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고 최진실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의 빈소가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1월 6일 일요일 오전. 예상치도 못했던 사망 소식에 잠에서 깼다. 주인공은 조성민이었다. 그가 누구던가. 야구선수로 활동할 당시에는 스포츠계의 주목을 받았고, 2000년 12월 톱스타 최진실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면서 연예계의 관심까지 한몸에 받던 인물이다. 이혼 후에도 다수의 사건·사고에 휘말렸고, 최진실과 그의 남동생 최진영이 생을 마감했을 때도 그의 이름은 꾸준히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던 그가 사망했다.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자살로 추정되는 가운데 관할 경찰서인 수서경찰서는 7일 오전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빈소는 고려대학교 부속 안암병원에 마련됐으며, 최진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최환희와 딸 최준희가 상주로 이름을 올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장례는 3일장으로 진행되며 발인은 8일 오전이다.
자. 여기까지가 조성민의 사망 사건을 보도하는 일반적인 기사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경마장식 보도를 하고 있다. 누가 경찰에게 한마디 더 얻어내느냐, 누가 지인들의 이야기를 더 이끌어내느냐의 경쟁이다.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꿋꿋하게 상주 노릇을 하다 오후 늦게 빈소를 떠났다"는 기사가 재빠르게 올라온다.
2011년 고 채동하의 죽음 이후 합의된 사항에 따라 사진기자들의 과열 보도 경쟁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공동취재단이 구성돼 영정사진과 빈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으며 상주와 조문객 등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러나 취재기자들의 보도 경쟁은 여전하다. '기구한 운명', '기이한 운명' 등을 내세우는 것은 예사다. 자살 과정을 상세하게 담아내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 고 조성민의 빈소가 6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의 이름이 안내판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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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식 보도', <오마이스타>는 떳떳한가
한국기자협회의 정관에는 '자살보도 윤리강령'이라는 것이 있다. 죽음은 사적 영역인데다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치므로 정당한 보도 대상임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묘사 자체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예외지만 자살 장소와 방법, 자세한 경위를 묘사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뤄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이 강령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6일 하루에 쏟아진 관련 기사만 봐도 이 자살보도 윤리강령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던질 질문 하나가 있다. "과연 너는 얼마나 떳떳하기에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거냐?"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마이스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연예 매체다. 2011년 창간, 적어도 자살보도에서만큼은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6일 조성민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오마이스타>의 기사는 2건(조성민, 영동 세브란스 병원 안치..."경찰 검안 중" '조성민 사망' 충격 휩싸인 연예계)이다. 연합뉴스의 것을 제외하면 본판인 <오마이뉴스>의 기사 또한 2건이다.
그러나 6일 늦은 오후, 한계에 부딪혔다. <오마이뉴스>에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언급하며 현장스케치 기사를 요구했고, 7일 오전 이와 관련된 기사를 송고하라고 주문한 것. "현장 기사가 없다면 새로운 소식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오마이뉴스> 측의 뜻이었다. '무엇을 써야 하나'라는 고민보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늘 비판해왔던 인터넷매체의 선정주의와 지금의 모습은 대체 무엇이 다른가.
지시를 받들어 늦은 오후 빈소에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지는 쓸 수 없었다. 아니, 쓰고 싶지 않았다. "누가 '자살보도 윤리강령'에서 벗어나라고 했느냐"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오마이스타>의 구성원들은 한뜻임을 밝혀 둔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믿는다.
