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최정아 기자] 나이가 주는 내공이란 이런 것일까. 50대를 맞이한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4050 중년남성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꼰대’(늙은이를 이르는 은어)로 부르며 배척하던 부정적 시선이 아재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친근함으로 희석되고 있는 것.
아재에서 파생된 ‘아재파탈’(아재+옴므파탈의 합성어) ‘아재미’(아재+아름다울 미의 합성어) 등 신조어도 여럿이다. 이런 흐름을 읽었을까. 영화계도 방송계도 ‘아재 열풍’이 한창. 기대작엔 아재 배우가 꼭 한 명 이상 캐스팅 되어있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아재 배우들의 작품이 사랑받은 한 해다. ‘럭키’ 유해진, ‘범죄도시’ 마동석 등 내로라하는 개성파 배우들의 활약이 도드라진 것.
최근에는 송강호를 시작으로 설경구, 김윤석에 이르기까지 50대 배우들이 릴레이를 하듯 출연 영화가 개봉,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50세)을 맞이한 이들.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은 이름 석 자만으로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고마운 배우들이다.
▲1967년생 올해 51세…송강호
블랙리스트도 송강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송강호는 이번 여름 개봉해 2017년 첫 천만 영화에 등극한 ‘택시운전사’에 출연했다. 이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한 ‘변호인’에 출연해 정치판의 분위기를 읽은 그. 피해갈 수 있었지만 기꺼이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의 핸들을 잡았다.
사실 송강호는 ‘변호인’을 통해 주변인들이 받은 불이익을 목격했다. 그는 최근 한 뉴스프로그램에 출연해 “‘변호인’을 제작한 제작자나 투자자 분들이 곤란을 받고, 불이익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겉으로 드러난 증거가 없어서 단정지을 순 없지만, 무서운 것은 그런 소문만으로도 블랙리스트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이라 짚었다.
더불어 ‘변호인’ 이후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차기작 섭외 전화가 오지 않는다. 데뷔 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난색을 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뀌기 전 ‘택시 운전사’를 선택했다. 정치적 두려움은 없었다. 단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굳어질까 고민은 했다고 한다.
송강호의 큰 결심은 무려 12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영화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갔다. 제21회 판타지아 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 수상했다. 2007년 ‘우아한 세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10년 만의 쾌거다. 내년 2월 열릴 제90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는 외국어 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lm)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 전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 출품된 작품과 경쟁한다.
▲1967년생 송강호와 동갑…설경구
역전의 용사다. 사실 설경구는 근 4년동안 영화 성적이 좋지 않았다.
앞서 설경구는 영화 ‘소원’ 이후 ‘나의 독재자’ ‘서부전선’ ‘루시드 드림’ 그리고 지난 5월 개봉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까지 자신의 주연작으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흥행작을 만들지 못했다. 매년 한 작품 이상씩 내놓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것. 배우 입장에서는 난감할 일이다.
흥행 갈증을 씻어내려준 작품은 ‘살인자의 기억법’. 265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가뿐하게 넘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 중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화제작이었던 외화 ‘겟아웃’도 넘었다. ‘석조저택 살인사건’ ‘장산범’ ‘하루’ ‘해빙’ ‘시간위의 집’ 등 대부분의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기 못하거나 200만 관객을 넘지 못했는데,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국형 스릴러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300만이 넘으면 치매 노인들을 위해 기부하려고 한다. 이 영화가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까 기부한다면 좋을 듯하다. 기부를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감사할 것”이라 말하며 흥행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록 300만 관객은 넘지 못했지만 한 숨 돌렸다. 차기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에 대한 관심도도 올라간 상태다.
‘불한당’은 흥행하지 못했지만 설경구 필모그래피에서 꼭 짚고 가야할 작품.
‘불한당’은 제 70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덕분에 설경구는 주연으로 17년 만에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여행자’에 이어 4번째 초청이었지만 올해는 그에게 더 특별했다. 연기 변신을 이뤘다는 평과 함께 7분간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결국 설경구는 벅찬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이 작품으로 ‘불한당원’으로 불리는 2030 여성들에게 아이돌 뺨치는 인기를 누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68년생 50세… 김윤석
김윤석은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다. 매 작품 묵직한 무게감은 영화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았다.
김윤석은 추석 극장가 승자로 자리잡은 ‘남한산성’ 속 예조판서 김상헌 역을 맡아 정통 사극 연기를 펼쳤다.
김상헌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 속 청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인물. 죽음을 맞을지언정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과 뚝심을 지닌 인물로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역과의 팽팽한 대립을 통해 극의 긴장감과 흡인력을 높인다.
황동혁 감독은 “김상헌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명분에 대해서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다”라며 “김상헌’과 같은 에너지와 열정을 지닌 배우를 떠올렸을 때 김윤석 배우가 가장 적격인 배우로 생각이 들었다. 불덩이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전하기도.
김윤석은 47일 간의 극적인 상황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김상헌의 감정선을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대사의 완성도를 더했다.
그 덕분일까. 그가 출연한 ‘남한산성’은 앞서 두 50대 배우의 흥행 바톤을 이어받았다. 개봉 7일째인 9일 300만 관객을 돌파한 것.
‘남한산성’은 개봉 4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3일 만인 9일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역대 추석 흥행작 중 가장 빠른 속도로 300만 관객을 돌파한 ‘관상’(최종 913만 4,586명)의 개봉 7일째 돌파 기록과 같은 속도로 역대 추석 영화 최단 기간 300만 돌파 타이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개봉 8일째 300만 관객을 돌파한 ‘밀정’(최종 750만 420명)의 기록을 하루 앞당긴 것은 물론, 역대 추석 흥행작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광해, 왕이 된 남자’(최종 1231만 9542명)의 개봉 11일째 돌파보다 4일이나 앞선 기록으로 이목을 집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