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블루·화이트칼라 아닌 ‘뉴칼라’가 4차 산업혁명 이끈다

 
데이비드 래퍼 IBM 아태·중국 사회공헌 총괄 
데이비드 래퍼 IBM 아태·중국 사회공헌 총괄은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연구개발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육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한국IBM]

데이비드 래퍼 IBM 아태·중국 사회공헌 총괄은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연구개발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육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한국IBM]

“더 이상 4년제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습니다.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춘 실무자를 길러 내야 합니다.”
 

IBM 임직원 3분의 1은 뉴칼라
학위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 안 해
과학기술에 친숙한지가 더 중요
‘P테크 학교’ 세워 인재 양성
6학년제로 교과서 없이 실무교육
현장 투입했을 때 일할 수 있어야
인공지능 ‘왓슨’ 교사들 도와
학습·토론 주제, 교육방식 등 최적화
교육의 질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지난해 11월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과감한 주장이 담긴 이 서한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당시 IT 기업인들과의 회동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에게 로메티는 “AI·데이터 사이언스부터 실무교육까지 병행하는 새로운 학교를 미국 전역에 100곳가량 만들겠으니 트럼프 당신이 도와줘야 한다”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로메티는 공식석상에서 발언 기회가 주어질 때면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양성된 ‘뉴칼라(new collar)’ 인재가 앞으로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움직일 것”이라고 반복해 강조한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컴퓨터 ‘왓슨’을 개발한 기업의 CEO는 왜 이런 주장을 할까. ‘뉴칼라’는 어떤 인재를 뜻할까. 지난 10일 데이비드 래퍼 IBM 아태·중국 사회공헌 총괄을 한국IBM 사무실에서 만나 ‘뉴칼라’에 대한 IBM의 생각을 들어봤다.
 
래퍼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블루칼라(생산직 등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전문 사무직)의 역할은 갈수록 미미해진다는 게 IBM의 생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뉴칼라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연구개발하는 능력이 뛰어난 계급인데 이들이 미래 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IBM과 로메티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에서 대부분의 노동은 자동화되고 세상은 자동화로 필요 없어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기술을 익히라고 요구하지만 학생들이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성공적인 사회와 기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응당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며 “다른 분야도 아니고 교육만큼은 IBM은 물론 모든 기업과 정부가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래퍼는 IBM이 가지고 있는 최신 기술과 전문성을 사회 문제에 적용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IBM이 만든 기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에 ‘뉴칼라’에 대해 알리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확대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호주 출신인 그는 호주 국무총리실, 뉴욕 비영리 기업 등에서 도시·교육·건강 등의 문제를 해결해 온 공공영역 전문가다. 그는 이번 방한기간 중 서울교대에서 석사·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과 현직 교사들을 만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인재’를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자료 : I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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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 IBM 본사에서 근무하는 임직원 3분의 1은 ‘뉴칼라’에 해당한다고 소개했다. 직원 중 3분의 1은 2년제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고 IT 기업이지만 채용할 때 학력 자체가 중요한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래퍼는 “학위가 있는지 없는지, 학위가 없는 사람이 회사에서 몇 %를 차지하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직원이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를 친숙하게 느끼며 일하는지,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얼마만큼 적응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 “‘뉴칼라’라는 말은 IBM이 처음 사용한 용어지만 특정 기업·국가에만 해당하는 단어가 아닌 보편적인 용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 I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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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IBM은 ‘뉴칼라’ 인재를 직접 길러 내기 위한 학교를 세웠다. IBM은 뉴욕시 교육청·뉴욕시립대와 손잡고 2011년 브루클린에 ‘P테크 학교’를 처음 선보였다. P테크 학교에는 9학년(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3학년)부터 입학할 수 있다. 6년짜리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지만 성적이 뛰어나면 더 빨리 졸업할 수 있다. 졸업생들은 2년제 대학 졸업자들에게 수여하는 준학사 학위를 받는다. 설립된 지 6년이 안 됐지만 이미 40여 명의 조기 졸업생이 나왔다.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졸업생 8명은 현재 IBM에서 일하고 있다.
 