▲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고 최진실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의 빈소가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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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성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변화가 폭풍우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현상을 일컫는 물리학 용어로, 시작 단계에서의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이런 '자기 고백'은 나비의 날갯짓보다도 못한 작은 움직임일 수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는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성민 (야구 선수)-
모든 것이 공개되는 시대이다. 사생활과 속에 있는 아픔마저도 모두 낱낱이 공개되어 인간을 정말 인단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시대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그리고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마감한다. 조성민 야구선수로 촉망받던 그가 부상으로 인해 인생의 절정에서 점차로 멀어지고 유명연예인 최진실과의 결혼, 그녀와의 불화로 이혼, 또 다시 재혼, 그리고 이번 자살을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기삿거리가 되었던 불행한 그들의 삶을 보며 인생이란 성공이 손을 흔들다가도 어느 순간 이런 아픔과 절망과 비운의 그림자가 그들을 품어가는 것을 보게된다. 위키백과에서도 아주 자세히 이들의 삶을 적어놓았다. 나는 그를 잘 알아 보려고 이것을 찾았다가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필요할 듯해서 이곳에 옮겨 놓았다. 아울러 최진실 남매와 조성민씨가 저승에 가서라도 화해를 했으면 하고 바란다.
조성민 Cho Seong-Min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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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생년월일 | 1973년 4월 5일 |
사망일 | 2013년 1월 6일 (39세) |
신장 | 194 cm |
체중 | 95 kg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수비 위치 | 투수 |
프로 입단 연도 | 1996년 |
첫 출장 | NPB / 1997년 KBO / 2005년 |
마지막 경기 | NPB / 2002년 KBO / 2007년 |
경력 | |
선수 경력 코치 경력 |
조성민(趙成珉, 1973년 4월 5일 ~ 2013년 1월 6일[1])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고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였다.
출신 학교
프로 입단 전
국가대표
- 한·미·일 국제 청소년야구(1991년)
- 하계 유니버시아드(1993년)
수상 경력
- 제45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1991년)
- 제21회 봉황기 우수투수상, 홈런상(1991년)
프로 입단 후
일본 프로 야구 시절(1996년~2002년)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계약 기간은 7년이었다.[2] 1997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승 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 가능성을 보였다. 1998년 선발 투수로서 전반기에 7승을 거두어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지만, 이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빠른 직구와 포크볼 위주의 투구를 하였다. 일본 프로 야구 통산 11승 10패 11세이브, 방어율 2.84를 남기고 2002년에 퇴단하였다.
한국 프로 야구 시절(2005년~2007년)
2005년 5월,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주로 불펜 투수로 활동했다.[3] 컨트롤 위주의 투구를 하였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한화 구단으로부터 방출된 뒤 은퇴하였다.
은퇴 후
2군 재활코치 시절 (사진=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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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조성민은 2000년 12월에 배우 최진실과 결혼식을 올렸고[6], 최진실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자살 시도 등의 행위를 보여 주었고, 최진실과의 이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행위를 보여 주었다.[7]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가출을 하였고[8],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그 자리에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였다.[9] 2004년 9월에 최진실과 '협의상 이혼'을 하였다.[10] [11] [12] 이후 2005년 7월에 심 모 씨와 혼인신고를 하였다.[13]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2002년 12월, 조성민은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조성민은 자신이 왜 최진실과 이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들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성민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는데, 그 때 '술집 마담' 심 씨를 언급하면서 자신과 심 씨는 '불륜' 관계가 아니라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라고 말하면서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다. 심 씨도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그 인터뷰에서 심 씨는 자신과 조성민은 '불륜' 관계가 아니라 '술집 마담'과 '손님'의 관계라고 말하면서 조성민이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아가는 일을 도왔다. 조성민과 심 씨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부적절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해 버렸다.