겨가는 느낌이 듭니다.
특권 계층에게만 '자유와 민주주의'가 해당되며, 하층민들은 갈수록 그 '특권'을 차지하려고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김구라의 '그때 그 독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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