P테크 학교에는 기존 학교에서 배우던 교과서가 없다. 대신 P테크 학생들은 기초이론부터 실무교육까지 모두 배운다. 여름방학 때는 인턴십 과정도 있다. 학교는 학생과 파트너 회사의 직원을 연결해 주고 진로를 상담할 수 있게 해 준다. P테크 학교는 현재 미국 뉴욕·일리노이·코네티컷 등 전역에 55개로 늘어났다. IBM은 올해 연말까지 미국은 물론 호주·모로코 등에도 P테크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P테크 학교를 2013년 1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다. 등록금이 전액 무료인 이 학교는 저소득층·유색 인종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P테크 학교를 2013년 1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다. 등록금이 전액 무료인 이 학교는 저소득층·유색 인종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눈에 띄는 점은 재학생 96%가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라는 것이다. 또 학생들 중 70% 이상이 급식비를 감면받거나 지원받아야 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사회에서 뒤처질 확률이 가장 높은 계층이기도 하다. 로봇이 인간 직업을 대체할 때면 소득이 낮은 단순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2013년 브루클린의 P테크 학교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학교를 “학생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티켓”이라며 극찬했다.
 
래퍼는 “학교는 학생이 곧장 현장에 투입됐을 때도 일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며 “그런 정도의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뉴칼라’ 인재들에게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IBM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회사가, 그리고 직원이 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예 학교를 새로 만들어 기술을 전수하고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책이다. 래퍼는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IBM의 기술과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CNN·타임 등 외신들도 첫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P테크 학교의 성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으레 행하는 범위의 사회공헌 활동을 뛰어넘었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IBM은 AI 컴퓨터 ‘왓슨’을 이용해 교사들을 돕기도 한다. 왓슨이 지난해부터 미국 학교에서 선보이고 있는 ‘티처 어드바이저 위드 왓슨’은 교사들이 가장 영양가 있는 교육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습 주제 ▶원하는 교육방식 ▶문제 유형 ▶토론 주제 등을 선택하면 ‘왓슨’이 교사에게 최적화된 교수방법을 알려 준다. 스스로 학습(딥러닝)하는 왓슨 때문에 교사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적합한 양질의 솔루션이 나올 수 있다. 아직은 수학교육에만 한정돼 있다. 래퍼는 “미국에서 현재 교사 800명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번역 과정을 거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로 확산되면 머지않아 지구촌 각 교실에서 ‘왓슨’이 선생님을 도와 교육의 질을 크게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 BOX] 일주일에 3시간은 뭔가 만드는 ‘메이커 교육’도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국IBM도 ‘뉴칼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교수법과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IBM이 2014년 초 처음 선보인 교사 연수 프로그램 ‘과학에 도전하는 선생님’은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자료들을 제공한다. 교과서로 배우는 자연과학 내용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로봇 팔을 만드는 방법’부터 ‘생산 공정 라인’까지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제에 대해 자료를 제공하고 수업방식도 안내한다.
 
학생들이 영상을 시청한 뒤 게임이나 토론을 통해 해당 주제를 함께 고민하도록 만든 시나리오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한국IBM은 국내 교육 실정에 맞게 번역·재구성해 국내 초·중등 교사들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3000명의 중고생이 ‘과학에 도전하는 선생님’을 통해 현장감 넘치는 교육을 받았다.
 
IBM은 2016년부터 ‘창의 융합형 미래 인재’를 기르기 위한 ‘메이커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메이커 교육은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통해 창의적 사고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동시에 과학기술·수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교육방식이다.
 
메이커 교육의 1차적인 목표는 ‘일주일에 3 시간은 메이커가 될 자질을 기르자’는 것이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틀에 박힌 커리큘럼을 제공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학생들은 ‘자주 부러지는 안경테를 고정하는 장치를 만들고 싶다’거나 ‘노트북 마우스와 어댑터를 분실하지 않게 한데 보관할 수 있는 부품을 만들겠다’와 같은 주제를 설정할 수 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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