[11] [8] 이에 최진실도 조성민의 주장에 대해 해명·반박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조성민과 심 씨는 '불륜' 관계가 맞다고 확인해주었고 이혼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후에 이혼을 결정내렸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두 자녀는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조성민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조성민의 이혼과정이 사회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주진우 기자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을 인터뷰하였다. 2008년 11월, 주진우는 정옥숙을 인터뷰하면서 조성민의 이혼과정을 확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최진실의 이혼 서류를 입수하였으며 그 이혼 서류에 심 씨의 서명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11] [14] [15] [8]
폭력 행위
조성민은 키가 194cm, 몸무게가 95kg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최진실은 키가 164cm, 몸무게가 45kg이라고 알려져 있었다.[16] 폭력 행위는 성차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격한 체격 조건 차이 속에서 이루어졌다.[11] [17] [18]
임신부 폭행
2002년 11월, 조성민은 임신 5개월 무렵이었던 최진실을 폭행하였다.[11]
가정폭행 현행범으로 체포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진실의 집을 찾아가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이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최진실은 조성민을 상대로 주거 등에 대한 접근 금지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였으며, 조성민은 2개월 간 최진실의 집 100m 이내에 대해 접근이 금지되었다.[19] [20] [21] 당시 조성민은 이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해명·반박하기 위해 최진실은 자신의 멍든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였고, 이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으며, 그 법정 공방이 2010년 2월에 마무리되었다. 이 법정 공방을 통해, 조성민의 폭행 사실은 인정되었고, 최진실이 그 폭행을 유도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법원은 최진실이 자신의 멍든 얼굴을 언론에 공개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물어 모델료 일부를 광고주에 반환하도록 판결을 내렸다.[22] 그런데 2010년 10월, 언론을 통해 조성민은 6년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이 폭력 행위에 대해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7]
사기 행위
2002년 8월과 10월, 조성민은 사업 투자자금 명목으로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후 그 빌린 돈에 대해서 증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조치로 정옥숙과 최진영은 2003년 2월에 조성민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었고 2003년 4월에 조성민을 상대로 2억 원의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4년 8월, 법원은 조성민으로 하여금 1억 원은 정옥숙에게, 8750만 원은 최진영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최진영의 경우는 주식으로 양도된 것을 감안하여 책정한 액수였다.[18] [23] [11] [24] [25] [26] [27]
명예훼손 행위
- 2002년 12월,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최진실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발언하였다. 이후 2008년 10월에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두 자녀는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조성민은 그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함으로써 6년 전에 자신이 허위사실을 유포했음을 공공연하게 자인하였다.[14] [28] [15]
- 2003년 10월, 조성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협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위자료와 양육권 문제 등이 적힌 이혼합의서 초안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였다.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초안을 공개하면서 "거액의 위자료와 양육권·친권 포기를 요구하는 등 최진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 결국 이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진실은 해당 언론사, 해당 기자, 조성민 등을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민사상·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최진실은 이 소송에 대하여 "조성민은 고의적으로 사생활을 유포해 인격권을 침해했다. 조성민은 이혼합의서 초안을 공개하기 전에도 마치 내가 돈 때문에 이혼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양 10억 원, 13억 원 등 위자료 금액을 임의대로 발설해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사생활 문제를 끊임없이 화제 기사로 다뤄온 모든 스포츠신문들의 보도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29] [30] [31] [32] 한편, 조성민이 사적인 문서를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3년 2월,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은 조성민의 사기 행위에 대한 조치로 조성민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었는데, 이후 조성민은 스포츠신문들과의 인터뷰를 자청하여 언론을 통해 그 내용증명 문서를 공개하였다.[33] [34]
친권포기각서 작성 행위
- 2004년 9월에 이혼 협상을 할 때, 최진실은 조성민에게 제기했던 각종 소송들을 취하해 주었고 조성민이 졌던 각종 빚들을 변제해 주었다.[35] 이에 조성민은 친권을 포기하였고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작성하였으며 그 각서에 대해 공증도 받았다.[12] [36]
- 최진실과 이혼 협상을 할 때, 조성민은 최진실의 자녀들과의 면접교섭권은 인정받았으나 이혼 이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는 않았다.[11] 2008년 9월,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에게 미안해서 최진실의 자녀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37] 이 발언은 면접교섭권을 누릴 권리가 있는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로서, 친권포기각서 작성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었고, 친권을 영구히 포기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위였다.[38]
기타
-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이 임신 중에 담배를 피웠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 발언은 최진실에 대한 험담으로서,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지만, 정작 자신은 임신부를 폭행하는 등 대놓고 태아를 공격하는 행위를 하였다.[39] [11]
- 2005년 7월, 조성민은 '불륜' 상대자로 지목받았던 심 씨와 결혼하였다.[13] 2010년 10월,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은 조성민과 심 씨에 대해 "두 사람 관계는 정리된 걸로 안다. 두 사람은 10개월째 별거 중이다"라고 말했다.[40] [41] 2011년 12월, "대법원 법인 등기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B업체 대표 이사는 심 씨이고, 조성민은 2010년 10월 26일에 B업체의 사내 이사로 취임했고 2010년 11월 2일에 정식으로 등기부에 등재되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42]
- 2008년 10월, 조성민은 최진실의 두 자녀가 물려받은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사회적 반발을 샀다. 그 와중에 배우 우연희가 조성민의 배우자라는 허위사실이 유통되었고, 그로 인해 우연희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시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또한 우울증도 앓았는데, 그 피해사실을 《MBC 스페셜》에 출연하여 공개하였다. 한편, 우연희의 본명은 심은우였고, 우연희의 둘째 아들 이름은 조성민이었다.[43] [44] [45]
- 2008년 12월 2일, 시사IN의 주진우 기자는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가 조성민에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46] 2009년 6월 25일, 조성민은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최진실의 자녀들과 교회에서 만나고 있고 최진실의 어머니와도 아이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47]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과 만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아이들이 조성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조성민이 아이들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48] 2009년 8월 31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은 티브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조성민이) 교회에 매주 나와 아이들을 만난다고 하는데 만난 적 없다. 난 본 적도 없다. 교회에서 혼자 아이들을 지켜보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다 저렇다 말 나오는 것도 싫고 그냥 상대하기 싫다”라고 말했다.[49] [50]
- 강남중앙침례교회는 최진실의 유가족들이 다니는 교회였는데, 조성민은 2009년 1월부터 이 교회에 출석했고 2009년 6월에 ‘기독교 어린이 야구 영성 캠프’를 기획했으며 이 캠프에 대해 강남중앙침례교회를 협력단체로 하고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전도사 4명이 참가한다고 홍보했다. 과거의 행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조성민이 한다는 이유로 또 상업적인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조성민의 ‘야구 영성 캠프’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다. 2009년 7월 17일, 기독교 언론사 뉴스앤조이는 조성민의 ‘야구 영성 캠프’에 관해 심층 취재 보도했고 조성민의 홍보 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18] [51] [52] [53] [54]
사망
2013년 1월 6일 새벽,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여자친구 박씨의 아파트에서 화장실 샤워꼭지에 허리띠로 목을 매 자살했다.[55]
주석
- ↑ 경찰, 故조성민 부검 의뢰 계획 "공인임을 고려" 스타뉴스 2013-01-06
- ↑ 박동희.야구계의 전설,‘92학번'의 과거와 현재.2010년4월21일.
- ↑ `힘 합쳐 꼭 다시 날 겁니다'.중앙일보.2005년8월20일.
- ↑ 김영준.조성민 “변화구처럼 살았지만 해설만은 오로지 직구”.동아일보.2008년4월11일.
- ↑ 조성민, 2년 만에 야구 해설가 복귀…김태균 경기 중계.한국경제.2010년5월17일.
- ↑ 유진모. 팬과 우상… 의남매… 이젠 연인으로. 주간동아. 2000년 6월 15일.
- ↑ 가 나 김윤덕. '최진실 2주기'… 조성민, 입을 열다. 조선일보. 2010년 10월 9일.
- ↑ 가 나 다 결혼 효과 - 신분관계의 변화
- ↑ 대한민국 국민은 이혼이 하고 싶을 경우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협의상 이혼' 절차를 밟거나 '재판상 이혼' 절차를 밟는다. 대한민국 민법상 유책배우자에게는 이혼할 권리가 없고, 기자회견으로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명예훼손 행위이다.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일 경우 배우자의 협조를 받지 않더라도 '재판상 이혼' 절차를 통해 이혼할 수 있다.
- ↑ 황선주. 조성민 유감(遺憾). 오마이뉴스. 최종업데이트 2002년 12월 27일.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결별 선언한 최진실·조성민 커플 상반된 입장 쌍방 인터뷰. 여성동아. 2003년 1월 1일.
- ↑ 가 나 최진실-조성민, 1일 협의 이혼으로 완전 결별. 씨네21. 2004년 9월 2일.
- ↑ 가 나 최진실, 조성민의 재혼에 얼마나 충격받았길래…. 한국일보. 2007년 9월 20일.
- ↑ 가 나 이승형. 최진실·조성민 부부 파경위기. 문화일보. 2002년 12월 20일.
- ↑ 가 나 주진우. “조성민이 아이 포기한 날 진실이는 통곡했다". 시사인. 2008년 11월 3일.
- ↑ 다음인물정보.
- ↑ 조성민 인터뷰 “설마 뒷조사까지 할 줄이야” .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554호).
- ↑ 가 나 다 이영미. 조성민 아버지 조주형씨 인터뷰. 일요신문. 2002년 12월 29일(554호).
- ↑ 곽인숙. 최진실,"그래도 아이들의 아빠인데…."(종합). 노컷뉴스. 2004년 8월 2일.
- ↑ 법원, ‘조성민은 주거지접근 하지말라’ 결정. 연합뉴스. 2004년 8월 6일.
- ↑ 김동훈. 최진실씨 폭행혐의 조성민씨에 벌금 500만원. 한겨레신문. 2004년 12월 9일.
- ↑ 정한국. "故 최진실측, 광고주에 2억원 배상하라" 판결. 조선일보. 2010년 2월 9일.
- ↑ 안순모. 수렁에 빠진 조성민 비상구가 없다. 일요신문. 2003년 3월 16일.
- ↑ 고성훈. 최진실母, 조성민 사기혐의로 고소. 매일경제. 2003년 8월 19일.
- ↑ 신호. 조성민, 최진실 가족에 배상판결. YTN. 2004년 8월 23일.
- ↑ 전지성. 법원, 조성민씨 빌린 1억8750만원 최진실씨 가족에 돌려줘야. 동아일보. 2004년 8월 23일.
- ↑ "조성민씨 1억여원 배상". 세계일보. 2004년 8월 23일.
- ↑ 신민섭. 최진실-조성민 커플 파경 임박. 일요시사. 2003년 1월 7일(364호).
- ↑ 백미정. 최진실 '남편 고소'…이혼합의서 초안 공개에 분노. 굿데이. 2003년 10월 25일.
- ↑ 최진실, 조성민.스포츠지 상대 고소. YTN. 2003년 10월 27일.
- ↑ 정병화. 부인 명예훼손, 조성민씨 약식기소. YTN. 2004년 4월 24일.
- ↑ 대한민국의 민법은 "이혼하는 경우에 그 이혼을 하게 된 것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에게 이혼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예를 들어 배우자의 혼인파탄행위 그 자체와 그에 따른 충격, 불명예 등)에 대한 배상, 즉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 ↑ 황정우. 최진실 조성민 상대 채권 가압류 조치. 연합뉴스. 2003년 2월 28일.
- ↑ 양성희. 최진실씨“빌려준 3억 갚아라”. 문화일보. 2003년 2월 28일.
- ↑ 김수경. “조성민씨 불륜 탓 결혼 파탄”최진실씨 3억원 배상 소송. 동아일보. 2003년 11월 26일.
- ↑ 이현아. 조성민 각서 '친권 포기→이양' 말바꾼 속내는?. 스포츠한국. 2008년 11월 7일.
- ↑ 2008년 9월에 여성조선, 우먼센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 발언을 하였고 이 발언 내용은 2008년 10월호에 기재되었다.
- ↑ 이현아. "연관짓지마" 최진실, 자살전 조성민에 메시지!. 스포츠한국. 200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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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봉. 조성민 재혼한 부인과 10개월째 별거중. 스포츠경향. 2010년 10월 22일.
- ↑ 신민섭. 또 이혼 위기? 조성민 별거 미스터리. 일요신문. 2010년 11월 1일.
- ↑ 권혁기. 조성민, 별거 부인 심씨와 동업? '박지성 슈주 애용 백팩 사업'. TV리포트. 2011년 12월 1일.
- ↑ 송수경. 민주, '친권 자동부활 금지' 법안 발의. 한국일보. 2009년 1월 21일.
- ↑ 김정주. 에로배우 우연희 "조성민 부인 아니에요". 스타뉴스. 2008년 11월 7일.
- ↑ 조은별. 최민수와 우연희는 어떻게 소문의 주인공이 됐을까?. 2009년 2월 9일.
- ↑ 진향희. 최진실 아들 "조씨 싫어요! 아버지 무서워요". 매일경제. 2008년 12월 2일.
- ↑ 안효은. 조성민, "최진실, 악플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마이데일리. 2009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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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성. 최진실 母 "두 자녀, 아빠 조성민 만난 적 없다!". 티브이데일리. 2009년 8월 31일.
- ↑ 스토킹(stalking)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stalk)에서 파생되어 명사화된 용어이다.
- ↑ 유재순. 유재순의 특별리포트 일본교민사회 소문과 진실. 일요신문. 2003년 1월 5일(555호).
- ↑ 이영미. ‘이경실 사건’으로 재조명 조성민 부친 조주형씨 단독인터뷰. 일요신문. 2003년 2월 23일(562호).
- ↑ 윤완수. 조성민 선수 불교로 개종 만다라전, 부처님께 케이크 올려. 만불신문. 2003년 12월 29일.
- ↑ 유연석. 어린이 영성 캠프는 아무나 하나 신앙인(?) 조성민, 어린이 대상 '야구+영성' 캠프 연다. 뉴스앤조이. 2009년 7월 17일.
- ↑ '허리띠로 목 매' 조성민, 여친집서 사망…유족 협의 후 부검(종합) - TV리포트
바깥 고리
▲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고 최진실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의 빈소가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고 조성민씨의 부검을 진행한 경찰이 목맴사 결론을 내렸다. 7일 오전 서울 수서 경찰서는 "(고 조성민씨의) 시신 부검 결과 "목을 매 사망한 게 합당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당초 예상대로 사건을 매듭지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 조성민씨에 대한 부검을 7일 오전 8시 30분 무렵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했다. 타살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와 사건을 종료하지만 정확한 사망 시각은 수 주 내에 밝혀질 예정이다.
조성민씨는 지난 6일 새벽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타살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하겠다며 유족과 합의 하에 시신 부검을 결정했다.
한편 조성민씨의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에 마련돼 있다. 장례는 3일장으로 발인은 8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이다.
2000년 12월 화려한 결혼식, 2004년 파경 후 갈등 겪기도
어느 비극보다 잔혹하다. 고 최진실의 가족사다.
최진실의 전 남편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이 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3개월 만이다.
당대 최고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만남이었다. 최진실과 조성민이 결혼 소식을 발표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의 행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2000년 12월 5일 식을 올렸고, 환희ㆍ준희 남매가 태어났다.
↑ 2008년10월 최진실 사망
↑ 2004년 8월 파경
↑ 2000년 12월 5일 결혼식
최진실은 이후 잠시 숨을 고른 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2005),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 등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이혼 후 우울증은 극복하지 못했다. 2008년 10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늘에서도 편하지 못했다. 사망 후 두 자녀의 양육권, 친권 등을 놓고 유족과 조성민 간에 갈등이 일었다. 2009년 8월에는 유골함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급기야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던 동생 최진영이 2010년 3월 누나의 뒤를 따랐다.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도마에 올랐다. 자녀들에 대한 권리를 외할머니인 정옥숙씨에게 넘겼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여전했다. 한때 촉망 받는 야구 유망주였던 그는 제빵사업가 야구해설가 2군 코치 등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재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향년 40세에 숨졌다.
지난해 9월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코너 '남자의 자격2'의 '패밀리 합창단'에 출연해 해맑은 모습을 보여줬던 환희ㆍ준희 남매는 약 5년 사이에 엄마와 외삼촌에 이어 아빠까지 떠나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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